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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Oct 17. 2018

브런치 작가로

브런치에 찾아오기까지


대학 졸업 뒤 언제부터였던가. 마치 계절을 타듯, 일 년에 세네 번 정도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삶 가운데 있는 충실함이나 바쁜 하루와는 별개로 내가 아무것도 ‘만들고’ ‘표현하고’ ‘남기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허전함으로 밀려오는 것이다. (회사에서 해 내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다. 회사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도 아 얼른 집에 가서 이렇게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다) 무언가 기록하고 만들어내어 남겨두고 싶은 욕구가 훅 하고 들어온다. 아이고, 또 이때가 왔구나.


기존에 사용하던 블로그들을 쭉 돌아보는데 아, 마음에 남는 이 아쉬움이란. 예전 것들을 쓰다가 멈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차피 내 공간이라면 내 마음에 쏙 들어 편안했으면 하는데 자잘한 것들이 눈에 띈다. 아, 제목 폰트가, 자간이 어딘가 맘에 안 드는데. 아 레이아웃이, 사진을 올리니 이게 안 맞고, 아 사이드바가 대체 왜 이렇게... 스킨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픽셀을 세 가며 고치려 보니 이젠 나도 나이가 있나, 글 쓰기도 전에, 그림을 사진을 올리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지치게 된다.


그러던 중에 브런치를 찾았다. 디자인에 반해 메인을 쭉 둘러보는데 좋은 그림 좋은 글 좋은 사진들이 줄지어 있다. 책방도 있단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 어, 글이 모이면 책도 낼 수 있다고요? 참 좋다, 참 예쁘다. 여기에 내 자리 하나 있었으면. 여기에 내 공간 하나 만들었으면 참 좋겠다! 하고 가입을 했는데 글을 쓰고 발행을 하려니 뜻밖의 복병이 있었다. (지원 하라는 말을 대충 본 탓이다. 그냥 말 만인 줄 알고...) 아, 작가로 선정되어야 하는거구나. 질러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빈 칸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자기소개, 브런치에서 하고 싶은 것들, 추가 글로는 새 글을 두어 개, 아가가 배에 있을 때 기록을 하던 기존 블로그 하나. 5일 안에 연락을 준다더니 다음 날 글을 수정하고 있는데 알림이 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어 벌써? 어안이 벙벙하다가도 웃음이 났다. 작가님, 이라니 이런 고마운 단어가 있나. 자리를 받아 즐거웠고, 주어진 기회에, 또 합격이라는 사실에 기뻤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기분이라는 것은 몇 살이 되어도 어떤 작은 것이 되어도 기쁜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오길 참 잘 했다 싶다. 쓰다 보니 브런치는 잘 정돈된 작업실 같은 기분이 든다. 햇살 잘 드는 창가 옆에 깨끗한 테이블, 그 위에 놓인 마음에 드는 수첩과 딱 좋은 질감으로 잘 나오는 펜. 한 번 더 오고 싶어 지고 들여다보고 싶고 무어라도 쓰고 싶어 지는, 다른 무엇을 정리도 정돈도 할 필요 없이 내가 하고픈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깨끗하고 단아한 내 자리.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똑같은 글인데도 불구하고 작가님, 브런치 작가,라고 하니 한번 더 생각해서 쓰게 된다. 마음에 드는 장소엔 마음에 드는 것들을 두고 싶어 지는 기분으로 한번 더 고쳐보게 된다. 쓰고 고치고 나아지는, 손을 한 번 더 대는 만큼 내게 즐겁고 내가 발전하는 선순환의 자리가 된다. 다른 이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 이곳에서 많이 나누고 많이 보며 바쁘게 자라가 길 기대한다.


합격통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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