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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젤닥 Apr 19. 2022

박사학위는 자격증

박사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인가?

나는 종종 박사학위를 자격증이라고 말하곤 한다. 박사를 마치 어떤 대단하고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는 듯한 후배들을 접할 때면 이를 특히 강조하곤 했다. 석사과정 때 어떤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 하셨는데 와 닿아서 이후로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자격증이냐 하면 바로 독립적으로 논문을 써 낼 수 있는 능력을 인정하는 인증서 같은 것이다.


논문이 무엇인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는 수단이다. 학위논문계획 발표장에서의 단골 질문이 “이 논문을 통해 우리가 새롭게 알 수 있는 지식이 무엇인가요?” 였다. 지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논문이 생산해 낼 수 있는 대표적인 지식은 바로 인과관계의 입증을 통해 가설을 검증함으로서 얻는 것이다. 예를들어 “가난한 사람은 의료이용을 적게한다”라는 가설이 여전히 논란이 되는 주장이라면 이를 입증하는 것은 인류에게 상당히 유용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된다. 의료이용을 충분히 하게하여 건강한 인구집단을 만드는 것이 정책적 목표라면 일단 가난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가난이 무엇인지, 과연 의료이용을 남들 만큼 하는 것이 건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인지, 이를 무슨 데이터로 분석하고 입증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당연히 아무 인과관계나 증명한다고 학위논문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단골 질문이 바로 “그 지식이 박사학위 논문에 적합한 것인가요”인데, 즉 입증되는 인과관계가 해당 분야의 기존연구에 비추어 보았을 때 충분히 새롭고 중요한 지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새롭고 중요한 지식인지를 인지하고 입증하기 위해서는 답을 하게될 연구질문과 관련된 기존연구에 대한 폭넓고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게 되며 이를 보통 문헌고찰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이 과정을 통해 관련 지식체계에 대한 상당량의 지식을 얻을 수가 있게 된다. 또한 소위 코스웍이라고 하는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듣는 정규학기 과정도 이런 연구질문을 발견하고 발견한 연구질문의 맥락이 되는 지식체계를 정리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는 시기로 생각할 수 있다.


문헌고찰이 충분히 되어 인과관계를 증명할 연구질문이 충분히 중요하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그 연구질문 혹은 연구가설을 입증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정책연구에서는 주로 양적 분석을 많이 활용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통계적 분석 방법론, 그리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통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런데, 데이터의 규모나 질이 중요하고, 이에 적합한 통계분석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수행할 통계 프로그램을 조작하고 결과물을 해석해 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며 이것을 배우는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능력이 있더라도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을 실제로 한 뒤 논문의 틀에 맞추어 표, 그래프,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생산해 내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와같이 박사학위를 취득한다는 것은 기존 지식에 기반하여 새로운 연구가설을 제시하고 이를 적절한 데이터와 분석방법론을 사용 및 입증하여 인류에게 새로운 지식을 선물함과 동시에 그 능력을 입증받는 과정이다. 기존지식에는 단순히 관련된 가설을 분석한 논문 뿐 아니라 그런 논문들의 기반이 되는 이론도 포함되며, 단순히 지식을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떤’ 지식을 ‘얼마만큼’ 알아야 하는지 판단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능력이 사실은 더 중요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를 정확하고 적절한 어휘를 사용하여 객관적이고 구조적인 글을 써서 다른 연구자들이 읽고 검증하고자 하는 가설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결과물이자 능력이다.


흔히 박사를 아주 좁은 한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박사(博士)의 博이 넓을 박이어서 얇게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박사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알 수 있는 지식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즉, 박사가 된다는 것은 What이라기 보다는 How를 갖추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이는 자명하게도 한 인간의 지적 성숙에 있어 커다란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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