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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후임, 존대·하대

딸아이의 고민에서 시작된 ‘요즘 직장 예의’ 이야기

by 한정호

어제 밤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하려는 찰라, 전 딸아이에게서 긴 메시지를 받았다.

'아빠, 같은 직급이어도 선임이면 윗사람이예요?'

'선배라고 하대하는 건 아니잖아요. 왜 저보다 2년 먼저 들어온 사람이라고 말을 놓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사님도 내게 존대 하시는데...'

'그 사람에게 말해도 되는 걸까요? 분위기 싸해지지 않을까요?”


말투는 차분했지만, 꽤 스트레스받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사님도 딸아이에게 존댓말을 하고, 대부분의 팀원도 거리를 지키는데, 유독 딸아이에게만 말을 놓는 동직급의 선임 직원이 있다는 것이다. 신입사원까지 곧 들어올 예정이라며 '혹시 나한테만 하대하면 어떡해요? 더 이상하잖아요'라며 발생하지도 않은 문제까지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나도 20대 시절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입사를 늦게 해서 나이가 동기나 2~3기수 선배보다는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막 하대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군대 문화, 학교 선후배 문화, 직장 내 위계 구조가 서로 단단하게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들어왔는가?' '누가 나이가 많은가?' '누가 경험이 많은가?'에 따라 말투와 거리감이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그걸 부당하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직급, 입사연차, 나이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 자체를 더 중요하게 보는 세대가 등장했다. 딸아이의 고민은 어쩌면 지금의 직장 문화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상징적인 장면일지도 모른다.

사실 요즘 직장 문화는 ‘수평’이 기본값이 되었다. 2020년대 이후 회사들은 직원 간 호칭과 말투를 평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같은 직급끼리는 존대가 기본이다. 입사연차만으로 하대 권리는 생기지 않는다. 서로 ‘~님’으로 부르고 말투도 존중형 유지하는 편이다. 나이나 경력보다 '역할과 책임'을 중심으로 위계를 판단한다.

이런 흐름은 MZ세대의 가치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들이 조직문화를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변화다.


그런데 딸아이의 문제는 '관행을 따르는 사람'과 '새로운 문화를 기대하는 사람'이 같은 조직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런 미묘한 충돌은 요즘 직장에서 아주 흔하게 발생한다. 누군가는 ‘선임이면 반말 가능’의 세계에 있고, 또 누군가는 ‘직급 같으면 존대가 기본’의 세계에 산다. 세대, 조직 경험, 성격 등에 따라 각자가 가진 ‘관계의 기본 규칙’이 다르다.

선임인 그 직원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내가 2년 먼저 들어왔으니 직장에서도 선배지.' '동료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되겠지.' '나쁜 의도가 아니라 그냥 편하게 지내고 싶은 거야.'라는 등

반면 딸아이는 이렇게 느끼고 있다. '같은 직급인데 왜 나만 하대하지?' '상사도 나한테 존댓말하는데 왜 이 사람만 반말하지?' '신입 들어오면 나만 하대당하는 구조가 되는 거 아닌가?' 등등

누구의 말이 맞고 틀린 게 아니라,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바로 이런 흐름을 이해하는 게 첫 번째다.

갈등의 절반은 상대의 기준을 이해하는 순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1. '말투 문제는 작은 문제 같지만 영향은 크다'는 걸 인정하기

같은 팀 안에서 오직 한 사람만 나에게 반말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 특히 직장에서는 ‘자존감’과 ‘역할의 존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불편함은 너무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이를 억지로 참으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


2.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선 긋기’를 하는 것이 가장 건강하다

갈등은 초기에 말하면 간단히 해결되지만 참다 참다 말하면 관계가 쉽게 깨진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식은 ‘부드럽지만 명확한 표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제가 아직 말 놓는 게 조금 불편해서요. 존대말로 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혹은

'회사에서는 말투를 통일하는 분위기라 대화를 존대로 맞추고 싶어요.'

싸우자는 말이 아니라, ‘내 기준’을 차분하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말하면 이해한다고 한다. 자신의 말투가 불편을 줄 수 있다는 걸 전혀 몰랐던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3. 인격 문제’인지 ‘관행 문제’인지부터 구분하기

만약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말투를 쓴다면, 그건 조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선임이라 자연스레 말 놓는 관행'이라면 명확한 선 긋기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

딸아이에게 필요한 건 '상대가 왜 이런 행동을 할까?'를 먼저 가볍게 파악해 보는 것이다.


4. 신입사원 걱정은 ‘지금 해결하면 없어지는 문제’다

딸아이가 가장 불안해하는 건, 이 사람만 자기에게 반말하고 나중에 들어오는 신입에게는 존대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나만 이상한 위치가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선을 분명히 그어두면 신입이 오더라도 기준이 명확히 잡힌다. 오히려 지금 말해두는 것이 미래의 불편을 미리 차단하는 방법일 수 있다.


어제 저녁 샤워도 미루고, 딸아이와 메시지를 보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고민하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그 사람의 하대가 악의가 것이 아니라면 지금은 참고 직장내에서 이런 저런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고. 아마도 이건 내 세대때의 생존 방식이였을 지 모르겠다. 잠자리에서 한참을 고민하면서 기존에 보냈던 말들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이제 다시 딸아이에게 네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 네가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자신감 있게 살아가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래도 다른 세대의 우리 딸에게 이 4가지는 말해 주고 싶다.

1. 세상에는 항상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게 세대차이일 수도 있고, 조직 문화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습관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나와 다르다고 남을 탓하지도, 그렇지만 내가 적응을 못한다고 자책하거나 스트레스 받지 말길.


2. 너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자리다.

2년 먼저 들어온 선임이든 누구든, 동직급이면 존중받는 게 맞고, 네 능력은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고, 회사도 그걸 인정해 뽑은 것이니 다른 직원도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이 맞다.


3. 상대가 틀렸다고 단정하기보다, 내 기준을 먼저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갈등은 감정으로 풀려 하지 말고, 기준으로 풀어라

'왜 네게만 하대를 하는 거지?'라는 식의 생각을 하지말고, 성숙한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의사표현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이든, 나와 다른 사람은 반드시 있다.

어떤 사람은 과하게 다가오고, 어떤 사람은 선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예전 관행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한다.

그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작은 갈등을 정리하는 연습이다.

'내가 불편한 게 뭔지'

'어떻게 말하면 서로 상처가 적을지'

'어떤 선을 지키면 내가 무너지지 않을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과정이 성장이고, 경험이고, 스스로를 지키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딸아이의 고민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순간에도 사람들과의 만남속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무례한 고객에 욱 하기도 했던 모습, 사람들을 평가하고 제단하던 자세... 어제 밤 딸아기가 내게 제시한 '생각거리'에 감사한다.


사랑한다. 우리 재현이. 넌 이쁘게 사회생활 잘 해나가고 있는거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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