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영 Sep 30. 2021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혼자 살았던 5년 동안 손님을 제대로 대접한 적이 없었다. 내가 살았던 서울 잠실의 열 평도 채 안 되는 좁은 원룸은 집이라기엔 방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가진 물건이 많지 않아 어수선하진 않았지만, 그곳은 여가를 즐기기엔 어쩐지 아쉬운 곳이었다. 나는 그곳을 대개 잠을 청하는 용도로 사용했고, 때때로 책을 읽거나 플로우를 뺀 요가 아사나 연습을 하곤 했다. 그게 전부였다. 심지어 사는 내내 요리는 고사하고 웬만해선 음식물도 들이질 않았다. 냄새 배는 게 싫어서. 덕분에 음식물 쓰레기를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알 턱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한 번은 모처럼 딸의 집까지 먼 길을 온 엄마에게 "씻고 옷부터 갈아입어야지" 라며 다급히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도착하자마자 땀을 훔치며 막 침대에 걸터앉으려던 참이었다. 내 딸이지만 정나미가 떨어진다며 질색하던 엄마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또, 처음으로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놓고, "이 집엔 먹을 게 물 밖에 없어" 라며 뻔뻔하게 아무런 옵션도 제시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날 우리가 뭘 먹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용케 그 방에서 셋이 함께 잔 기억까진 있는데.

 이사 나올 즈음 놀러 온 친구가, 소문대로 아무것도 없는 집이라며 코드가 뽑힌 채 수납장으로 쓰이는 냉장고를 열어보길래, "집에 음식 냄새나는 게 싫어서 음식을 해 먹지 않는다"라고 하자 현관 앞 조리대로 갔다. 주방에는 후드라고 불리는 환풍기가 있다며. "우리 집엔 그런 거 없는데?"라고 하자, 친구가 인덕션 위에 있던 후드를 당겨 보기 좋게 작동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설마, 이걸 몰라서 여태껏 요리를 안 했던 건 아니지? 응, 아니야. 아니긴 아닌데, 조금 민망하네.




 그랬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내 모습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제주로 이사한 후 내게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 격변이라 할 만한 것은 아무래도 -




 요리가 일상이 된 것이다. 원래 집에선 배달음식을 잘 시켜먹지 않기도 했고, 지금 사는 집은 배달되는 음식점이 단 한 군데도 없기도 하고(배달의민족 모든 카테고리가 '텅'으로 표시되는 걸 경험한 사람이 전국에 몇 프로나 될까).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다 보니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장을 한꺼번에 봐 두고 집에서 해 먹는 게 훨씬 수월하다. 두 끼중 한 끼는 간단히라도 요리를 해 먹다 보니 이젠 제법 자신 있는 요리도 몇 가지 생겼다.

 매일 요리하는 것만큼이나 큰 변화는, 손님을 대접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계기는 약 8개월간 함께 살았던 동거인이자, 앞서 말한 자취방 에피소드의 마지막 등장인물인 서지의 영향이 크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나는 서지와 함께 사는 동안, 그가 집에 온 손님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눈여겨볼 수 있었다. 누군가 집에 오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멀뚱히 서있던 나와는 달리, 서지는 손님에게 차를 내어주고, 그들을 위해 솜씨 좋게 요리를 했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몸에 밴 듯 자연스러운 것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살면서 집에 '손님'이 오는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 어느 시절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그만큼 우리 집은 가족끼리 살기만도 벅찬 곳이었다.

 서지와 함께 살며 손님 맞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나는, 이제 혼자 사는 집으로 친구들을 곧잘 초대하곤 한다. 손님이 오기 며칠 전부터 그들을 위해 할 요리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손님의 취향에 따라 준비하는 요리도, 곁들일 술도 조금씩 달라진다. 여유가 있다면 제주시까지 가 와인을 잔뜩 사 오기도 한다. 손님이 오기 하루나 이틀 정도 전엔 유기농 마트에 가 신선한 식재료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평소 과일이나 간식을 그리 즐기지 않는 나는, 그럴 때만큼은 후식으로 어울릴 만한 과일이나 치즈, 비스킷을 즐거운 마음으로 고른다. 가끔은 손님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한다. 전날 밤엔 어김없이 집을 깨끗이 청소한다.

 그렇게 며칠의 마음이 쌓인 끝에 초인종을 누른 손님을 환한 미소로 맞는 그 순간. 나는 그 순간이 매번 설레고 두근거린다. 내가 사는 집에 처음 발을 들인 손님의 표정을 나는 좋아한다. 우리는 밝은 표정만큼이나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나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대체로 손님들은 무언가 하나씩 손에 들고 들어온다. 나만큼이나 그들도 이 시간을 기대하고 준비한 것이리라. 그것이 어떤 물질로 표현되었든,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소수의 인원을 집으로 초대하면 좋은 이유는 그만큼 서로에게 집중할  있어서다. 우리는 번잡한 식당에서와는 달리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있다. 때로는, 아니  심도 있는 이야기가 밤이 깊어질 때까지 오간다. 나는 그럴 때마다 시간이 정말이지 소중하게 흐르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길까지 기꺼이 와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제주에서 혼자 살게 된 건, 어쩌면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게 된 것.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는, 진심으로 누군가 '어서 오길' 바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엔 어떤 손님을 맞이하게 될까. 그와 함께 보낼 시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깊은 가을밤을 깊은 이야기로 채울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고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