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역사에 대한 인식은 각 문명이 성장해 온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특히 동양과 서양은 고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며,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현재를 형성하는 문화적 뿌리와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에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현대사를 중심으로 보면 서양은 '침략과 정복의 역사'인 반면 동양은 '저항과 생존의 역사'라고 보고 싶다. 서양은 대항해 시대와 식민지 확장,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 질서를 주도하며 자신들의 정복과 발전을 강조했다. 반면 동양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들여야 했던 상황에서 고대사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저항과 생존의 서사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과 베트남 그리고 중국도 고대의 역사에 집중하며,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어느 강사의 강의에서 한국과 베트남처럼 과거 고대사에 집착하는 나라들은 많지 않다는 내용에 긍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에서 동양과 서양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비교해 보고, 동서양이 역사에 대한 인식을 통해 무엇을 지향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동양은 고대사를 통해 민족적 자긍심과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며, 서양은 이를 존경하되 혁신의 발판으로 삼아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동양에서는 고대사를 통한 교훈과 정체성의 강화를 강조한다. 즉, 자신들의 고대사를 ‘현재와 연결된 교훈’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고대사가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교훈으로 여기려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삼국사기나 중국의 사기(史記)는 단순히 사건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도덕적, 철학적 의미를 담아 후대가 교훈을 얻도록 하는 목표가 있었다.
동양의 시간관은 순환적이다. 동양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순환적 시간관 속에서 고대사를 교훈의 원천으로 삼아 현재와 미래를 설계해 왔다. 과거는 현재와 끊임없이 연결되며, 역사의 반복 속에서 인간이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는 믿음이 강한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하(夏), 상(商), 주(周)' 왕조 교체는 도덕적 정당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왕조가 등장한다는 교훈적 의미를 강조했다.
현대 중국에서조차 자연재해와 정치적 불안의 연결은 고대사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여전히 인민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 중국에서도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지도자의 정당성이 도전에 직면하는 모습은, 고대사에서 내려오는 ‘천명사상’과 연결된다. 이는 고대사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여전히 현대 정치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동양 국가들에 있어 고대사는 민족적 자긍심의 뿌리이며, 이를 통해 현재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한국의 단군 신화와 같은 고대사는 민족의 기원을 상징하며, 한국인의 단결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국의 황하 문명과 진시황 시대의 통일은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며, 현재의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베트남의 동선 문화(Đông Sơn)와 같은 고대 유적과 전설적인 영웅 락롱꿘(Lạc Long Quân)과 어우꺼(Au Cơ)의 신화는 베트남 민족의 기원을 상징하며, 베트남 국민에게 강한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동양에서는 고대 문화를 복원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중국의 전통 의례 복원, 한국의 국보급 문화재 보존은 단순히 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고대의 가치를 현재로 가져오려는 노력인 것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고대사를 향한 존경과 근현대사의 혁신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서양에서는 고대사를 미래로 가는 도약의 발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대 문명, 특히 그리스와 로마는 "인류 문명의 황금기"로 여긴다. 하지만 서양은 고대사를 황금기로 존중하면서도 근현대 혁신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적 부활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부활시킨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예술적 성취를 이끌어낸 시대였다. 이는 서양이 고대사를 단순히 보존하기보다는 도약의 디딤돌로 삼아 미래를 창조해 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는 서양의 시간관에서 비롯된다. 서양의 시간관은 직선적이다. 과거는 단순히 흘러간 시간이자, 현재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기반으로 여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르네상스 시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재발견했지만, 이를 새로운 혁신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동양과 다르다. 즉, 서양은 과거보다는 근현대사를 통해 이룬 혁신과 성취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대사가 없는 미국은 독립 선언과 민주주의의 발전, 산업혁명과 같은 근현대사를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미국의 독립 선언문과 헌법은 그 자체로 '고대사의 대체물'이자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이는 고대 유산 대신 현대적 가치를 강조한 독특한 역사관을 형성한 것이다. 또한 유럽의 국가들은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유산을 중요시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산업혁명, 과학적 발견, 근대 철학 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즉 서양의 역사는 과거를 보존하기보다는 미래를 창조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고대 유적을 발견하게 되면 보존보다 현대 건축과 기술 혁신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이러한 동서양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형성한 배경들을 살펴보면,
우선 문화적 측면에서, 동양의 국가들은 유교, 불교의 영향을 받아 조화와 지속성을 중시하며,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을 덕목으로 여기는 반면, 서양의 국가들은 기독교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개인주의와 혁신을 중시하며, 과거보다 개인의 선택과 변화 가능성을 강조하는 차별성을 보인다.
둘째, 환경적 요인으로, 천천히 발전한 농경 사회로 구성된 동양 국가들에서는 과거의 지혜와 경험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했다. 반면 서양 국가들은 개척 정신과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변화와 혁신이 생존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는 차이가 있다.
셋째, 역사적으로 동양의 국가들은 침략과 저항의 역사를 겪으며, 민족의 정체성을 고대사에서 찾아야 했다. 반면 서양 국가들은 대항해 시대와 산업혁명을 통해 근현대의 혁신이 더 큰 주목을 받았고 이를 통해 좀 더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강조하게 되었다.
고대사를 대하는 동양과 서양의 관점은 그들의 문화와 환경, 역사적 배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동서양 국가들 모두 자신들의 고대사를 통해 현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동서양을 구분하자면, 동양의 고대사 중시는 과거의 영광을 바탕으로 민족적 단결과 정체성을 강화해 왔고, 이는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반면 서양의 근현대사 중심의 역사관은 과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끊임없이 혁신하며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동양과 서양은 각기 다른 환경과 문화적 배경에서 형성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고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를 보인다. 동양은 과거의 순환적 교훈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며 현재를 설계하고, 서양은 직선적 시간관을 통해 과거를 존경하되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데 집중해 왔다.
동양은 고대사를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강화하며, 서양은 혁신을 통해 미래를 설계한다. 이러한 서로 다른 관점은 상호 보완적이며, 현대 사회에서 두 관점이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융합될 때 더욱 풍요로운 문명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처럼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과 저항 속에서 생존해 온 역사는 동양의 독특한 역사관을 잘 보여준다. 이들 국가가 고대사를 통해 현대적 혁신을 이루고 미래로 도약하는 모습은, 서양의 개척 정신 못지않은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국, 동서양의 역사 인식 차이는 각 문명이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하며, 오늘날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광개토대왕의 대외 정복 정책, 세종대왕의 과학적 혁신, 베트남의 락롱꿘 신화는 모두 과거의 자부심을 미래의 원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서양의 개척 정신 못지않게 동양의 고대사가 새로운 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