제1편: 왜 한국 욕은 ‘가족’을 향할까?
내가 외국어를 배우면서 알고도 싶지 않고, 들어도 모른 척하는 단어들이 있다. 중국어, 베트남어, 영어 속의 욕들이다.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마음의 폭발 지점이 찾아오는데, 나도 참으려고 참다가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말은 ‘18’이었다. 그 말을 내뱉고 난 뒤에는 그 자리를 피해 담배를 피우거나 혼자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욕도 나라별로 다를까?'
그렇게 한국과 베트남의 욕 문화를 비교해보니 그 깊은 차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두 나라 욕의 근본적 차이를 드러내는 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번 시리즈에서 다룰 네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 욕을 보면 그 나라의 가치관과 금기가 정확히 드러난다.
1. 왜 한국 욕은 ‘가족’, 특히 ‘어머니’를 향할까?
: 유교적 가족관, 가문 중심 사회, 금기를 건드리는 방식의 언어 구조.
2. 베트남 욕의 핵심은 ‘인격 평가’다
: 관계는 지키고 감정만 표출하는 기술
3. 한국과 베트남 욕이 충돌할 때 벌어지는 오해들
: 한국인의 직설적 분노 표현 vs 베트남인의 우회적 표현.
4. 욕은 그 나라의 역사, 심리, 사회구조의 거울
제1 주제: 왜 한국 욕은 ‘가족’을 향할까?
1. 가족이 곧 명예였던 사회
한국 욕이 가족을 향하는 이유는 단순한 언어 습관이 아니라, 가족 명예가 개인의 명예보다 더 중요한 사회 구조에서 비롯됐다. 전통 사회에서 가문이 흔들리면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설 자리가 없어졌고, 가문은 곧 존재의 기반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가장 아프게 공격하려면 그 사람의 가족, 특히 어머니를 건드리는 것이 가장 즉각적인 타격이었다. 즉, 한국 욕은 상대에게 최대한의 정신적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2. ‘어머니’가 한국문화의 핵심 기둥이었기 때문
한국에서 어머니는 단순한 보호자나 양육자를 넘어, 집안을 지키는 사람, 희생의 상징, 가문 명예의 중심이었다.
이런 문화적 구조에서 ‘어머니를 모욕하는 말’은 한 개인을 공격하는 것을 넘어 그의 존재 기반을 흔드는 행위가 된다. 한국 욕이 어머니를 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가족 명예”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대의 흔적이 언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3. 생존 경쟁이 치열했던 환경
한국의 현대사는 전쟁, 가난, 격렬한 경쟁으로 이어져 왔다. 이런 환경에서는 말로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다. 싸움이 일어나기 이전에 상대를 위축시키고, 정신적으로 밀어붙이고, ‘저 사람은 건드리면 안 되겠다’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가족 비하 욕’이 과도하게 발전하게 됐다.
이 역시 베트남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베트남은 전쟁을 겪었지만, 욕이 공격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말의 폭력이 곧 업보가 되어 돌아온다'는 업보적 셰계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4. 금기를 건드리는 욕의 구조
욕의 힘은 언제나 '금기를 얼마나 강하게 건드리느냐'에서 나온다. 한국 사회의 절대 금기는 가족, 어머니 그리고 성(性)이었다. 그래서 욕의 구조도 자연스럽게 그 금기를 향해 갔다. 이건 단순히 “한국 사람 욕이 심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영역을 절대적으로 신성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구조다. 한국은 금기가 강할수록 욕도 그 금기를 향해 발전했다.
한국 욕은 단순히 거친 말이 아니라, 가족 중심 사회, 유교적 가치, 금기 구조가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이었다. 이 점에서 베트남 욕과는 뿌리부터 완전히 다른 흐름을 가진다.
다음 글에서는 이어서
2. 베트남 욕의 핵심은 ‘인격 평가’다 : '관계는 지키고 감정만 표출하는 기술'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베트남 욕이 왜 가족 대신 ‘사람됨’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발전했는지, 그 문화적 이유를 깊게 다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