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후반은 박사과정에서 불리한가?
서른 후반에 대학원을 가겠다고 했을 때 아는 형이 과제 등은 연구실 동생들에게 시키라고 했었다. 너무 당연하단 듯이 말씀 하셔서 그게 말이 되냐고 되묻는 나 자신이 마치 무슨 나이가 주는 리더십 조차도 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십여 년 사회생활하다가 대학원을 가게 되면 이렇게 대부분 상대적으로 어릴 다수의 동료 학생들과의 관계 혹은 학습 및 연구수행 능력의 차이를 생각 안 해 볼 수가 없다.
당연히 불리한 부분이 많다. 일단 머리가 느리다. 어쩔 수 없다. 십여 년이 지나 캠퍼스로 돌아오면 우선적으로 십년 전의 나 자신과 싸우게 된다. 이를테면 ‘너 예전엔 안 이랬잖아’ 이거다. 논문을 읽다보면 몇 문장 지나가지도 않아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뭐 법칙이다. 체력도 불리하다. 이건 특히 입학과 졸업 사이에도 급격히 변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석사 때는 급한 일이 있어 미국 출장을 연속으로 두 번 가고도 새벽에 귀국하여 그 날 포함 연속으로 몇 일 기말고사를 보기도 했으나, 불과 몇 년 뒤 박사과정 때는 그 정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른 후반에 공부를 하려면 체력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직접적으로 연구와 관련되지 않은 영역에서의 불리함이 있다. 석사 과정 때 다소 공식적인 연구실 모임에서 어떤 여학생이 웃으면서 단체 카톡에서 내가 이상한 얘기를 했다고 하니 지도교수님이 정색을 하시면서 무슨 얘기였냐고 캐물으시는 것이었다. 오해는 풀렸지만, 사실 난 그냥 아저씨의 평범한 썰렁한 농담을 했을 뿐인데, 교수님께서는 내 나이의 이상함이란 뭔가 좀 다 다른 부적절함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셨던 것일까. 나이가 많다고 어린 선후배들에게 함부로 한다고 여겨질까봐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그랬다간 오히려 소외되어 학교 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음에도, 나보다도 나이가 많기 마련인 교수님들 세대에선 본인들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기 마련이라 이로 인해 신경써야 할 부분이 있다.
여러 불리한 점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의 사회생활이 주는 몇 가지 이점이 있다. 우선은 논문주제 발견에 유리하다. 나는 보건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나의 석,박사학위 두 논문 다 제목에 아주 널리 쓰리는 금융 용어들이 들어가 있다. 즉, 나는 나의 보건학 학위논문 주제의 핵심 개념들을 나의 학부 전공 혹은 나의 대학원 이전의 생업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것은 보건학이라는 학문이 외견상 경영학이나 경제학 혹은 금융이라는 분야와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더 의미있는 것이었다. 대학원, 특히 박사는 학위논문이 가장 중요하다. 풍부한 사회경험은 동일한 데이터를 보더라도 학위논문으로 가치있는 핵심 단어와 주제를 발견하게 해 줄 눈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또한 사회생활을 통해 업무에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은 마감에 강하다. 마감이란 크게 타이밍과 결과물로 구성된다. 박사과정은 궁극적으로 어떤 학위논문을 결과물로 어떤 타이밍에 졸업할 것이냐의 이슈이다. 즉, 자기가 할 수 있는 결과물을 그 결과물이 학위논문에 적합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타이밍에 진행하는 일종의 마감이라는 업무로 볼 수 있다. 동일한 논문 아이디어가 항상 성공적으로 학위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꾸물대는 사이 다른 사람이 이미 논문을 써 버릴 수도 있고, 학계에는 시기상조라고 여겨질 수도 있고, 단순히 내가 쓸 준비가 안되어 있을 수도 있다. 업무에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감각적으로 판단하고 진행해 나갈 확률이 크다. 나는 그런 운이 맞아 전공 분야의 가장 훌륭하신 교수님 지도하에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돌이켜 보면 한 두번의 타이밍에서 의사결정이 적절하지 않았으면 1-2년이 추가되는 것은 금방이었을 것이다.
분야마다 박사학위 과정의 경험은 다를 것이나, 서른 후반이 띠동갑에 비해 가진 약점은 다소 분명한 것들이 많다. 결국 박사는 학위논문이다. 서른 후반까지 치열하게 살았던 그 경험과 훈련이 학위논문의 주제와 타이밍에 결정적일 수 있다면, 그 성취는 생물학적 나이로 인한 약점으로 인해 돋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