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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Mar 02. 2024

갓생사는 고딩엄빠를 보고

원래 예능을 잘 안보는데 이상하게 고딩엄빠는 가끔 켜보곤 한다. 처음엔 21세기 한국에 이런 삶도 있나 싶어 충격이였다가, 그 후에는 또 나름 열심히 사는 부부들도 나와서 응원하는 마음이였다가, 그 후에는 그냥 생것으로 나오는 아가들이 귀여워서 생각이 났다가, 다양한 이유로 미싱할때 가끔 켜보는 프로가 되었다. 나도 뭐 많은 회차를 켜본건 아니지만, 특히 서장훈이 나오고 나서는 훨씬 재밌어졌다. 그의 발언이 조금씩 동감가기 때문이려나.


고딩엄빠는 미성년자에 아이를 가지거나 낳아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다. 초반에는 몇십분간 주인공의 사연을 재연하고 나서 실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난 초반 사연재연은 스킵하는 편이다. 원래 고딩엄빠에는 이혼해서 힘들게 어린 아이를 키우는 집이 많이 나오는데, 일부 화목하거나 경제적 사정이 좋은 집들도 있다. 혹은 시댁이나 친정에서 지원이 좋은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학생이 돈을 벌고 육아를 동시에 하기는 힘든 사회기에, 대부분은 힘들어보인다.


그런데 오늘 본 고딩엄빠는 완전히 달랐다. 오늘은 시즌 4, 10회차를 봤다. 아이돌 뺨치는 외모와 몸매, 일반인 보다 훨씬 많은 벌이에 인플루언서기까지 했다. 재연을 안봐서 정확한 사연을 모르겠으나 둘째가 5살인걸로 보아 얼추 20대 중반이였다. 그녀는 다정한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면서 사업도 하고 있었다. 완전한 갓생이였다. 이혼가정에서 태어나 고딩엄빠로, 또 이혼가정이 되어 소도시에서 혼자 그렇게 책임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싶었다. 


방송에서는 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한게 문제라는 식으로 나왔지만.. 일반 사람들도 자영업하다보면 자녀들과 이정도 시간도 맞대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하물며 이혼가정에서 혼자 자영업 하면서 생계유지하는데 이 이상을 뭘 어떻게 잘해.. 아이들이 한두살도 아니고, 대여섯살이면 어차피 금방 친구들과 함께 뛰놀게 될텐데 뭐. 내가 보기엔 이 이상 잘해낼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이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면 쌓은게 얼마나 많을까. 너무 멋져보였다.


원래는 남의 삶은 남의 삶, 내 삶은 나의 삶. 해서 갓생자극을 잘 받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좀 달랐다. 어떤 환경에서도 할 사람은 하는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고딩엄빠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그렇지, 일찍 아이를 낳고 가정을 만든다는 것은 장점도 꽤 많은 일이다. 어차피 아이가 태어난 환경이라면, 최선을 다해 장점만 보고 행동해야하지 않겠는가. 고등학생이 돈을 벌면서 아이를 키우기가 너무 어려운 환경이라 그렇지만,  키우고 나면 훨씬 삶이 빠를거다. 물론 계획임신은 없겠지만.. 이미 낳았다면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건사하는게 최선 아니겠나. 


그래서 난 고딩엄빠에 너무 정신차리지 못한(?) 친구들이 나와서 힘들다고 하소연하는것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서 본인의 삶을 지탱하는 유형의 친구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간간히 그런 싱글맘들도 출연하고는 한다. 중요한건 나이가 아니라 본인의 행동거지와 마음이다. 그런 친구들이 성인이되어 아이를 낳는다 한들, 사실 뭐가 얼마나 다를까 싶다.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된 세상에, 한번 검색으로도 나오는 정보를 몰라서 마음대로 하는 참여자도 많다. 방송에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일반적인 사람들 사이, 심지어 경제적 준비가 된 상황에서도 얼마나 엉망으로 육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많냔 말이다. 


나는 혼전임신도 좋게 보지 않는 편이다. 살면서 거의 가장 중요한, 아이를 낳는다는 시기 앞에서도 피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것은 주체성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것은 개를 키우거나 물건을 사는 것과 온전히 다르다. 한 영혼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수없이 손이 가고, 날 판박이처럼 따라할텐데, 내가 스스로 준비되고 나서 육아를 해도 힘든 마당에, 준비도 안되었는데 시작한다? 상대에게 전반적인 신뢰가 쌓이기 어렵다. 또한 나와 온전히 다른 사람인, 남편과 결혼해서 서로 맞추는 시기마저도 생략된 것이 아닌가. 이건 경제적 준비가 되었다거나, 시간적 준비가 된거랑은 다른 문제다. 아이를 키우는건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을 키우는데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에서도 다양한 지원을 아낌없이 하지. 


