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일본-이탈리아 언어의 가교상 수상식을 가다
지난 수요일,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씨를 실물로 처음 만났다. 1992년에 그의 소설을 처음 읽고 매료되어 출간된 모든 소설과 에세이를 모두 읽은 ‘덕후?’라 할 수 있는 팬이 된 이후로 직접 하루키 씨를 본 것은 처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第4回 日伊ことばの架け橋賞(제4회 일본-이탈리아 언어의 가교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던 덕이다.
日伊ことばの架け橋賞(일이탈리아 언어의 가교상)은,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일본 문학 작품 중, 문학적 가치가 높고 번역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고 한다. 저자와 번역자 모두가 수상 대상이라고. (노벨문학상은 역시 받지 못했지만 올해 하루키 씨는 그래도 이 상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는가 하면,
일본에서는 이 상을 요미우리 신문사가 후원을 하고 있었고, 나는 몇 년 전 (아이에게 일본의 신문을 접하게 해 주려는 마음에) 요미우리 신문에 회원가입을 한 적이 있다. 한 달 정도 어린이 신문을 구독했었다. 이후 신문구독을 하지 않았지만 회원가입이 되어 있으니 계속 프로모션 메일이 오곤 했다. 그간 굳이 확인은 하지 않았다. 최근 메일의 용량관리를 위해 결심을 하고 몇 년 간의 각종 프로모션 메일과 스팸 등을 시간을 들여 전부 삭제하고 메일함을 깨끗하게 비워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모든 메일은 확인하는 순간 삭제 혹은 보관을 처리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신문사에서 온 그 메일은 자동으로 창고에 쌓여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을 터….
불필요한 메일을 지우던 중에 요미우리 신문사에서 보낸 메일에 왠지 멈칫했다. 내용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처음이다. 메일은, 상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번에 처음으로 도쿄에서 시상식을 하게 되어 무라카미 하루키상이 참석한다며. 참석을 원하시면 신청하고 신청인이 많을 경우 추첨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신청하고 며칠 뒤 연락이 왔다. 참석해 달라는 메일이었다.
아, 드디어 무라카미 하루키를 실물로 만나는 건가!!
수상식이 있는 당일은 하필 내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던 날,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그래도 이런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 싶어 꾸역꾸역 이탈리아 문화원으로 향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다행이지 조금만 멀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장소는 재일 이탈리아 문화원. 하루키 씨의 사진은 촬영불가, 사인회도 물론 없다.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는 시상식이기 때문에 접수처에서 통역기를 받았다. 일본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탈리아인들도 꽤 많았다. 조금 있으니 하루키 님이 등장했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 조용필은 마지막에 나온다고 했던가. 수많은 사람들 - 이탈리아 대사라든가, 요미우리 신문사 측이라든가, 이탈리아 문화원 관련자라든가 하는 사람들 -의 긴 스피치 후에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수여식과 스피치가 있었다.
76세의 하루키 님은 단단하고 건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약간 싱글싱글거리는 표정도 에세이로 드러나는 그 다웠다. 정장을 입지는 않았고 검은색 재킷에 약간 캐주얼한 느낌의 바지와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하루키 하면 역시 스니커즈지요) 넥타이는 붉은색 계통으로 했던 것 같다. 마라톤 덕분이겠지만 작가들 특유의 건강해 보이지 않는 병약한 느낌은 전혀 없어서 아,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내놓겠구나 싶어 안심했다. 그는 아무런 원고도 없이 그냥 담담히 짧은 수상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듣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로. ^^
스마트폰으로 음성 녹음을 하긴 했는데, 웹에서 수상소감의 주요 골자를 정리한 것을 아래에 대략적으로 추려보았다.
- 나는 워커홀릭으로 매일 글을 쓰지 않으면 차분해지지 않는다. (僕は毎日文章を書いてないと落ち着かない.)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다른 작가의 좋은 문장을 번역을 통해 다시 쓴다는 말과 함께 한 이야기였다.)
- “번역은 궁극적인 정독(精読)이다. (翻訳は究極の精読。)”
(이 말이 좀 어려워서 grok에게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상당히 자세하고 장황하게 말해준다. “궁극적인 정독”은 번역자가 원문의 문화적·문학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새로운 언어로 재창조함으로써 두 문화를 연결하는 과정입니다.
라고 했다. 음 그런 거구나.)
- “나는 여유가 있으면 번역을 한다. 번역을 사랑한다. (僕は暇があれば翻訳してる、翻訳大好き。)“
-“번역은 수평의 글자를 수직으로 세우는 과정으로, 문장 기술을 배우고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翻訳することは精読すること、横の文字を縦に起こすことで多くのことを学んできた。)
정말 멋진 표현! 하루키다운 표현이었다!
-(1980년대에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생활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는 내 책이 현지에서 번역되지 않아 지인들에게 책을 직접 건네지 못해 외로웠다. (当時は現地で訳書が出ていなかったため、知り合った人々に本を手渡すことができず、心さびしい思いをした。)“
-“ 지금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이탈리아 서점에 꽂혀 있는 게 꿈같다. (今は僕だけでなく、多くの日本作家の作品が書店に並んでいて夢のよう。
몰랐는데 그 자리에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부인 ‘요우코’씨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부인 이름이 요우코인지도 처음 알았음) 남편에게 동시통역기를 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키가 인간적으로 느껴졌다는 트윗도 있었다.
하루키 씨의 스피치 후에 함께 수상한 번역가 안토니에타 파스토레(Antoinetta Pastore)씨의 영상 수상소감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굵직한 목소리로(여성분이다) 소감을 전했다. 1946년생으로, 이탈리아에 유학 온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문학을 접한 계기로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에 매료되었고, 처음 번역한 작품은 <태엽 감는 새 연대기>라고 한다. 영상 메시지 끝부분에는 “무라카미 씨,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새로운 ‘벽’을 넘어갑시다!라고 했다. 번역가다운 센스였다. :)
마침 어제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하루키 님의 동창이나 지인들이 모여 수상작을 지켜보고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런 움직임에 본인은 꽤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다. 노벨생리학상을 일본인이 가져갔고, 작년 수상자가 아시아 옆나라 한국의 한강이었는데 올해 전략적으로 하루키에게 수여될리는 없지 않을까나. 어쩌면 10년 후에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86세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 님에게 언젠가는 영광이 돌아가기를. 이렇게나마 그가 계속 건강히 오래도록 더욱 멋진 작품을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본다.
한 사람이 어떠한 종류의 ‘이야기세계‘를 창조하여 그것이 다수의, 한 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세계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생각해 본다. 언젠가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나는 늘 기억하고 있다.
“제가 소설을 쓰는 태도는 옛날 동굴시대의 이야기꾼 같은 것입니다.
저녁 무렵, 모닥불 주변에 모두 둘러앉아 ‘자 무라카미 씨 이야기를 좀 해보시죠’
하는 말을 들으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모두 두근거리며 웃거나 울거나 하면서 들어주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독자라는 것은 함께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은 사람들입니다.”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님!
모닥불을 피우면 언제나 달려갈 테니 계속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