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주제로 계속 생각하며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보통 엄마’라는 단어를 만났다. 되게 생소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이 들면서도 그 단어에 눈길이 머문다.
보통 엄마...
* 보통: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보통의 뜻이다. 엄마라는 단어 앞에 보통을 붙인 단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 단어를 중심으로 여러 책들이 출판되었다.
이는 "완벽한 엄마"라는 절대적 목표를 향한 마라톤에서 내가 "보통"이라는 중간선에라도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심리 상태를 나타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마들은 오늘도 완벽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TV 광고에서 보이는 해맑게 웃는 엄마와 아기, 인스타그램에 수시로 올라오는 정성스러운 엄마 밥상, 엄마표 놀이로 하루를 꽉 채워주는 일상을 올린 블로그 등등. 이 글을 써나가는 오늘도 그런 엄마들에 못 미치는 나의 모습과 마주하며 그래도 보통에는 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보통 엄마’라는 단어에 꽂힌다.
소이는 돌이 지나서 까지 예방접종을 빼고는 병원에 갈 일이 없었다. 그 정도로 건강했고, 그건 하나님이 주신 복이었다. 물론 소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나의 기준에서 최선을 다했다. 근데 소이와 다르게 신랑은 신생아 때부터 돌이 지나서 까지 한 달에 한번 꼴로 병원을 다녔다고 했다. 진짜 맨날 병원을 다녔던 것 같은데 소이는 정말 건강하다며 시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엄마가 진짜 관리를 잘하는 거라니까? 이때까지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잖아. 진짜 얘네가 관리를 잘해서 그래.”
시아버님의 칭찬으로 들릴 법했지만 왠지 찝찝하다. ‘아니 그럼 어머님은 관리를 못했다는 건가? 그래서 남편이 어렸을 때 병원을 많이 다녔다는 건가?’ 물론 시아버님께서 그런 의도로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소이가 아팠다면, 병원을 많이 다녔었더라면 ‘엄마가 관리를 못해서’라고 생각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의 건강 유무가 꼭 엄마 탓은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인 친정엄마는 '엄마 다움'을 제일 자주, 쉽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편해서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나의 엄마라 그런지 더 섭섭하고 그런 말 한마디들이 더 마음에 남는다.
집에만 있어서 답답하다는 나에게..
“야 그럼 애 엄마가 집에서 애를 봐야지 어떡하냐”
잠깐 외출해서 엄마에게 전화한 나에게
“너 또 나갔어? 애는 어떻게 하고! 너는 애 놔두고 맨날 나가냐!?”
(이틀 전에 약속이 있어 외출했었고, 오늘은 그냥 산책하려고 잠깐 나온 건데..)
아기의 안전을 위해 베이비룸을 설치했는데
“엄마가 왜 애를 가둬놨어. 이런 엄마는 또 처음 보네”
라는 친구의 말에.
아기의 불편한 모습들이 보이면
“엄마~!! 소이 엄마!! 소이 ~~~ 해줘!”
라며 엄마인 나만 찾는 신랑에게.
엄마니까.... 엄마여서... 엄마가....
예상치 못했던, 내 눈을 동그랗게 만드는 여러 목소리들에 난 육아를 하다가도 힘이 쑥 빠진다.
맞출 수 없는 기준들에 자책하고 또 하루를 버틴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처음이다. 그리고 엄마이기 이전에 내가 있었다. 내 생활이 있었고, 내 취향이 있었고, 내 기준이 있었다. 나이기만 했던 내가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뭐든지 처음 하는 것들에는 시행착오가 따른다.
나 자신의 삶과 엄마라는 삶이 잘 믹스되어 맛있는 삶이 되려면 시행착오를 여러 번 반복하며 나와 아기만의 기준을 잘 찾아야 될 것이다.
출산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시작이었음을.
회음부만 아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젖몸살이 시작되어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음을.
모유를 먹일 줄 알았는데 내 모유가 잘 안 나와 젖꼭지를 물어뜯는 너를 예상치 못했음을.
갑자기 네가 어느 날 앉아있을 줄은.
갑자기 네가 어느 날 서있을 줄은.
갑자기 네가 어느 날 걸을 줄은.
통잠을 잘 자던 네가 밤새 뒤척이며 울어서 잠을 하나도 못 잤던 날이 있었는데 그건 첫니가 나려고 이앓이를 했던 것이었음을.
이유식 한 그릇을 뚝딱 다 먹던 네가 주는 밥을 모두 뱉어버릴 줄은.
진짜 너무 순둥이였던 네가 소리를 지르고 땅을 치며 생떼를 부릴 줄은.
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아기가 맞이하는 처음이 엄마에게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소이가 신생아 시절 조리원에서 나와 친정 엄마네서 지낼 때 엄마와 헐레벌떡, 서툰 모습들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근데 내가 둘째를 낳아 신생아를 돌본다면? 와우. 움직이지도 않고 누워만 있으며, 밥이나 반찬, 국을 끓이지 않고 분유만 타서 줘도 되고, 기저귀를 갈 때 도망가지도 않고 가만히 있을 테니 지금보다 훨씬 수월할 것 같다. 더 나아가 ‘하나도 이렇게 버거운데 둘을 어떻게 키워?’라는 생각이 컸는데 ‘이래서 사람들이 둘째를 낳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신생아를 키워본 적이 있기 때문에. 즉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에 입사해서 업무를 익힐 때까지 실수도 많이 하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엄마가 되기 위해서도 그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머릿속에 이상화된 완벽한 엄마라는 기준에 가려진, 처음이지만 잘해보려 애쓰는 엄마의 모습을 꼭 찾아보기를.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걸 잊지 않기를. 이 나이 때의 아이를 키워보는 것은 처음이라는 걸 잊지 말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