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꽤나 화제가 되었던 빔 밴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
언젠가부터 대작 애니메이션 말고는 영화보는 것이 너무도 서툰 일이 되어버렸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이 좀 괴로워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버닝>을 보다가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을 만큼 오금이 저리는 느낌이 들어 도중에 그만두었고 (그 와중에 ‘스티븐 연‘이라는 배우의 연기는 손가락이 오그라들지 않았다, 괜찮았다. <미나리>에서도 좋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영화라는 장르는 이제 그만둘 때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배우의 훌륭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연기의 작위적인 느낌도, 오그라드는 느낌도 전혀 들지 않는 영화였다. 감독도 감독, 시나리오도 시나리오, 배우도 배우라서가 아닐까. 야쿠쇼 코지라서 가능한 영화였을른지도 모른다. 칸 남우주연상까지 탔다. 원래 구청의 공무원이었던 그가, 구청이 일본어로 ‘쿠야쿠쇼‘인데 거기서 예명을 따왔다고 하는 야쿠쇼 코지. 거의 대부분의 일본 영화가 담고 있는 거대한 틀이라고 할 수 있는 삶 안에 내재된 죽음, 죽음을 내포한 삶, 이라는 지점에서 이 영화 역시 그다지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과거 어떠한 배경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주인공 히라야마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원 등지의 화장실 청소를 하며 삶을 살아가는 지극히 말 수 없는 중노년의 남성이다. 아침에 집 밖으로 나올 때 항상 미명의 하늘을 보고, 성실하고 충실하게 화장실 청소를 한다. 하루치 일을 마치면 대중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한잔을 걸치고, 잠이 들기 전까지 낡은 아파트에서 문고본을 읽는다. 주로 쉬는 날 중고책방에서 100엔 정도를 주고 사온 고전들을. 내가 기억하는 책은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 뿐.
인상적이었던 것은 … 그의 무의식 혹은 꿈을 담아내던 흑백의 화면들과, 감정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두어 번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노출하던 장면들이었다.
- 가출해서 자신을 찾아온 조카딸을 찾으러 온 자신의 여동생을 안아주고,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엉엉 울던 장면이
- 조금쯤 마음에 두고 있었던 바의 (노래 잘 하던) 마담이 누군가와 포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뛰쳐가서 편의점에서 담배와 술을 사고, 아마도 처음으로 피우는 담배 연기에 콜록거리던 장면이
- 니나 시몬의 우리나라 판소리 같은 느낌의 그 곡을 들으며 차 안에서 그의 눈이 바알갛게 젖어가는 모습, 울면서 웃던 그의 모습이
- 세밀화같던 나뭇잎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나부끼고 있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네.
こんどはこんど、いまはいま。(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때가 되면 때가 되는 것이고 지금은 지금이지) 라며 조카딸과 노래를 부를 때, 그는 과거에 고여있구나 생각했다. 그는 지나간 시간에 고여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붙들고 있는 카세트테이프도, 그가 소장한 음악들도, 그가 보석처럼 찾아내 소중히 읽는 문학들이 그러하듯이. 조카딸이 지금을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데 비해 그는 지금에 이르게 한 과거에 고여있다. 그는 과거가 만들어낸 지금이라는 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쳇바퀴 같은 매일들 속에서 그저 반복되는 하루를 충실히 살아간다. 그 어디로도 가지 않고 같은 곳을 끊임없이 밟아가면서. 때때로 빛을 받은 나무가 영롱한 초록 빛과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내듯, 그의 조카딸은 자신의 일상에 잠시 스며들어와준 햇빛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한줄기의 햇빛 속에서 하루를 시작할 때가 그로서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며, 한 낮의 햇빛 속에 다시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 빛을 카메라 속에 간직하기 위해 딱 한번 셔터를 누른다. 잠들기전 전등 불빛 아래 문학에 빠져들 때 역시 반짝,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잠들 때 담아낸 흑백의 영상들은 그의 꿈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그림자이면서 빛의 그림자인 것이다. 그리고 곧 그것은 죽음에 대한 은유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햇빛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빛은 모두에게 ‘생명’을 상기시키는 것 아닐까. 그건 아마도 우리 모두가 엄마의 자궁이라는 동굴 속에서 세상에 나와 처음 마주하는 것이 바로 ’빛’이기 때문인지도.
좋은 영화였어.
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