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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Mar 08. 2024

코뿔소는 코뿔소가 되지만 아들선호사상은 붕괴되었다

아들선호사상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네 할머니 세대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 살아온 ‘여성’으로서의 삶이 억울하다고 할지, 체념하며 산다고 할지 어떤 형용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든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수많은 제약들의 그물망에 겹겹이 둘러싸여 옴짝 달짝 못하는 물고기 같은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 그녀들은 ‘아들’을 낳음으로써 차별스러운 삶에 일종의 보상을 얻었던 것 아닐까? 반면 딸을 낳는다는 것은 자신과 동일한 삶을 살아갈 (그래서 자신의 대외적 상승감과는 관계없는), 살림을 도울 도우미를 얻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딸만 줄줄이 낳는다는 건 어떤 종류의 수치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그 시절 여성이 직업을 갖는다는 건 기생, 예인이나 무속인 같은 세계 외에는 없었고 시대가 조금 더 지나면 가장 그럴듯한 직업은 교사 정도였으리라.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없고 그 어떤 사회적 명함을 지닐 수 없던 여성들에게 가장 주요한 임무이자 사명은 ‘생산자’, 즉 ‘아들을 생산’해내는 것이었다. 아들을 생산함으로써 사회적 명함을 획득했다는 기분을 가졌을 거라 짐작된다. 왜냐하면 (자기 몸에서 나온) 그 아들은 커서 당당히 경제적 자립을 하는 존재였으니 하찮은 딸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을 것이다.



일전에 조카들이 어렸을 때 같이 티브이를 보는데 코뿔소가 나왔다. 조카딸이 물었다.


“이모, 코뿔소는 커서 뭐가 돼?”

나는 말해주었다.

“응, 코뿔소는 코뿔소가 되지.”


송아지는 커서 소가 되고, 망아지는 말이 되지만, 코뿔소는 코뿔소가 된다. 코뿔소는 야구선수도 될 수 없고 탤런트도 될 수 없으며 의사가 될 수도 없다. 코뿔소는 코뿔소가 된다. 코뿔소가 코뿔소 이외의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것처럼 그 시절의 여성들은 다른 무엇이 아닌,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 할머니, 아줌마 외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조금 나은 시대를 살고 있어 다행스럽다는 생각과, 아들선호사상이 없었던 부모님을 만나 다행스럽다는 마음이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코뿔소를 넘어서게 되었다. 더불어 아들선호이데올로기도 붕괴.

아시는 분의 훌륭하고 똑똑한 따님이 결혼을 한단다. 그 따님은 전교 1등을 내리 달려 우수한 대학을 진학하고, 졸업 후 세계인이 알아주는 기업에 다니고 있는 인재라고 들었다. 결혼식 전이지만 그 예비부부는 신혼집에서 살고 있는 상황. 어느 저녁 무렵, 따님이 그 어머님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 저녁 뭐해야 되지?’ 하는 물음에 그 어머님이 전화 통화 후 기가 막혀서 많이 우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늘 일등을 달리던 딸, 좋은 성적으로 좋은 기업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딸이 시집을 가서 남편과 해먹을 저녁끼니를 묻는 것이 기가 막히셨단다.

짤막하지만 임팩트 있는 그 에피소드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 참이었다. 뭐라 결론을 내리기도 어렵지만 결혼을 하건 하지 않건 인간의 삶이란 본래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니 저녁으로 뭐 해야 해,라는 질문은 적절하다. 게다가 그 어머님은 요리를 전문가급으로 하시는 분이다. 하지만 그 질문을 오직 신부 쪽에서만 했다는 것이 여기서의 안타까운 지점인 것이고, 혹여 예비신랑이 그 질문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하는 상황이 된다면 진정한 평등이 구현되는 세계인 거겠지… 하는 마음이……. 더욱 바람직하게 로봇에게 전적으로 요리를 맡기는 경우라면 좋겠지만 그런 세상이란 건 아직은 매우 요원한 것이니까. 로봇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들 가정에서의 식사 관계는 그닥 변함이 없을 것 같네. 흠.



오늘은 세계여성의 날. 꽃집을 화려하게 장식한 미모사를 바라보며 세계 어디에서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통받고 있을 그녀들을 생각한다. 그녀들의 삶이 조금씩이나마 밝은 빛깔로 물들어가기를.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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