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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Jul 21. 2020

Track.73 한 걸음 천천히 간다해도 늦는 건 아냐

스페인 바르셀로나 Track.73 한 걸음 더 - 윤상


2019. 11. 26 (화)
스페인 바르셀로나 골목길
Track.73 한 걸음 더 - 윤상 




숨 가쁘게 흘러갔던 여행이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 날, 한국으로 함께 가져갈 선물을 사러 거리로 나왔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 
이 세상도 사람들 얘기처럼 복잡하지만은 않아.
- 한 걸음 더 -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여행날이자 유럽여행의 마지막 여행날이다.

이제 오늘이 지나 내일이 오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온다. 여행의 대미를 마주한 나는 슬슬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여행자로서의 마음의 정비도, 집으로 향하는 준비도. 

오늘도 바르셀로나의 날씨는 맑은 하늘의 좋은 날씨였다. 어제보다 조금은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긴 하지만, 그래도 청명한 가을 하늘과 제법 따뜻한 기온의 바르셀로나였다.


여행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오늘은 어디를 돌아다니고 구경하러 다니기보다는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친구들, 지인들께 나눠드릴 선물을 사는 시간으로 잡았다. 오늘은 내일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기념품이나 선물 거리를 사러 거리에 나왔다. 거리에 나오자 여러 가게들이 보인다. 대표적인 SPA 브랜드인 ZARA, MANGO 등에 들어가서 마음으로만 쇼핑하고, 골목 구석구석 숨어있는 편집샵과 액세서리샵에 가서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경하기도 했다. 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많은 걸 살 순 없기에 눈으로만 담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어제 라 보케리아 시장에서 구매하면 좋을 물품을 미리 봐 두었다. 라 보케리아 시장도 구매할 수 있기는 했지만, 관광명소가 된 시장은 의외로 가격이 꽤 높았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니, 라 보케리아 시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카르푸나 메르카도나 마트에서도 판매한다고 했다. 심지어 가격은 더 저렴하다고. 라 보케리아 시장이 관광명소가 되면서 관광객들 상대로 높은 가격대에 판매한다고 하니, 이왕 살 거면 카르푸에서 구매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제 미리 봐 둔 물품을 카르푸와 메르카도나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입했다. 카탈루냐 와인 한 병, 스페인 초콜릿 선물세트, 빠에야 요리 킷트, 스페인 올리브유, 꿀 국화차 등 한국에서 기념품과 선물로 무난히 사 오는 물품 위주로 구매했다. 사실 사고 싶은 물건은 많았지만 짠내 투어다운 예산 범위와 캐리어 무게를 고려해서 적당선에서 구매했다. 다음엔 돈 많이 벌어서 위탁수하물 2개씩 추가하는 옵션까지 해서 많이 사가고 싶다. 여행을 다니면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오르게 되는 데, 그건 역시 쇼핑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결론은 돈을 열심히 벌어서 다시 오자.






잠깐 동안 멈춰 서서 머리 위 하늘을 봐

호스텔 숙소의 발코니 휴식공간. 여기선 썬배드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게 휴식이었다
썬배드에 누워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깐 동안 멈춰 서서, 머리 위 하늘을 봐. 우리 지친 마음 조금은 쉴 수 있게 할 거야" 

라고 말하는 오늘의 노래 가사처럼, 오전의 쇼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양손 가득히 사 온 물품을 가방에 넣어두고 발코니로 나왔다. 내가 머물던 호스텔 발코니에는 넓은 휴식공간이 있었다. 모두들 놀러 나간 오후여서 그런지 몰라도, 발코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썬배드에 누워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따뜻한 기온에 온 몸이 나른해졌다.

하늘은 높아 그 끝이 어딘지를 모를 정도였다.

이따금 가을바람이 불어와 고요한 정적을 잠시 깨뜨리곤 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강박감,

어딘가를 들러야 하는 의무감,

빠르게 다녀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조급함

이러한 감정 따윈 들어올 틈이 없는 여유와 안온함, 그리고 안락함이 마음속을 넓게 자리 잡았다. 여행 막바지에 다가올수록 머릿속으로 문득 떠오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은 잠시 가라앉았다. 가을바람에 하늘 속으로 온몸이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자, 머리와 마음속에 있던 부정적인 마음도 바람과 함께 날아간 듯했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으며 마지막 여행날의 여유를 온전히 느꼈다.





여행의 후반전을 같이 해준 사람들과 함께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광장의 밤


숙소에서 짧지만 편안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유럽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려 다시 거리로 나갔다. 
리스본에서 만났던 동행분들을 바르셀로나에서 재결합하게 되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짧은 시간 동행을 했던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뭔가 짧지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동지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시체스를 다녀온 누나와 그라나다 여행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로 들어온 형과 함께 재회했다. 리스본을 함께 다닌 트리오는 리스본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동행 트리오는 바르셀로나, 그리고 유럽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주었다.


