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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구 Jan 21. 2022

#13. 왜 살아야 할까? 물었던 순간들.

[댕경X인영구] 인영구로부터, 마침.


참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가 오빠와 함께 메일을 주고받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시작이 말이야. 2019년 12월 30일이었다는 걸 오늘 알았어. 지금은 2022년 1월 21일이니까. 지구가 태양을 돌고, 또 돌고. 아주 먼 시간을 건너 여기까지 왔네.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눠도 그게 마음에 남지만,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에 나눴던 대화가 마음에 걸렸어. 내가 힘든 당신의 마음에 돌을 얹었던 걸까 봐, 조금 더 생각을 해보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나. 내가 겪어보지 못한 슬픔에 너무 아는 척을 했던 건 아닐까. 그런데 나는 요즘도 그런 생각을 해.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게 너무 어려워. 나는 나를 지키고 싶은데…. 사람들이랑 대화를 할 때마다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어. 나를 속이고, 나를 지우고, 그 사람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는 건 대화일까? 





그때 오빠의 이야기를,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영아, 나는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처럼 들렸어. 오빠가 다른 이야기를 했는데도, 그날의 우리 대화는 참 평범했는데도. 나는 자꾸만 그렇게 들렸어.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는 모르겠어서 바보처럼 매여있지 말라고 얘기했어. 사실 그때 누구보다 매여있던 건 나였는데도.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 믿고, 오랫동안 울고 있던 건 바로 나였는데도. 




나는 묻고 또 물었어. 왜 살아야 할까. 왜 자꾸만 이런 일들을 겪어내야 할까. 누가 이 삶을 이렇게 외롭고 슬프고 아프게 만들었을까. 이걸 왜 버텨야 할까.





돌이켜보니 나는 슬픈 날에 메일을 보냈더라. 오빠의 이야기를 듣는 날들은 평범했거나, 메일함에 뜬 '댕경'이라는 이름을 보고 행복해졌거나. 내가 보낸 메일이 몇 편 없는 걸 보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은 그 정도였을까, 생각해보게 되네. 너무 슬픈 날에는 아마 삼켜내느라 보내지 못했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게 없는 걸 보면 또 별 일 아닌 일에 꽁해있던 날들이었을 것 같기도 해. 참 어이가 없다. 나를 그토록 힘들게 하고 짓눌렀던 순간들이 기억이 안 난다는 게. 




그래. 정말로 이 삶이 말이야. 어떤 때는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지만 어떤 때는 또 이렇게나 기쁘고 좋은지 모르는 날도 있는 것 같아. 중요한 건 우리가 '모른다'는 거지. 이 시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무슨 색으로 펼쳐질지, 마법 같은 일들이 남아있는지, 끔찍한 아픔이 가로막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는 거지. 김연수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삶이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건,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과, 한 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 같아. 늘 나쁘지 않았고, 우리는 이겨내 왔다는 것. 그 슬픔이 다시 내게 닥치지는 않을 거라는 것. 나는 여전히 그 점들이 마음에 들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어떤, 힘일지도 모르지.





오빠에게 해줄 대답을 찾으면서 사실은 나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아.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이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지. 나의 이 깊은 외로움을 누구와 나눌 수 있을지. 그건 부모님이나 친구, 혹은 애인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던 것 같아. 차라리 나를 아예 모르는 지구 건너편 누군가가 더 나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나는 나를 아는 사람이 필요했어.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 말고, 본인의 이야기를 해줄 사람. 나를 겉으로 따지거나 재는 사람들 말고, 나의 진심, 속 안을 들여봐 줄 사람. 나 역시 오빠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리고 메일을 주고받고 후기를 남기는 이 시점에 우리가 서로에게 그러했냐고 묻는다면… 어때? 




우리가 주고받았던 그 편지가 나의 2020년을 지탱했고, 2021년을 빛나게 했고, 2022년을 기대하게 만든 것 같아. 아주 멋진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해. 나는 많이 나아졌어. 아주 많이. 다정한 책도 많이 읽고, 다정에 대해서도 쓰고 싶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여전히 자주 흔들리고 무너지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래도 나는 더 이상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했어. 나는 그냥 오늘을 지탱하며, 빛내고, 기대하며 살기로 했어. 그게 삶의 희망이 된다는 걸 이제 나는 아니까.




2019년에 처음 편지를 보낼 때는 큰 비가 내린 때였는데, 엊그제는 큰 눈이 내렸네. 비슷한 겨울이야. 그래서 비슷한 인사를 보내려 해. 오빠, 바람은 차고, 하늘도 한바탕 울고 갔으니 이제 해가 뜰 차례야. 내가 보낸 마음은 잘 갔을 거라고 믿어. 나한테 메일을 보내줘서 고마웠고, 멋진 답장들을 보내줘서 고마웠어. 우리가 언제 또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곁에 있음을 실감하면서. 안녕.





2022. 01. 21.

인영구로부터 보내는 편지, 마침.




INS.

댕경 @luvshine90                                    

인영구 @lovely___09                                  

지름길 @jireumgil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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