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만 Apr 18. 2022

물뱀

산골에는 집이 두 채가 있었다. 언덕 위에 있는 외할머니의 집과 언덕 초입에 있는 할아버지의 집.

이장님의 집이 조금 더 오래되었다. 여름이면 비가 새던 다락 어디엔가는 커다란 구렁이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집이었다. 왜곡된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기론 그 할아버지는 침술에 능했었다.

시큰거리는 무릎에 꽂히던 얇디얇은 침과 빳빳한 등에 붙던 부항을 나는 보았다. 대문 밖까지 흘러나오던 약재의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했던 냄새도 기억한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년도 더 전의 일이다. 마을버스가 하루에 한 대만 다닐 산골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하나만 있었다. 그것도 낡디낡아서 전원을 켜면 탈곡기인지 선풍기인지 모를 정도였다. 소리는 시끄럽지만 영 시원하진 않은.

그래서 나와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러 갔다. 침을 잘 놓는 할아버지 집 앞 계곡이었다. 정수리로 떨어지는 해는 따갑지만, 계곡물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웠다. 누워서 쉴 수 있는 커다란 바위도 있고, 깊지 않아 더위를 식히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쪼글쪼글해질 무렵.

"꺅"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비명에 나무 그늘에서 꾸벅꾸벅 졸던 새들도 일제히 날아올랐다.

뱀이 어쩌고, 누구를 물었다. 뭐 그런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비명은 이내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어른들이 놀라서 달려 나왔다. 황급히 아이를 둘러메고 흰옷을 입은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하얀 발목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던 부항을.

투명한 유리병에서 소용돌이치던 붉은 피를.

머릿속까지 울려대던 울음소리를.

물뱀에게 물린 거라고 했다.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히고 있던 우리에게 기척도 없이 다가온 물뱀.


그때부터였을까?

시퍼런 물은 늘 날 무섭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탑승은 자유지만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