타파스 바에 가서 꿀대구와 함께 마지막 스페인 만찬을 즐겼고, 빠에야를 먹고픈 나의 성화에 2차로 빠에야를 먹으러 갔다. 유럽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라 생각하니 매일 먹었던 빠에야를 꼭 먹고 싶었다. 나의 성화를 들어준 형과 누나는 빠에야 한 입과 샹그리아 한 잔에 여행 토크를 이어나갔다. 유럽에서 마지막 밤, 스페인의 맛을 입안 가득 채우고 간다. 여행을 다니며 마지막 밤이라는 시간은 아쉬운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더 놀고 가자는 동행들의 유혹이 있었지만, 나는 내일 귀국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만 했다. (물론 밤 12시까지 이미 논 상황이었지만) 더 놀자고 한다면, 더 놀 수는 있었지만 피곤함에 지쳐 귀국길이 고생길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동행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나는 숙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스페인의 마지막 밤은 꿀대구(좌), 안심스테이크와 새우꼬치 (중) 그리고 빠에야(우)로 마무리했다.











시간의 절댓값은 같더라도, 시간의 상대값은 달랐다

여행의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 비교했을 때, 절댓값은 같지만 상대값은 달랐다.


동행들과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잠깐 동안 멈춰 서서 머리 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밤하늘을 바라보며 여행을 했던 두 달이란 시간과 일상에서의 두 달이란 시간을 비교해봤다. 

일상에서 시간은 일이든, 학업이든 반복된 루틴에 따라 내게 주어진 일을 마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고 비슷한 하루들이 어느 순간 빨리 지나쳐 일주일, 한 달이란 시간을 금방 보내버린다. 비슷한 일상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복된 일상에서 반복된 자신의 모습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을 했던 두 달은 매일매일 다른 순간들로 채워졌다. 

같은 거리를 다녀도 그 날의 날씨, 함께하는 동행, 귀에 들리는 그 날의 BGM, 그리고 나의 마음가짐에 따라 매일 감흥이 달랐다. 꼭 가봐야 하는 장소에 들러 남들처럼 사진을 찍기도 하고, 공원의 벤치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두 달이란 시간 동안 소매치기나 기차를 놓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맛집 탐방이나 멋진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한 순간도 있었다. 나를 돌아보고 사색하는 시간도 있었고 바다를 보며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도 있었다. 하루도 반복되지 않는 여행에서는 시간이 매 순간 달랐다. 여행을 하며 보낸 시간이란 컷에서 단 한 장면도 같은 장면은 없었다. 일상과는 다른 매 순간 다른 시간 속, 다른 모습의 '나'를 마주쳤다.


그래서일까, 여행하는 두 달이란 시간은 일상에서의 시간과 비교해볼 때, 물리적인 시간의 절댓값은 같더라도 체감하는 시간의 상대값은 달랐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

남들보다 천천히 준비했더니, 숙소 한 편에 있는 작은 화분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여행을 가기 전, 내 또래들이 취업 준비, 직장 생활을 치열하게 하는데 나는 호기를 부려 여행을 다녀도 괜찮은 건지 고민이 많았다. 여행을 가기까지 그러한 고민을 내적으로 많이 했고, 주변 선배들이나 회사에서 근무하는 분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돼서 그때를 돌이켜보니, 결과적으로 다녀오기를 잘한 것 같다. 단순히 놀고 즐겨서가 아니라, 잠깐 멈춰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니며 만난 동행분들은 휴학생, 퇴사한 사람, 이직 전에 짬을 내서 여행하는 사람, 은퇴한 중년의 부부 등 다양하게 있었다. 다들 생각과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각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는 사람들이었다. 함께 다닌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이 시작과 끝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으려 잠시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니 다들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노래 가사처럼 한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태어난다. 모두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길을 가는 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일찍 시작하지만 빠르게 그만두기도 하고, 누군가는 늦게 출발하지만 끝까지 향하기도 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누군가는 일찍, 누군가는 느리게 간다. 결국 각자의 시간에 맞춰 살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비교하며 나를 자책하고, 걱정하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게 입시든, 취업이든, 결혼이든, 뭐든 나의 시간에 맞춰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는 맞이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 나는 걸음 천천히 나의 시간에 맞춰 가보려 한다.


11월 말임에도 시원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밤바람이 살짝 쿵 불어온다. 바르셀로나의 늦은 밤거리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유럽여행의 마지막 밤, 아쉬움을 머리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보내며 조금은 천천히 발걸음을 숙소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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