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와 꽃 그리고 문장들
모모킴 작가노트 모음집
(2025. 2. 10 업데이트)
1.
“어릴 적부터 작가로 성장하여 활동하고 싶었기에 제 관심사는 자연스레 다른 성공한 작가들의 삶을 엿보고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그들만의 시선과 화풍으로 동시대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주력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에두아르 마네의 1873년 <철도에서>라는 작품을 통해 기차를 사용하기 시작한 현대 산업의 모습과 그 너머의 아파트등 이러한 것들을 통해 시대 배경을 읽을 수 있었고, 마티스의 작품을 통해 컬러감이 주는 힘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제가 애정 하는 작가들의 모습의 조각들을 모아 작가로 기반을 다지며 작품에 실천하는 편입니다.”
2.
“23년 겨울 일본 레지던시에 와서 2주만에 느낀 바들은 그렇다. 세상을 살아가는 시간들에 새로운 자극 한 스푼과 사색의 시간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날들에 무한동력이 되는 일. 이러한 것들은 나만의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 나간다.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과 앞으로 어떤 존재로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들. 평화와 번영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력들. 개인의 성장과 정말 사랑하는 일에 대한 잠시 쉼을 주는 것들. 작가로 바쁘게 살던 지난 시간들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게 맞나?' 하며 돌아보게 하는 시간들은 사실 익숙해져 버린 시공간에선 문득 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한정적으로 주어진 이 시간에 감사하며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속으로 정리해 본다.
마음이 기쁘다는 표현은 이곳에 와서 느낀 점이다.
하루하루 매일 쌓이는 얇은 기쁨들은 어느새 산더미처럼 한편에 쌓여 혹여 미래에 재앙이 물밀 듯 쏟아져도 유유히 떠오르며 충분히 삶을 힘을 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연료가 되길 바란다. ”Nov 23. 2023
3.
섭동이란 행성이 외부에 의한 영향으로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천체용어이다.
역사는 시간을 거쳐 크고 작은 섭동의 영향을 통해 발전해 왔다.
나 또한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삶의 태도를 중심으로 내 작업은 크고 작은 외부의 영향과 영감을 통해
여기까지 작업을 발전시켜 왔다.
이제는 천체를 관람하는 취미가 편해져서인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위치만으로 '아 시리우스가 아직 떠있네' 또는 '금성이 빛나네, 목성이 예쁘네' 등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누군가 또한 과거에 들여다보았을 별을 보고 있자면 내 작업도 누군가 100년이 지나도 들여다봐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한편에 남아있다. 더 좋은 작업을 해야지. 하는 동기를 우주에게서 얻는다.
삶과 작품을 대하는 나의 무게 중심이 내면 특정한 곳에 고정되어 있으면 안정적이긴 하지만 유연하게 발전하는 자세를 가지긴 힘들기에 작품에 대해 생각을 할 때면 너무 특정한 주제나 모양에 엄격하게 얽매이지 않으려 나의 궤도를 섭동하여 변화와 발전을 꾀한다. 어제는 미디어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인물 스케치를 오늘은 하늘이 예뻐 그 색을 배경에 입히기도 한다. 외부의 영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모해 나아가는 삶과 작품들은 모두 제자리걸음이 아닌 빠르게 섭동의 시대를 지나가는 중이다.
4.
"전 어릴 적부터 작가로 성장하여 활동하고 싶었기에 제 관심사는 자연스레 다른 성공한 작가들의 삶을 엿보고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대학원 전공도 잠시 예술사학을 전공했었죠. 물론 공부할 당시에는 너무나 재밌었지만 결국엔 예술 경매나 학자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을 알기에 다시 붓을 드는 전공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그들만의 시선과 화풍으로 동시대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능숙한 작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일러스트레이션 전공과 예술사학의 전공의 케미가 그런 상징과 은유의 재미를 더하는데 한 몫을 한 것 같긴 합니다. 예를 들어 에두아르 마네의 1873년 <철도에서>라는 작품을 통해 기차를 사용하기 시작한 현대 산업의 모습과 그 기차 연기 너머의 아파트등.. 이러한 것들을 통해 당시 작가의 시대 배경을 읽을 수 있었고 저는 그러한 단서를 작품 속에서 찾고 읽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때로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통해 컬러감이 주는 힘을 배우면서도 거친 붓터치감을 보며 작가의 화풍으로 바라본 세상의 로맨틱한 요소들을 참 애정했죠.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이런 저런 옛작가들의 조각들을 모아 저 스스로 작가에 대한 기반을 다지며 작품에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감을 받지 않는 작가는 없다 생각합니다. 독특한 컬러감으로 추대받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앙리 마티스의 컬러를 보고 영감을 받았던 것 처럼요."
4.
도자기의 용도는 채움에 있는 것이지만 정작 도자기를 만들어낼 때에는 온전히 마음과 정신을 비워야 올바른 형태라 칭할 수 있는 도자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도자기를 들여다보면 만든 이의 마음이 가끔 보일 때가 있다. 나는 흐트러진 마음을 그대로 내비친듯한 울퉁불퉁한 형태의 도자기들이 좋다.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는 인간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지나쳐온 치열한 과정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완벽한 형태의 도자기들은 닮고 싶은 이상적인 삶과 닮아 좋고 울퉁불퉁한 모난 도자기들은 솔직한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한 마음과 닿아 있어 좋다. 잘 구워져 무엇이든 담을 수만 있다면야 이미 제 몫은 다 한 셈이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둘러쌓는 주변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까이하고 애정하는 시선을 곳곳에 닿아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은 개인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이고 사랑과 삶의 의미를 가까이하는 것 아닐까.