하지만 일단 주변에서 혼전임신을 하였다면 축하한다고 한다. 내가 거기서 어떻게 더 뭐라고 할 수 있겠나. 이미 생긴 아이고, 낳기로 결정했다면 좋은 점만 보고 최대한 열심히 준비해야지. 혼전임신과 별개로 이른 출산은 삶의 속도에 있어서 꽤 효율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고딩엄빠 같은 경우는, 보통 10-15년을 나에게 쓸 시간과 돈을 아이와 가정에게 사용하게 된다. 샐 돈과 시간이 없다는거다. 어차피 둘 낳을 생각이였으면 더 건강할때, 더 일찍 낳아서 집중하는게 나을 수도 있다. 다만 자기계발과 친구들과의 유대, 더 좋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눈이 숙성되는 과정을 모두 생략해야겠지. 근데 꼭 시간이 더 간다고 더 좋은 사람과 만난다거나,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생각은 그렇지만 난 어차피 결혼을 하고 양육을 할꺼면 남들 하는때에 하는걸 선택했다. 친구들과도 비슷한 이야기나 고민을 나눌 수 있고, 경제적인 것도 어느정도 준비된 다음에 시작하고, 무엇보다 30대 이전에는 내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 결혼은 사실 상대는 확실했고, 생각한만큼의 경제적 준비나,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양가의 강압으로 일찍한게 맞고, 임신은 진짜로 내가 엄마가 될 수 있겠다 싶을때, 음 내가 사는게 꽤 괜찮은 방식이구나 싶을때 준비한게 맞다. 경제적 준비는... 원하는 만큼 준비하려면 시작을 못할것 같네요.


하지만 어떤 일이든, 닥치면 열심히 해야지. 개인적으로는 고등학생이 임신을 하면 중절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엄마와 아빠의 삶을 더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쉽기 때문이고, 현실적으로 고등학생이 엄청나게 부유하지 않은 이상 돈을 벌면서 육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30대가 되어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또 고등학생때 만난 연애상대가 평생 함께할 부부상대로도 적합한지에 대한 문제는.. 대부분 결혼할때 중요한 가치와 연애할때 중요한 가치가 아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장기연애를 해서, 대학 졸업이후에 다른 연애를 할 기회도 없었지만, 결혼하고 하나 느낀게 있다. 연애용 남친으로는 잘생기고 돈 잘쓰는 사람이 최고라는거다. 아니 그 사람이 대출이 있던 없던, 직업이 있던 없던, 사채를 끌어써서 데이트 비를 내던말던 뭔상관이야. 걍 나한테만 잘쓰고 놀러만 잘가면 된다. 연애는 걍 서로 재미만 있으면 된다. 하.. 근데 결혼은 다르다. 종합적으로 볼게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인성이 제일 중요하다. 서로 제일 힘들때도 어쩔수 없이(?)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짧게 불타는 연애를 많이 해보시고, 잘생긴 사람 많이 만나는게 연애시장에서는 최고인거 같다. 회전율이 좋아야한다. 20대는 인생에 너무 짧은 시기다. 뭐든 없어야 귀함을 안다고, 그땐 왜 몰랐을까. 하긴 청춘인걸 알면 그때가 청춘이겠어. 사실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한 20년은 연애시장에 두고, 40대나 결혼해야되는게 아닌가 싶다. 그게 합리적인거 같애. 근데 출산이 껴버리니까 그게 합리적이지 않은거지.. 출산은 적령기가 있는 행위니까. 셋째를 임신한 내 친구는 역시 20대와 30대초반의 출산은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나야 이미 뭐 느낄수 없는 경험이지만.


어쨋든 갓생사는 고딩엄빠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도 지금 위치에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출연자를 응원하는 마음도 들고.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방송에 나오지 않은, 지금의 것들을 준비하는 시간에는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묵묵히 혼자서 헤쳐나가야 했을 텐데,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잘만 사는 어린 친구도 있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봐야지! 오랜만에 의지가 활활 불타는 컨텐츠였다. 고딩엄빠 팀, 이런 컨텐츠 많이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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