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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욕의 핵심은 ‘인격 평가’다

관계는 지키고, 감정만 표출하는 기술

by 한정호

한국에서 욕을 듣고 자란 사람에게 베트남 욕은 조금 낯설고 싱겁기까지 하다. 가족을 건드리는 표현도 거의 없고, 성적인 모욕도 잘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베트남 사람들이 욕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분노의 순간에는 욕을 분명하게 한다. 그런데 그 욕의 방향이 ‘가족이 아닌, 그 사람의 인격’을 향한다는 점이 한국과 완전히 다르다.


◎ 베트남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욕들

1. đồ ngu : “바보야”, “멍청한 놈” 상대를 낮춰 부르는 기본형.

2. đồ điên / đồ khùng : “미친놈”, “정신 이상” 감정이 격할 때 흔히 나온다.

3. đồ mất dạy : “가정교육 못 받은 놈”, “교양 없는 인간” 베트남 욕 중 가장 타격이 큰 표현. 그 사람의 ‘품성’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4. đồ khốn nạn : “비열한 놈”, “나쁜 인간” 상대의 인성을 공격하는 방식.

5. đồ chó : “개 같은 놈” 정도. 강한 욕이지만 가족을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욕을 하더라도 ‘가족’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1. 왜 베트남 욕의 핵심은 ‘인격 평가’일까?

가. 욕을 해도 관계는 유지해야 하는 문화

베트남은 공동체적 유대가 매우 강한 사회다. 동네, 직장, 가족 등 친분 관계가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 누군가와 갈등을 겪더라도 다음 날 다시 마주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베트남 욕은 감정은 분명히 표현하지만, 관계를 끊어버릴 정도의 말은 하지 않는다. 가족 욕은 바로 ‘관계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금기시 한다.

나. 불교의 업보 세계관이 언어를 규제한다

남부 베트남 사람들은 '말이 업을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가족이나 죽음을 저주하는 말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욕을 하더라도, 저주하지 않고 가족을 건드리지 않고, 상대의 인성이나 태도에 대해서만 비판한다. 이러한 믿음은 욕의 방향을 자연스럽게 ‘사람됨’으로 향하게 만든다.


2. 베트남 사람들 싸우는 거 보면 한국보다 더 격렬하고 심지어는 잔인해 보이기까지 하던데?

나는 길거리에서 싸우는 장면들을 보면서 이런 느낌을 받곤 한다. 베트남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보면 몸싸움이 빠르게 시작되고, 감정 폭발도 강하게 보이기 때문에, 처음 보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잔인하다고 느낄 수 있다.

현지에서 그런 장면을 봤을 때, '저렇게 격력하게 싸우면서 욕 문화는 온화하다고?'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오해가 섞인 착각도 있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싸움이 아무리 심해져도 가족을 향한 욕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베트남 싸움의 초점은 ‘상대의 지금 행동’과 ‘그 사람의 인격’에 맞춰져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Ngu!” (바보냐?)

“Mất dạy!” (가정교육 못 받았어?)

“Đồ khốn nạn!” (비열한 놈!)

이 정도 표현이 최고 수위다. 싸움이 커질수록 욕의 강도는 세지는데, 방향은 끝까지 가족의 바깥을 향한다.

그 모습이 격렬해 보이는 이유는 ‘언어가 아닌 행동 패턴’ 때문이다.


3. 왜 싸움은 강해 보이는데, 욕은 상대적으로 온화할까?

한국인은 언어 공격이 강하고 행동은 절제한다. 말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식이 발달했다. 반면, 베트남인은 말은 절제하지만 행동 표현이 즉각적이다. 몸을 앞으로 내밀고, 손동작이 커지고, 말투가 빨라지고 감정이 얼굴에 바로 드러난다. 그래서 외국인 눈에는 행동이 더 격렬하게 보이는 착시가 일어난다.

그러나 싸움의 순간에도 베트남 사람들은 상대의 ‘가족’이나 ‘존재 기반’을 공격하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선을 넘는 순간 싸움이 돌이킬 수 없이 커지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다.


4. 베트남 욕의 본질 : 관계는 지키고 감정만 표출하는 기술

베트남 욕은 공격성과 온건함이 묘하게 공존한다. 감정은 분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상대를 파괴할 수준의 말은 하지 않는다. 가족은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인격, 품성, 태도를 평가한다.

욕을 하면서도 ‘내가 너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이 점이 한국 욕과 가장 뚜렷하게 다른 문화적 특징이다.


베트남 욕은 거칠어 보일 때도 있지만, 그 방향이 언제나 상대의 인격, 행동, 교양을 향한다는 점에서 한국 욕과는 뿌리부터 다르다.

한국 욕이 가족과 금기를 파고들어 상대를 흔드는 방식으로 발전했다면, 베트남 욕은 관계를 지키면서도 감정을 표현하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있는 욕’에 가깝다.


다음 편에서는 이 차이가 실제로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충돌할 때 어떤 오해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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