5.
그림을 그리고 중간쯤 왔을땐 조금 멀리 두고 볼줄도 알아야한다. 가까이 보면 보이는 것과 한걸음 멀리 보았을때 볼 수있는 것이 다르기에 작업을 할때면 나무와 숲을 마주하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붓을 들게 된다. 어떤 작업들은 6개월 이상 반쯤 그린채 걸어만 두고 바라만 보는 작업들도 있다. 그러다 끝끝내 그림을 완성으로 이끌기도, 때로는 전부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그림 한 점을 그릴 땐 얼마나 걸려요? 라는 질문에 꽤나 난감해 하는 편이다.
6.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냥 살아왔던 시간을 곰곰이 되돌아보며 마음을 헤아려보기. 나의 시선이 닿았던 곳들을 되돌아보며 무엇이 날 웃게했는지 생각하기. 내가 애정하는 것들을 흰 캔버스 위 가득 채워 넣고 지금 그릴 수 있는 그림을 당장 그리는 행위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일.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사랑과 희망을 담아 일상을 가득 채우면 그것이 내 삶의 보편적인 가치의 행복이 된다.
7.
주목하지 않으면 지나쳐 버리는 순간들이 많다. 내게 예술은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의 작은 순간을 주목하고 기록하는 삶의 과정과도 같다. 현대 사회의 휴대폰이나 디지털 기기 아이패드를 이용해 작업에 사용하는 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를 담아내는 것 이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작업물들은 인생의 작은 단서들이 되곤 한다. 작품 속 도자기를 포함한 메모나 레이아웃, 꽃, 동물 그리고 텍스트들은 시시각각 빠른 변화 속 나를 이야기 해주는 조각이다. 이러한 조각 파편들을 모아 새롭게 이미지를 구성하고 그리는 과정이 즐겁다. 이런 그림 그리는 과정들은 삶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나를 재정의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있게한다.
8. 시간은 어떻게해서든 흔적을 남긴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은 이와 유사하다. 어떤 시간들은 작은 순간의 찰나에도 영원히 기억되듯이 도자의 형태를 찾아가는 그 과정에는 아주 작은 손짓에 나의 마음과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참으로 솔직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이 둥글어 지고 싶은 날에는 주먹을 꾸겨넣어 도자기의 배를 통통하게 만들기도 하고 딴 생각에 잠겨 있는 날엔 곧장 모양이 흐트러져버리고 만다. 완벽한 것을 만드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보낸 일상에 덤덤하게 나온 꾸불한, 완전하지 않은 모양의 도자기마저 그 시간의 흔적이기에 애정이 간다. 삶에서 애정하는 요소가 하나씩 늘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이토록 불완전한 일상을 더욱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9-1. 텍스트를 수집한다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나는 그림과 텍스트들이 함께 있는 것을 더 친숙하게 여기며 자라왔다. 어릴 적부터 광고를 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이다. 오프라인 매체 광고 에서 보는 이를 설득시킬 3초의 마법이 중요하다. 때로는 말 한마디가 수백장의 이미지들을 대신하기도 한다. 한때 어릴 적 과거 꿈이었던 광고 디자이너는 현재의 나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디자인적 요소, 이미지와 텍스트가 함께하는 작품 속 레이아웃 구조들은 대게 상업 광고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다. 이미지가 바다와 같이 넘치는 시대에 광고의 레이아웃과 영향들은 작업에 꽤나 도움이 되는 편이다. 어쨋든 전부 다 사람을 보이는 것으로부터 유혹해야하는 일 아닌가?
9-2.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글귀들을 다이어리나 수첩에 필사하며 가까이 곁에 두고는 했다. 때로는 말 한마디가 수백장의 이미지들을 대신하기도 한다. 글과 그림을 함께 둔다는 것은 어쩌면 나의 정체성이 들어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술을 본격적으로 접할무렵인 20대 초반에는 뉴욕에 살았던 터인지 한국화, 동양화에 대해 배우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귀국을 할 무렵엔 나라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던 시기에 민화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림 속에는 내가 흥미를 느낄 부분인 글과 그림이 함께하는 ‘화제’ (또는 ‘서화일치’ 라고도 한다.) 가 눈에 띄었고 동양의 전통 회화 방식 중 하나이었기에 장식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내 작업에 연결시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수집한 글귀들은 작품에 등장해 철학이나 감정을 담아 그림과 어우러지게 되었다. 꽃 작품에는 주로 길상적 의미를 담아 하는데, 영어나 해외 글귀들을 수집해 좋은 기운이나 긍정적 의미를 담은 글들을 그림과 함께 ‘복(福)’, ‘수(壽)’, ‘부귀(富貴)’ 등 일상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들을 이미지와 함께 기원했다. 그렇기에 서양 대표 꽃인 튤립과 영문 텍스트들의 조합들은 사실 동양의 화제에서 영감을 받고, 레이아웃 구조는 광고 이미지에서 오는 편이다.
9-3. 좋아하는 글들은 공통점이 모두 나를 힘내게 한다는 것에 있다. 대게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글들은 불특정 수취인이나 그들의 사랑하는 이를 위한 것이고, 때로는 글쓴이를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사실 그 글들의 주인공은 결국 그 글을 마주하게 된 보는 이다. 이들은 하루의 힘이 되어주기도 일상에서 무너지지 않게 나를 지탱하기도 한다. 어떤 날엔 머릿 속에 새겨진 현판글자처럼 뇌리에 박혀 인생을 살아가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마음 속 무거운 돌에 음각 새겨진 듯 담겨있다. 그러니 이토록 삶을 살아가게 하는 자원인 글귀를 수집하는 일을 멈출리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