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홍 Jan 13. 2024

MBTI 나만 불편해?

송자까의 삐딱하게 ①

“어떻게 본인 MBTI를 모르세요??!!” 요즘 누군가와 대화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친구 만나거나 직장 동료와 일하거나 친인척이 모이거나 새로운 누군가를 소개받거나. 어쨌거나 2명 이상이 모여 5분 이상 대화하면 어김없이 MBTI를 묻는다.     





어떻게 본인 주민등록번호를 못 외울 수 있죠


“MBTI가 어떻게 돼요?”  


그러면서 꼭 몇 마디가 따라붙는다. 


“제 생각에 주홍 씨는 ESTP이거나 ISTP 같은데, 아무튼 STP는 확실하죠?”


그렇게 확실한 거 같으면 뭐 하러 물어,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나는 늘 똑같이 대답한다. 


“저는 제 MBTI 몰라요. STP가 뭔지는 더더욱 모르고요. 하하하.” 


그러면 상대방은 매우 황당해하며 이렇게 말하곤 하는 거다. 


“어떻게 본인 MBTI를 모르세요??!!”


그 말의 뉘앙스나 분위기, 시선이 딱 아래와 같다. 


“어떻게 본인 주민등록번호를 못 외울 수 있죠?”
 “…….”


 아마도 상대방은 MBTI를 주제 삼아 서로의 유형을 짐작하고 하나씩 맞춰가며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던 것 같은데, ‘본인 MBTI도 모르는 놈’과 무슨 대화를 더 할 수 있겠냐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뚝 닫아버린다. 그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이다. 


그럼 나는 정말로 MBTI를 모르냐. 혹시 숨기고 싶어서 모르는 척하는 거 아니냐. 아니다. 뭘 숨기고, 모르는 척 내숭 떨고, 에둘러 표현하는 등등. 그런 성질머리 못 된다. 그렇다면 먹고 사는 게 바빠 검사할 시간이 없었던 거냐. 그것도 아니다. MBTI 유행한 지 꽤 된 거로 안다. 내가 아무리 바빴어도 그거 검사해 볼 시간 없었으려고. 찾아보니 12분 내외면 검사할 수 있다는데. 



고백하자면 이 악물고, 허벅지 찔러가며 검사 안 했다. 그러니까 단순히 ‘모른다’라기 보다는 ‘모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같은 맥락으로 I와 E가 어떻게 다른지, S와 N은 또 뭐고, T와 F가 각각 무얼 상징하며 P와 J 중 어떤 게 좋은지도 모른다. 그간 찾아보지 않았고, 누가 얘기하든 귀담아듣지 않았다. 알파벳 여덟 가지가 I, E, S, N, T, F, P, J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이 글 쓰기 위해 찾아봤다. 물론, 각 알파벳이 뭘 뜻하는지도 전혀 모른다. 


정리하자면 MBTI가 성격 유형 검사라는 것과 네 가지 분류 기준이 있다는 것 정도.(그 네 가지가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MBTI 관련해 내가 아는 전부다. 아, 계획형이니 외향형이니 하는 특정 단어도 들어본 거 같다. 아무튼 그 정도다.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모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느냐고? 본인이 어떤 유형인지 검사 안 하는 건 그렇다 쳐도, 네 가지 분류 기준과 각각의 특성에 관해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않느냐고?     



캐서린인지 탬버린인지 난 모르겠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난 MBTI가 싫다. 그냥 싫은 게 아니라 매우 싫다. 무엇보다도 신뢰할 수 없다. 태어난 해(年)를 육십갑자로 바꾸고, 태어난 월(月)을 열두 절기로 분류하고, 여기에 태어난 일(日)과 시각(時)까지 고려해 인간 유형을 25만여 가지로 구분하는 사주명리학(거칠게 정의하자면 그렇단 얘기다.)도 난 신뢰하지 않는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불과 몇 분 차이로 태어나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쌍둥이도 설명 못 하는 게 사주명리학이다.(다시 말하지만, 거칠게 표현해 그렇단 얘기다.) 


그런 마당에, 인간 유형을 열여섯 가지로 구분하는 MBTI를 도대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냔 말이다. 내 학창 시절을 지겹게 괴롭혔던 혈액형별 성격보단 그나마 좀 낫다만, 그래봤자다. 100명이 모이면 100명 다 다른 게 세상사다. 고작 열여섯 가지 인간 유형이라니.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다. 그날 컨디션, 기분에 따라, 친구들과 번잡한 번화가를 우르르 몰려다니며 시끌벅적 떠들고 싶은 것도 나란 놈이고, 집에서 조용하게 재즈 들으면서 커피 마시고 책 읽는 모습 또한 나다. 어떤 여행은 꼼꼼히 계획하고 빈틈없이 준비해 시간표대로 움직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자동차 트렁크에 캠핑 장비 잔뜩 때려 넣고 발길 닿는 아무 데서나 짐 풀기도 한다. MBTI에 해박한 당신에게 한번 물어보자. 나는 과연 어떤 유형인가.


