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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me Jun 21. 2020

'엄마' 하면 생각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빨래한 묵은지 밀가루 전

나: "엄마는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음식이 뭐야?"
엄마: "어? 갑자기?"

나: "응 그냥 생각나는 거 대답해봐."

엄마: "잡채."


헉! 띠용! 뭐지? 몇 시간 전 푸드테라피 시간에 잡채라고 외치셨던 분이 떠올랐다. 그분의 모습과 엄마가 겹치며 잠시 말을 잃는다.


"엄마 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뭔가요?"라는 질문에 "잡채요"라고 푸드테라피 시간에 누군가가 크게 외쳤었다. 강사는 물어봤다.

"오~ 잡채요? 왜 잡채가 생각나셨어요?"
"글쎄요?"

"음 잡채는 어떤 음식이죠?"

"어.. 손이 되게 많이 가는?"

"그렇죠. 근데 왜 손이 되게 많이 가는 잡채가 떠올랐을까요?"

"아.. 제가 잡채가 먹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한 번도 안 해주신 적이 없어요. 근데 저는 위로는 오빠 둘 밑으로는 여동생이 있는 중간에 끼인 딸이었어요. 그래서 사실 엄마와 하루 중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얼마 안 되었죠. 근데 그 손이 되게 많이 가는 잡채를 만들어 제 앞에 내어 주실 때 저는 엄마의 사랑을 느낀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라도 느끼고 싶었을 수도 있고.. 아.."

잡채라고 힘차게 외쳤었던 그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웃으며 눈가에 눈물을 맺으셨다.


내가 엄마에게 질문을 한 후 잠시 말을 잃었던 이유는 그분과 비슷하게 우리 엄마도 언니 둘, 오빠 하나, 여동생이 있는 넷째 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의 지난날들이 잠시 동안 눈 앞에 펼쳐졌다. 신기함을 뒤로하고 서둘러 난 엄마에게 푸드테라피 시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는 “오... 그래? 나도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네.” 라며 생각에 잠기신다.




          그렇다면 나는 '엄마' 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무엇일까?





결혼을 하고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 엄마의 집 밥이 그립다. 그리고 엄마가 자주 해주던 음식들을 흉내 내어 남편과의 밥상에 차려보기도 한다. 특히 묵은 김치를 빨아서 밀가루 옷을 입힌 후 기름 두른 팬에 부치는 ‘묵은지 밀가루 전’이 대표적이다. 내가 붙인 이름이지만 이름도 참 길다. 난 ‘엄마’ 하면 이 전이 떠오른다.


요즘 퓨전이다 뭐다 해서 여러 가지를 혼합하여 영양가를 높인 휘황찬란한 전들도 많지만 묵은 김장 김치를 빨아 밀가루 옷만 입혀낸. 소박하지만 일 년 내 묵은 경력을 자랑하며 깊은 여운을 주는 '묵은지 밀가루 전' 말이다.            


하지만 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묵은지 밀가루 전’을 좋아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 ‘묵은지 밀가루 전’은 명절에 차려지는 휘황찬란한 전들과 대비되어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듣보 전이었기 때문이다. 명절 때마다 제사 지내고 남은 듣보 전을 꼭 집에 싸와서 부쳐먹는 엄마를 보며 난 제일 인기 전이었던 녹두전을 입에 넣고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얘기했었다.

나: “그게 무슨 맛이야?”
엄마: “야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너도 한 번 먹어봐~”
나: “우웩. 싫어. 딱 봐도 밍밍하게 생겨가지고. 김치를 왜 굳이 빨아서 전을 해? 차라리 그냥 빨간 김치전이 맛있지”
엄마: “엄만 이게 맛있다~~ 엄마가 다~ 먹을 거니깐 넌 먹지 마라~”
나: “절대 안 먹어!!”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랬다. 우리 아빠가 그랬다. 옳은 말씀이었다.
지금은 나도 그 빨래된 허여 멀 거 한 ‘묵은지 밀가루 전’이 최애 전이된 것이다.

내 입맛의 변화일까? 재료의 변화일까?
변화.... 변화가 있다면 외할머니의 부재이다.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는 다섯 남매를 키우셔서 손주들이 많았지만 다른 손주들 몰래 나에게 몇 천 원씩 용돈을 쥐어주셨었.  하지만 이제 제사 외할머니도, 듣보 전도 볼 수 없다.

대신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가 묵은지 김치를 고이 빨아 밀가루를 묻혀내어 기름에 부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듣보 전을 볼 수 있는 날이다. 외할머니 집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추억에 잠기다 그 듣보 전의 맛이 궁금해지고 먹어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바로 그 맛에 매료되었다.  

외할머니 집에 들어가면 코를 자극하던 나프탈렌 향이 베인 것 같은 그 특이한 전. 아무 데서나 맛볼 수 없었던 ‘묵은지 밀가루 전’은 엄마에겐 참 특별했으리. 그리고 그런 엄마와 딸의 추억이 담긴 전이었기에, 또 나와 외할머니와의 시간에 머물게 해주는 것만 같은 그전에 나도 모르게 매료되었으리.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도대체 ‘묵은지 밀가루 전’은 어떤 맛일지 궁금해질 것 같다. 빨래한 묵은지 밀가루 전의 맛. 그건 나프탈렌 향이 그윽한 외할머니 집에서 자라온 '우리 엄마의 삶의 맛.'이라고 표현해 본다.

레시피가 같아도 맛을 모두 다르게 느끼는 건 그 음식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다 다르기 때문 아닐까?

'엄마' 하면 생각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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