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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홍 Jan 05. 2024

결혼하고 남편이 처음으로 해준 요리

#12 가사 노동사 ③

딱 한 번 있었다. 남편 송일영이 오롯이 동분을 위해 앞치마 두른 ‘사건’이. 불과 몇 개월 전 일이다.      


“일 끝나고 집에 왔는데 암만 봐도 지독한 몸살감기 같더라고. 그대로 쓰러지듯 소파에 누워 있었어. 문득 따끈한 콩나물국 한 그릇 먹었으면 싶은 겨. 그래가지고 ‘에라 모르겄다~’ 하는 마음으로 니네 아빠를 불렀지. 호호호. 주성 아빠~! 나 꼼짝도 못하겄으니까 콩나물국 좀 끓여봐, 하고.”     


평소 같으면 뭐가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여러 소리 붙였을 양반이 그날따라 웬일로 군말 없이 냉장고를 뒤적이더란다. 그러고는 어렵사리 콩나물 한 봉지를 찾아 동분에게 와서 한다는 말이.     

 

“이거 콩나물을 어떻게 해?”

“어떡하긴! 일단 물로 헹궈.”

“…….”     


또 군소리 없이 콩나물 들고 싱크대로 간 송일영이 어설픈 손놀림으로 콩나물을 헹구고, 찬장을 한참 뒤져 적당한 냄비를 찾아서는 또 동분에게 어기적어기적 오더란다.      


“콩나물 다 헹궜는데, 냄비는 여기다가 하면 돼? 물은 얼마나 넣어?”

“어, 그 냄비에다가 물을 반만 넣고 일단 물부터 끓여. 물 끓으면 콩나물 넣고 소금이랑 새우젓이랑 다진 마늘 좀 넣어. 간장 반 숟갈만 넣고.”

“…….”     


또 어설픈 손놀림으로 한참이나 국을 끓이던 송일영이 다시 어기적 어기적 동분에게 오더란다.     


“간장이 두 갠데? 큰 거랑 작은 거. 어떤 거 넣을까?”

“큰 거. 국간장이라고 쓰여 있는 거.”

“넣었어. 다 된 거 같은데, 어떻게 할까?”

“간을 봐야지. 간 한 번 봐봐.”

“…….”     


팔팔 끓는 국을 살짝 떠먹어 본 송일영이 이번엔 흡족한 표정을 짓더란다.   

   

“괜찮은 거 같어.”

“그럼 파 좀 썰어 넣고, 불 꺼.”

“…….”     


또다시 어설픈 칼질로 파를 썰어 국에 넣은 송일영이 또다시 동분에게 오더란다.      


“또 왜?”

“다 된 거 같어.”

“그럼, 상을 차려. 밥도 푸고. 냉장고에서 김치만 꺼내봐.”    

 

몸살감기 때문에 몸은 아파죽겠는데, 시키는 대로 어기적거리는 남편 모습이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좀 있으면 칠순인 양반이 콩나물국 하나를 못 끓이나 싶어 괜히 얄미운 마음도 들었다. 이러나저러나 저 양반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아야지 싶은 마음도…….     


2011년, 부부 동반으로 베트남 하롱베이가서 찍은 사진. 동분 51살, 송일영 57살 때. 


“그런대로 맛이 괜찮더라고. 하긴, 엄마가 일러준 대로 끓인 거니까. 어쨌든 그거 한 그릇 후루룩 먹고 감기가 싹 나았다는 거 아니냐. 근데 기막힌 게 뭔 줄 아냐? 그 콩나물국이 니네 아빠가 처~음으로 해준 요리여. 아이고, 그 뒷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호호호. 니네 아빠도 이제 늙는가보다 싶더라고.”      


동분은 여전히 그렇게 살아간다. 콩나물국 하나 못 끓이는 남편 밥 굶을까, 끼니마다 밥을 챙기고, 함께 식사한 후엔 바로바로 설거지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거둬 탈탈 털어 개어 놓는다. 저녁엔 청소기를 돌리고, 손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친다. 그날의 빨랫감은 그날그날 세탁해 널어놓고, 전날 널어둔 빨래는 곱게 접어 수납장에 넣어둔다. 여전히 명절이나 기념일엔 큰아들 주성이 좋아하는 잡채를 한 ‘다라이’ 준비한다. 연례행사처럼 어쩌다 작은아들 주홍이 찾아올 때면 김치찌개를 끓이고, 호박전을 부쳐 낸다.      


“요즘이야 남자가 요리도 하고, 집안일도 같이 하지만, 그때는 남자가 부엌 들어가면 꼬추 떨어진다고 말하던 시절이었잖어. 살림은 당연하게 여자가 하는 걸로 알았지. 니네 아빠나 엄마나 그냥, 그런 시대를 살아온 겨. 이제 와서 니네 아빠한테 밥하고 설거지하라고 할 수 있겄냐? 뭘 제대로나 할 줄을 알아야 시키지. 우리 시대는 이렇게 끝이 난 거고…….  앞으로는 니네 몫이겄지. 그래도 니네 형은 밥 먹고 나면 꼭 자기가 나서서 뒷정리하고 설거지하더라. 너도 니네 형 보고 좀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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