나이도 성별도 국가도 모르는 캐서린인지 탬버린인지 하는 사람이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1944년 개발했다고 하는 검사표가, 43년 뒤 동북아시아의 자그마한 나라에서 태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38세 남성에게 유의미할 거라고? 너무도 멀고 아득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나도 나를 정확히 모르는 판에(내 안에 또 다른 자아가 2만 7천 가지 정도 있는 판에) 캐서린인지 탬버린인지 하는 사람은 내가 어떤 유형인지 맞힐 수 있을까. 과연?


캐서린 쿡 브릭스(Katharine Cook Briggs)와 그녀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Myers)


신뢰할 수 없는 MBTI 집어치우고, 대화가 하고 싶은 거다. 소개팅 안 한 지 너무 오래라(이젠 맞선 볼 나이다.) 잘 모르겠으나, 요즘은 만나자마자 MBTI부터 묻는단다. 그다음부턴 전개가 빤하다. 상대 유형 파악했으니, 더 궁금할 것도 물을 것도 없다. 상대가 어떤 행동 하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 한 번씩 끄덕여주며 “아~ 역시 T.”만 해주면 된다. 참 쉽고 간단하다. 


쉽고 간단한 거(이를테면 드라이빙 스루로 먹는 햄버거와 커피 같은 거) 나도 참 좋아한다. 근데 인간관계까지 그래야만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꼭 소개팅 아니라도 살다 보면 새로운 사람 만날 일이 많다. 그럴 때 MBTI 대신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카페에서 만난다면 따뜻한 커피 시키는지 차가운 커피 시키는지, 샷을 추가하는지 안 하는지, 커피가 아니라 차나 과일주스 같은 거 시키는지 눈여겨보기도 하고. 상대가 추운 겨울임에도 차가운 커피를 시킨다면 “혹시 얼죽아?” 하면서 괜히 공감대도 형성해 보고. 그런 대화와 애정으로 상대방 취향이랄지 성향을 조금씩 알아가고, 기억해 뒀다가 다음에 만날 때 좋아한다던 작가의 신작 소설책을 슬쩍 선물해 주는 그런 관계. 난 그렇게 사람을 사귀고 싶은 거다. MBTI로 쉽게 판단하고 가볍게 관계 맺고, 그리하여 헤어짐조차 가벼운 그런 관계 말고.      



A형이라서 삐진 게 아니라니까


재밌자고 하는 건데 뭘 그리 진지하게 덤비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 밝히자면 난 A형이다. 학창 시절, “아~ 이 새끼 A형이라 소심해서 또 삐진 것 봐~ 아무튼 졸라 소심해.”라는 걸로 모든 상황과 맥락이 눙쳐지고, 모든 잘못과 결과를 책임져야 했던 숱한 날이 억울해서 그런다. 그때가 생각나서. 분명히 말하는데 A형이라 삐진 게 아니다. 너와 내가 함께한 많은 시간이 있는데, 하여 이 정도면 네가 내 마음을 헤아려줄 거라 기대했는데, 네가 생각보다 차갑게 굴어서 섭섭했던 것뿐이다. 


마찬가지다. 너와 함께할 여행을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알차게 보낼까 싶어서, 다만 1분이라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 2박 3일의 짧디짧은 여행이 너무나 소중해서, 이왕이면 사랑하는 너에게 맛있는 음식과 커피를 대접하고 싶어서, 그래서 찾아보고 알아보고 계획하는 것뿐이란 말이다. 내가 계획형 ‘J’라서가 아니라. 너를 향한 내 애틋한 마음을 고작 ‘J’ 따위로 눙치지 말란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 시절 나에게 ‘소심남’이라고 놀렸던 친구들은 알까. 현재 내 별명이 ‘쏘가리’라는 걸 말이다.(참고로, 쏘가리는 검정우럭목에 속하는 담수어로, 물 흐름이 빠르고 바닥에 바위가 많은 여울에 주로 서식한다. 위협이 가해지면 등지느러미에 달린 가시를 세운다. 가시에 찔리면 염증이 생겨 붓는 경우가 잦다. 그럼에도, 민물고기 매운탕 중에서는 쏘가리 매운탕을 최고로 친다. 하여, 낚시꾼에게 인기가 많다. 「나무위키」 참고.) 


이 놈이 쏘가리다.

별명이 왜 ‘쏘가리’냐고? 위아래도 없이, 물불 안 가리고 아무 데나 쏘아붙인다나 뭐라나. 내 입장에선 ‘위협이 가해져서’ 쏘는 것뿐인데, 허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