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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만 Oct 18. 2022

밀린 일기

오랜만에 일상을 기록해보자.


1. 월, 화 저녁마다 줌으로 2시간씩 강의를 듣고 있다. 

6시에 퇴근을 하고 7시에 강의라서 부리나케 집에와서 샤워를 하고(외출하고 돌아오면 꼭 샤워를 해야 하는 사람), 별이 뒤치다꺼리를 하고, 세탁기를 돌려놓고 자리에 앉아서 샌드위치 따위를 뜯는다. 그러다보면 강의가 시작된다. 수업은 두 시간인데 내가 그렇듯 온전히 집중을 하진 못한다. 그래도 집중력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들어본다. 피곤하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 


2. 생애 선배 별이는 인지 장애를 겪고 있다.

인생 선배라고 하기에는 별이는 개고, 견생 선배라고 하기에는 내가 사람이라서 나보다 먼저 노년기를 겪고있는 별이를 뭐라고 칭해야 할 지 애매하네. 생애 선배 정도로 합의 보면 될까.

아무튼, 심비대증 약을 먹고 있는 별이 선생이 얼마 전부터 안하던 잠투정을 했다. 허공을 보고 앉아 있다거나, 잘 자는 동생의 머리나 배 위에 올라가서 잠을 방해하거나. 어떤 날에는 짖어댄다. 

별이가 심장이 커져서 기관지 협착이 와서 심장을 되도록 아껴줘야 하는데, 밤에 잠을 못자는게 활동량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산책을 조금 더 시켜봐도 똑같더라. 

정기진료 간 김에 여쭈어보니 별이가 나이도 있고, 인지 장애 초기 증상 같다고 했다. 사람도 늙으면 치매가 오듯이 개들도 똑같다고 했다. 노화에 따른거니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그렇다. 받아들여야지. 그래도 별이가 밤에 잠을 못자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짖을 때, 내가 꼬옥 안아주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잠을 자곤 한다.

노화가 오고 우리는 새로운 별이의 모습을 마주하고, 우리는 또 새롭게 적응해 간다.


3. 글을 써야 하는데.

이번 달 말까지 심사고를 제출해야 하는데, 내 글 구려병이 정말 심각한 단계다. 솔직히 말해서 울고 싶다. 내가 어쩌자고 계약을 했지.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이번달까지 내 본다고 했지. 온갖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볼 때마다 허술하고, 문장은 고칠 때마다 너저분하다. 이걸 마무리하는 날이 올까. 정말 끔찍한 기분이다. 이것 때문에 요즘은 즐겨 읽던 웹소설도 못 읽겠다. 띵작을 읽다보면, 그래 이런 사람들이 글을 쓰는거지 나 같은 애가 무슨 글이야. 가슴속으로 울어버리는 거다. 근데 그래도 어떡해. 해야지. 오늘도 눈물을 삼킨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좋다.

정말이다. 사놓고 발효중인 책들도 많고, 아직 모르지만 읽고 싶어질 책들도 많고,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담긴 책도 한 바가지다. 책을 읽고나서 몰랐던 사실을 배울 때도 짜릿하고, 멋진 문장에 혀를 내두르는 것도 좋다. 

매력적인 주인공에 과몰입해서 머리를 싸매고 혼자 뇌내 망상을 하는 것도 좋고, 달고 살던 스마트폰도 잊은 채 정신 없이 책장을 넘길 때도 좋다. 책에서 소개되는 다른 책을 읽고, 그 추천한 책이 추천하는 다른 책을 읽는 꼬리에 꼬리를 무든 독서도 즐겁고,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해서 절판된 책까지 중고로 구입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같은 책을 읽은 친구와 책 내용으로 수다떠는 것도 행복하다. 한글로 번역 된 외국 작가의 책을 읽을 때 이런 단어를 쓰다니 번역가 천재 아니야? 하는 짜릿함도 놓칠 수 없다. 그저 눈길이 가는 표지에 책을 사서 읽었는데 내용이 좋았을 때도 좋고, 종이를 손가락으로 넘기는 촉감도 좋다. 그래서 평생을 강경 종이책파로 살 줄 알았더니 이북도 곧 잘 보더라. 아무튼 그렇다. 책은 정말 쉽게 질려버리는 내가 유일하게 붙들고 있는 취미다. 앞으로도 줄곧 붙들고 있지 않을까. 


5. 기분 그래프는 하향 곡선

사람의 삶은 곡선이다. 적어도 내 삶은 그렇다. 요즘 내 기분은 하향중이다. 입에서는 여전히 나사빠진 농담이 줄줄 나오지만 내 진짜 기분은 그렇다. 날씨 때문 만은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정말 술을 줄였다. 괴로울 수록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고, 떠안지 않아도 될 우울까지 불러오게 된다. 지난 번 하강 시즌에는 술만 마시면 취하도록 마시고, 혼자 짱박혀서 울었던 것 같다. 근데 그게 또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보이면 쪽팔리니까 밖에서 한참을 시간을 죽이다가 들어가곤 했었다. 정말 정신 없었다. 술에 취하면 그렇게 회한이 밀려오고, 차마 전하지 못한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그렇게 여기 저기 연락을 했었다. 이게 또 일기를 쓰다보니 말이 많아지네, 아무튼 그러고 나서 속이 시원해지거나 문제가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다. 아무튼, 내일이 회식인데, 술은 적당히 먹으려고 한다. 어차피 술 하도 안마셔서 몇 잔 안마셔도 어지럽더라.

그냥, 그렇다. 또다시 찾아 온 하강시즌이 언제 끝날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예전보다는 용감하고 솔직하게 스스로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솔직해서 스스로의 구림을 적나라하게 봐버리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도 들지만, 뭐. 그래도 기본적으로 나는 밝은 긍정충이니까. 잘 보내지 않을까. 싶다.


6. 한성 컴퓨터 무접점 키보드 좋다.

이걸 왜 이제 샀냐. 너무 좋다. 진작에 살 걸. 소리가 예술이다. 친구들이 십얼마 짜리 키보드 살때 미친놈 아니야 했는데, 미안. 이제 나도 그 미친놈이야.


7. 우드 

콧구멍이 찬 기운이 스치니 우드향이 더 좋아죽겠다. 아주 돌아버리겠다. 작년까지만 해도 머스크에 돌아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한 여름에도 무조건 우드다. 오드우드, 재즈클럽, 위스퍼인더라이브러리랑 취프로젝트에서 만든 사찰 핸드크림 향 오진다. 도테라 인튠 향도 나를 돌아버리게 한다. 오일 하니까 프랑킨센스도 개좋다. 암튼 그렇다. 


8. 피곤하다. 오늘은 이만 하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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