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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Nov 15. 2022

골프가 왔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지 오래였지만 운동복 한번 입은 적이 없던 때였다.

"얘들아 골프 배울래? 우리 남편 다니는 골프 연습장 이번에 확장 이전하는데 선착순 30명만 1년 회원권 엄청 싸게 해 주고 무료 레슨도 8회나 해준대."


골프? 골프라면 귀족 스포츠 아닌가? 돈도 돈이지만 골프라는 운동 자체가 아무나 할 수 없는 운동이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터라  구미가 당기진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 왼손 장갑만 있으면 된대. 채는 연습장에 있는 것으로 연습하다 필드 갈 때 준비하면 되는 거고 골프화도 천천히 사면된대."


 말을 꺼낸 언니 남편은 이미 골프를 시작한 지 꽤 되었고 내 옆에 있던 언니도 남편이 막 골프를 시작했던 터라 둘은 이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던 모양이었다. 골프도 운동이라면 운동인데 한 번 배워볼까? 뭐든 시작이 어려운 법인데 셋이 함께라면 일단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무료 레슨이 시작되었다. 공 하나 치자고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며 머리를 흔들어대는 내 몸짓에 티칭 프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같이 시작한 언니들도 빠른 편이 아니었지만 나는 박치에 몸치에 근력도 유연성도 없는 몸이었다.


 골프 스윙은 일명 똑딱이라 부르는 동작부터 엘투엘이라 하는 하프 스윙 그리고 풀스윙의 순서로 배운다. 쉽게 말하면 클럽(골프채를 말함. 골프채는 드라이버, 우드, 아이언, 웻지, 퍼터를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으로 공을 치는 스윙을 처음에는 작게 하다가 점점 크게 키워나가는 것이다.


 엘투엘을 배울 때까지 형편없던 내가 달라진 건 풀스윙을 배우고 공을 때리기 시작하면서였다. 막대기를 휘둘러 공을 치는 행위가 내게 묘한 쾌감을 주었다. 잘 못 맞으면 땍 혹은 퍽, 픽, 하는 소리가 나는데 정말 잘 맞으면 쨍한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만 들으면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흥분이 되었다. 연습장 바닥에서 자동으로 올라오는 공에게 숨 쉴 틈도 주지 않았다. 허리를 돌리팔을 들었고 공이 올라오는 기미만 보이면 휘둘렀다. 그즈음이었다. 생각 없다던 남편을 끌고 와 골프연습장을 등록시킨 것이.


사진 출처: 픽사베이


 늘 일에 지쳐 힘든 남편이었지만 이 좋은 거 나만 할 수 없다는 내 주장에 끌려  연습장을 다녔다. 그리고 3개월 후 우리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인생에 일밖에 없던 남편과 아이밖에 없던 나에게 골프가 왔다.


 저녁 6시가 되면 바빠졌다.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설거지를 부지런히 마친다. 7시부터는 아이들 저녁 공부시간이다. 수학 문제집을 풀면 채점을 해주고 하루에 하나씩 사자성어를 공부한다. 마지막 영어 원서 30분 읽기로 마무리하면 8시. 이때 남편이 오면 간단히 저녁을 차려주고 나는 아이들 잘 준비를 돕는다. 씻고 나온 아이 머리를 말려주고 양치를 봐준다.


 9시가 되면 남편이 아이들을 몰아 방으로 보낸다. 골프연습장 출근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다. 아이들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우리는 문을 나선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울며 불며 가지 말라고 하는 날도 있었고, 걸려온 전화를 받고 연습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엔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도 이제 엄마 아빠 바짓가랑이를 놓을 때가 되었다고 우리는 합의했다.


 셋째를 임신하고 전업주부가 되면서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게 매달려 있었다. 아이도 나를 놓지 못했지만 사실 내가 더 놓지 못했다. 그게 내 일이었고 내 전부였다. 살림과 육아 그중에서도 내 일 순위는 육아였고 아이들이 크면서 교육도 육아 업무에 얹혔다. 고 친구나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나 차 한잔 하는 시간도 아껴가며 내 시간을 온통 아이에게 쏟았다. 그게 잘하는 일인 줄 알았다. 아이를 키우며 성장하는 줄 알았더니 아이에게 갇혀가고 있었다. 이의 성취가 나의 것인 줄 알고  ar 지수에 목매달았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느라 늘 기진한 채로도 더 주지 못한다 자책했다. 아이가 집 밖을 나서 부딪히는 모든 사소한 좌절에 안절부절못하며 아이 몰래 숨죽여 울었다.


  코로나로 아이들과 24시간 붙어있던 어느 날 내 안에 무언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겠다 싶어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약봉지를 들고 이제 우리 아이들은 어쩌지 하는 걱정부터 했다. 내 일신에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에게 큰일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라이딩이 어려워져 학원을 끊자 아이들은 더 많이 책을 읽었다. 이것저것 쉴 새 없이 요구하던 아이들이 엄마 아프다 힘들다 한마디에 바로 수긍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육아와 살림을 내게 일임하던 남편이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탈출구를 찾고 나서야 내가 갇혀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 인생인가 보다. 전부인 줄 알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내 얼굴에 생기가 생겼. 집은 안전했고 우리 가족은 건강했다. 남편과 아이들 말고 나를 위한 것을 찾다 보니 건강한 취미가 필요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독서모임은 내게 소소한 기쁨을 주었고 골프는 짜릿한 쾌감을 주었다.


 남편도 그랬다. 취미가 생기니 다른 것에 집착하던 마음이 줄었다고 했다. 회사 업무는 여전히 부담이고 동료들과의 얽힌 일들은 짜증 났지만 골프 생각만 하면 즐겁다고 했다. 얼른 퇴근하고 나와 골프연습장에 갈 생각을 하면 없던 힘도 생긴다고 했다. 연습장에 다녀와 그날 한 연습 내용을 공유하다 보니 대화도 늘었다. 밤새 우리가 쏟아낸 골 이야기가 넘치고 넘쳐 이불 사이에 파였던 고랑이 많이 메워졌다.


골프가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손잡고 골프 치러 간다. ​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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