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금지
죽음은 슬픈 사건이다. 그렇게 우리는 배운다.
그렇다면 인공물의 죽음도 그러할까? 인간이 만든 피조물도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단지 비유에 가까운 표현의 차이 이므로, 그렇다고 가정하자.
회사는 인공물이다. 기업이라는 구조체의 일부 구성이 노동자로서의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기업의 죽음은 반드시 소속원들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장 경제와 시대의 흐름을 기업이 견뎌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기업이 설 자리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회사가 망하는 일은 누군가의 실수나 불운보다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거나 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우그룹, 엘지의모바일, 노키아, 등등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는 전혀 슬프거나 애도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업의 원초적인 임무는 생존이 아니라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 있기 때문이다. 임무를 달성하고 장렬히 산화한 로봇은 아놀드가 연기한 터미네이터처럼 멋진 것이다.
투자전 스타트업 같이 특이하고 작은 사업구조에서는 피봇팅이라 불리우는 사업 방향의 미세조절이 가능하겠지만, 이미 안정적인 기반이 있는 사업체가 혁신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항담에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고 그랬는가. 혁신보다 대체가 쉽다. 새로운 사업체의 안락한 새 보금자리는 기존 사업체의 시체가 바스러진 구더기 근처다.
살아있는 것과 살아갈 것을 위해 죽음은 축복이다. 어쩌다보니 잡스랑 비슷한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조금은 불쾌하지만, 수렴진화는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새 사업체가 생존했음을 자랑하는 것 보다는,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 생존법 키트를 나눠주는 것 보다는 의미있는 죽음을 기록으로 남기거나, 의무와 의도를 달성하고 의미있게 쓰러져 보고 싶다.
회사는 죽으면 또 세우면 된다. 누구든 사람이 죽으면 슬퍼하고 예를 지키는 것이 응당 도리이나, 회사가 죽었을 때 슬퍼할 필요는 없다.
이상한 데에 과몰입 하지말고,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 ( 내 글은 늘 나에게 하는 거대한 혼잣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