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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lish man in New york Feb 25. 2021

서평: 멋진신세계(올더스 헉슬리)

공감이 부족한 사회에 대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올더스 헉슬리는 그것을 인간의 자유의지와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멋진신세계는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구성원들이 만족하는 사회이지만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이다. 멋진신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은 “야만인”은 그를 제외하고 모두가 만족하고 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멋진신세계를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멋진신세계의 가장 큰 딜레마는 “야만인”의 눈에 모든 사람들이 본인의 욕구마저도 태어나기전부터 결정된 불행한 존재들로 보이겠지만, 정작 멋진신세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삶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야만인”이 멋진신세계의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야만인”을 이해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결국 “야만인”의 고뇌와 외침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애초부터 의미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출간된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났지만 멋진신세계 처럼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본질까지 바꾸는 사회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다른 이유로 인간성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공감능력의 상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엮이면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한다. 100억을 배상 받는다고 한들 세상을 떠난 자식은 돌아올길이 없다. 교통사고로 떠난 어린 자식이 돌아올 수 없다는게 지독하게 억울해서 보상금에 대해 항소한 부모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멋진신세계를 생각한다.

 또 많은 이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조건 적인 적대와 혐오를 표한다. 그들에 따르면 건강보험료 재정을 갉아 먹고 범죄율을 올리는 외노자들이 거리를 더럽히고 있다. 내국인 범죄율이 더 높고 외국인 건강보험료 재정이 흑자라는 사실은 그들의 혐오를 멈추기에 충분하지 않은 듯 하다. 생각해보면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우리가 그들이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독일로 호주로 향한 이민자들은 갖은 차별을 겪으며 그 사회에 정착해 나갔다. 어글리 코리안은 지저분하고 교양없기로 유명해 휴양지 호텔에서 기피 대상이었다. 공감이 결핍된 이유 없는 혐오에서 나는 멋진신세계를 떠올린다.

 공감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는다. 멋진신세계의 사람들은 설계에 의해 공감능력을 거새당했다. 그곳은 부모의 사랑, 연인의 사랑, 죽음의 공포, 아픔, 연민 등이 삭제된 사회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또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과연 누가 결국 야만인이 될것인가. 아무리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다 해도 우리사회가 공감능력, 즉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멋진신세계는 찾아오지 않으리라 믿는다.

 추신: 서평은 재미가 없지만 멋진신세계는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다. 중간중간 스티븐킹의 소설을 읽는 기분도 들었다. 주인공들의 이름과 성에 실존 인물을 매칭시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그 재미때문에 오랜만에 한 번씩 찾게되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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