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여자애가 키도 하도 크고, 못생겨서 어른들에게 귀염을 많이 못 받았다. 게다가 동생이 남자애라 뭐 하나라도 아끼려던 엄마가 동생이랑 같이 입히려고 바지만 사줘서 어릴 때 사진을 보면 뭐 하나 레이스 달린 옷 없고, 온통 바지다. 치마도 한 일곱 살 때 유치원 입학하면서 하나 사주셨던 것 같고...
반대로 내 남동생은 눈도 동그랗고 귀엽게 생기고, 나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잇대에 걸맞은 오종종한 몸집이었어서 어른들에게 이쁨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똑똑하긴 어찌나 똑똑했는지 한 세 살 때던가, 네 살 때던가 내가 얘 손을 잡고 교회에 데려갔는데, 한 선생님이 '어머! 이 애기 너무 예쁘다~' 하면서 성탄절 연극에서 즉석으로 검은 안경을 끼고 동방박사 역을 맡기셨다. 어라? 나도 연극 무대에서 예수님 엄마 역을 맡고 싶었는데... 마치 연예인들이 '친구 오디션 보는 데 따라갔다가 걔는 떨어지고, 제가 됐어요' 하듯이 동생이 캐스팅이 된 것이다. 그냥 애기가 무대에 올라가 망원경 손을 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만 있으면 되는 거였는데, 그 장면이 그해 성탄절 연극 최대 하이라이트, 교회 사람들 박장대소 포인트가 되어 자자하게 소문이 났다. 똑똑이 꼬마의 연극 무대 출연.
학교에서도 연극 주인공을 맡고 싶은데, 아무리 잘 해내도 키다리 나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시장에 가도 늘 사람들은 귀염둥이 동생에게만 눈길을 주었다.
그때는 아무리 관심 밖에서 맴돌아도 너무 어려서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든지, 화가 난다든지하는 것은 전혀 없었지만, 은연중에 나는 '귀여움, 예쁨을 못 받는 아이', '선택받지 못하는 아이'라는 생각이 먹구름처럼 깔려있었다.
그런데, 1979년인가, 1980년인가... 아마 유치원 들어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열 살 이전에는 동네 친구들 따라 교회에 다녔었는데, 우리 동네에 '백운 교회'라는 아주 작은 교회가 있었다.
아마 여름성경학교 때였던 것 같다. 특유의 플라스틱 냄새가 나는 노랑 성경학교 가방을 받고는 아이들이 예배당이 아닌 커다란 방에 신발을 벗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검은 양복을 입은 전도사 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성경학교의 하루 일과가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저녁때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말씀을 듣는 시간...
전도사 님이 한참 이야기를 하시다가 제일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하느님이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내 딸아~ 내 아들아~" 이 말씀을 하시는데, '내 딸아~' 부분에서 진짜 거짓말 같이, 나를 안아주시는 거였다.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내 딸아~'에서 나를, 키 크고 못 생긴 나를 딱 골라서 안아주시다니!
그렇게 전도사님이 이야기를 다 마치실 때까지 나를 한 몇 초 더 안고 계셨는데, 전도사님 품 안의 에어포켓... 그 아늑하고 어두운 공간이 기억난다. 그냥 기억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어린 나한테 용기를 주었던 대사건이었다. 요즘도 가끔 불쑥불쑥 그날, 전도사님이 나를 골라서 나만(!) 안아주셨던 일이 떠올라서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