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겨울에서 봄으로 세상이 바뀌는 지금의 계절을 좋아한다. 한껏 말랑말랑해져서 이리 둥실 저리 둥실 떠다녀야 하는데 현실은 기계처럼 감정과 생각을 비운 채 생활하려 애쓰고 있다. 문제는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다는 것. 밥벌이, 번역, 상담심리 공부라는 세 가지 일이 어쩌다 겹쳐서 지금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이었나 나조차도 놀란다.
매일 자정이 다 되어서 퇴근하면 씻을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다. 겨우 몸에 물을 끼얹고 방전된 심신을 침대에 뉘인다. 그런데 원래 아침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는 건지 눈을 뜨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할 일이 태산이지만 천성이 게을러 또 침대에서 빨딱 일어나진 못한다. 느릿느릿 엉금엉금 기어 나와 간단히 아침을 먹고 (살기 위해) 요가를 하고 다시 노트북을 켜서 오전에 번역 혹은 사이버대 강의를 듣고 자동차에 기름을 넣듯 탄수화물을 입 안으로 집어넣은 뒤 출근. 그리고 9시간 뒤에 퇴근.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이 무미건조한 생활이 한 달 조금 넘게 이어지고 있다. (올해 운수가 좋을 모양인지 천만다행히 현재 나는 재택근무 중이다. 휴!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물론 중간중간 체력이 달려 세웠던 계획표 따윈 무시하고 파업을 한 적도 있다. 아직도 힘에 부치고 다시는 이런 무모한 일정은 짜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하루하루인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 4월에 나는 뭐하고 지냈지?
분명 그때도 번역은 하고 있었다. (한 가지 웃긴 사실은 그때 번역할 책이 너무 어려워서 다신 인문/심리 서적 번역 하나 봐라,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때 쌓은 잡지식이 지금 상담심리 공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과거의 고생한 나 자신, 칭찬해!) 그런데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지금보다 번역 하나만 했던 그때가 더 지치고 힘들었다. 번역하지 않을 때는 도대체 무얼 하며 보냈는지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좋았던 시간, 즐거웠던 시간이 분명 있었을 텐데, 정신적 스트레스가 그 모든 기억을 상쇄해버린 것인지 그때의 감정은 먹구름이 낀 하늘처럼 선명하지 않다.
신기한 것은, 지금의 내가 그때 바라고 원하던 것들을 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밥벌이. 당시에는 배우자가 생계를 책임졌고, 나는 프리랜서 번역가를 가장한 전업주부였다. 이 생활을 1년 정도 하니 예전처럼 다시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게 치솟았다. 물론 번역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번역료로는 한 사람이 온전히 생활하기란.... 이하 생략. 그래서 그때 카페 알바를 그렇게 찾아다녔는데 30대 중반 여성은 알바 시장에서 노룩 패스를 당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밥벌이 못지않게 주거 환경의 변화를 간절히 바랐다. 어쩌면 그때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건 이사였을지도 모른다. 김포든 일산이든 어디든 서울을 벗어나 외곽으로 탈출하고 싶었다. 거리마다 꽃과 나무를 볼 수 있고 널찍한 인도와 호수공원이 있는 신도시에서 성장기를 보낸 사람에게 서울의 척박한 환경은 나이가 들수록 감당하기 버거웠다. 만약 1년 전 나 자신에게 "야, 1년 뒤에는 네가 그토록 바라던 일산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조금만 버텨"라고 말하면 믿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담심리 공부다. 막연했지만 사이버대학을 다니며 심리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번역가 지망생 시절인 2019년 즈음부터 했다. 그런데 이 생각이 점점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구체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더 재밌는 건, 이혼 전 살던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사이버대학에서 지금 강의를 듣고 있단 사실. 정말 사람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진리를 이렇게 또 몸에 새긴다.
인생이라는 직선에서 2021년 4월과 2022년 4월이라는 두 점 사이 거리는 얼마나 될까. 80년이 될지도 90년이 될지도 모를 시간 속 1년은 찰나일 테지만, 내겐 인생이 통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정신없이 달리다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시야에 들어온 내 발자국이 퍽 마음에 든다.
2022년 4월. 지금 나는 2021년 4월의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전부 하고 있다. 먹고 자고 싸는 시간 외에 사람들을 만나 봄 인사를 건넬 시간조차 내기 어렵지만 작년의 나, 아니 지금까지의 그 어떤 나보다 자유롭다.
체력적 한계가 올 때마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지금 넌 과거의 네가 그렇게 바라던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그러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흘려보내고 지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누리자고. 작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듯, 지금의 내가 아무리 미래의 나를 상상해도 그 상상은 빗나갈 테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