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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ana Feb 09. 2023

여행을 망치지 않는 법, '그러려니'

파리은 영어를 싫어해? NOPE

ⓒ오전

파리는 파리다. 짧게 파리를 다녀온 소회를 밝히자면 그렇다. 떠나기 전 나름 상상했던 파리가 있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아리따운 야경,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에펠탑, 내가 사랑하는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이 있는 오르셰 미술관,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 본 루브르의 피라미드까지. 예술을 총망라한 도시. 필자는 파리를 그렇게 생각했다.


날씨가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몰타를 떠나 첫 여행지여서일까. 파리는 기대보다 더 낭만이 가득한 도시였다. 다리, 건물, 가로등까지. 도시의 모든 것들이 외관에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못생김과는 거리가 먼 도시였다. 덜컹거리는 낡은 지하철도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분위기에 취해 파리 콩깍지가 씌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종차별도 없었다. 몰타에서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캣콜링, 인종차별에 시달리는데 파리는 그렇지 않았다. 세계 각국에서 여행객들이 몰리는 도시여서일까? 아시아인인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길을 걸을 때도 그다지 주변 시선을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걱정했던 소매치기도 보지 못했다. 내년에 개최될 파리 올림픽을 맞아 소매치기, 집시들을 정리하고 있다더니 사실이었나 보다. 노숙자보다는 무장한 경찰들을 많이 봤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 여러 국가를 여행했지만 프랑스 파리는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파리는 일주일 정도 시간을 빼 한 번 더 방문했을 정도니까. 다만 여행이 늘 그렇듯, 좋지 않았던 경험도 있다. 불친절함이라고 해야 할지,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전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까르네를 주로 이용했는데, 이는 종이 티켓으로 버스나 지하철 1회 이용권이다. 이 까르네는 종종 말썽을 부렸다.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사용된 이용권이라며 게이트를 열어주지 않을 때가 있었다. (사용한 까르네는 스탬프가 찍혀 나오는데 이 경우는 찍혀 나오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기 전 이런 일이 발생하면 역무원에게 즉시 요청해 티켓을 바꿀 수 있었지만, 출구로 나와야 할 때면 난감했다. 한국처럼 호출벨이 있기에 눌려서 상황을 설명했다. 불어를 할 수 없기에 간단한 인사말만 불어로 하고, 티켓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나가기 힘든 상황이라고 영어로 설명했다.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I can’t speak english.


호출은 그렇게 끊겼고 게이트 문도 열리지 않았다. 뭐지? 보통 이런 상황이면 역무원이 게이트 쪽으로 오거나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그럼 여기 갇혀있어야 하나? 시간은 5분 정도 흘렀고, 상황은 그대로였다. 문을 뭐 부숴서 나가야 하나라는 진지한 고민에 빠져 있는데, 같은 문제로 출구로 나가지 못하던 프랑스인이 호출벨을 통해 이야기했고 게이트가 열렸다. 그 틈을 타 나갈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두 번 정도 있다.

ⓒ오전

공항에서도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몰타로 돌아가는 길, N의 소지품에 문제가 있었다. 밤 형태의 클렌징크림이었는데 용량이 커 반입이 불가였다.(아마도) 공항 보안 요원은 우리 앞 프랑스 사람과는 스몰톡도 하면서 문제가 있는 소지품에 대해 설명해 주고 폐기처분을 하더라. 해당 승객의 가방을 친절히 닫아주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N에게는 달랐다. 가방을 열고 소지품을 하나씩 꺼내면서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이걸 어디다 쓰는 물건이냐는 냥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더라. 뭐, 이 정도야 그러려니 싶었다. 문제가 되는 클렌징크림을 들더니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공항에서 이런 이슈가 있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보통 먼저 설명을 해준다.


N이 놀라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보니 짜증을 내더라. Do you speak english? 라면서 상황을 설명해 주길 바랐지만, 가방이 담은 박스를 훽하니 넘겨버리고 말더라. 파파고로 하고 싶은 말을 불어를 번역해 보여주기도 했지만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중에는 보안 요원을 불러 우리를 손가락질하기까지 했다.

ⓒ오전

프랑스를 방문하기 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프랑스인들은 영어를 싫어한다고. 영어로 물어도 불어로 답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프랑스의 언어는 불어다. 이들이 불어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겪어보니 그렇지도 않더라. 레스토랑이나 쇼핑몰에서는 영어를 하냐고 묻고 친절히 설명해주기도 한다. 영어로 된 메뉴판이 따로 마련돼 있는 곳이 많다.


이는 프랑스가 영어를 싫어하고 말고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직업의식에 굉장히 의문이 든 케이스다. 언어를 떠나서 그들의 대처는 옳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역무원이라면 곤란해하는 승객을 배려해 줄 의무가 있고 공항에 있는 요원도 마찬가지다.


뭐, 친절한 사람이 있으면 불친절한 사람도 있겠거니 하고 넘겨버린 일이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긴 한다. 나야 이런 일을 당해도 맥주나 한 잔 하고 잊으면 되지만 우리 엄마나 어르신들에게도 이럴까? 싶어서 화가 더 난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대처방법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다시 생각하건대 마냥 즐거운 여행은 없다. 아름다운 파리 야경이 기분이 붕 떴다가도, 불현듯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 기분이 나락으로 치닫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 여행을 망치지 않는 방법은 이 거지 같은 기분을 오래도록 유지하지 않는 것. 가장 어렵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미 상황이 다 끝나버린 상황이라면 '그러려니'하고 넘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내가 그럼에도 파리는 아름답다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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