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현 Oct 17. 2018

그 사람만 있으면 모든 게 다 괜찮은 바로 그 사람.

비 내리는 차가운 10월 중순에

어떻게 네게 편지를 쓸까, 무엇을 쓸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일이 있었다. 엄마한테 기념비적인 날이었거든. 꼭 네게 나중에 얘기해주고 싶었어.


오늘 엄마가 너를 데리고 집에 도착해 차 문을 여니 넌 이미 자고 있더라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스웨터를 겹겹이 입혀서인가 흔들리지도 않았는지 폭신하게 싸여서는 눈을 감고 있었지. 이걸 어떻게 깨워야 하나 고민하다가 카시트 벨트를 끄르며 네 손을 쥐었는데 네가 살짝 눈을 뜨더라. 반만 뜬 눈으로 엄마를 보길래 귀여워서 의성아 이제 집에 가자, 다 왔어. 하니까 다시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요놈 요놈 하면서 짐을 챙기고 너를 안아 들어 한 어깨에 얹고 집으로 올라왔는데 여전히 어깨에서 나는 색색 소리... 옷을 갈아입혀야 하지 않을까, 우유 안 먹고 잘 자려나 걱정하며 뉘었는데 아, 이거 왠지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서 옆에다 준비를 쭉 해놓고 재킷이랑 양말부터 하나하나 벗겨보기 시작했어.


살살 도톰한 재킷을 벗기고 작은 발에서 쪼그만 양말을 쇽 쇽 벗기고. 보니 여전히 세상모르고 누워있길래 슬금슬금 바지도 벗겼는데 아이고 냄새. 어느새 끙아를 해서 서둘러 기저귀도 가져와 갈았다. 찬 와입으로 엉덩이를 닦는데도 웬일인지 가만히 있고... 윗도리를 벗기려고 너를 들어 안는데 네가 눈을 떴어. 속으로 그럼 그렇지 이제 또 재워야겠구나 생각을 하는 중 네가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보는데 꼭 그 눈이 '집이구만' 하는 거 같더라고. 두리번두리번하던 네가 그러다 엄마를 슬 보고, 눈을 몇 초 맞추더니 '음, 다 괜찮군' 하는 얼굴로 다시 눈을 감는 거야. '음, 다 괜찮군' 하는 얼굴로.


아가 얼굴에서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있는지 엄마도 처음 알았다. 너 상상이 가니? 잠옷 윗도리를 입히고, 자리를 바꿔주고 베개를 괴어주고 이불을 덮어줄 때도 너는 팔다리를 큰 대자로 쭉 늘어뜨려 눈도 뜨지 않았다. 엄마는 이상하게 그 시간이 너무 가슴이 벅찼어. 방 문을 살짝 닫고 나오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콩콩 뛰면서 너무 행복했어. 네가 '음, 다 괜찮군' 하는 얼굴이어서. 엄마가 그게 너무 벅찼어.


엄마는 사실 오늘 쉽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어려운 일들도 있었고, 관계에 대해 고민할 일도 있었고 신뢰에 대해 생각할 일도 있었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는데 네 그 얼굴이 모든 걸 다 녹이는 것 같았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편안함이, 안심이 될 수 있는 상대가 얼마나 있을까. 사람 하나 믿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때론 가슴 둘 곳 하나 없이 느껴지는 이 세상에서 지금 네게 나는 다 괜찮은 사람이구나. 내가 네게 그렇게 편안한 곳이구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했는데 내가 네게 그런 사람이구나.


잠옷, 배게, 이불 두 겹. 차내지도 않고 곤히 누운 의성이.


엄마가 잘 살아야겠다 힘내서 살아야겠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멋진 엄마가 되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엄마 가슴을 가득 채웠어. 그게 얼마나 벅차고, 기쁘고, 행복한 부담감이던지.


네 덕분에 엄마는 오늘 행복하다. 오늘도 엄마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마워. 자는 모습이 참 예뻐 엄마는 또 몰래 사진을 찍었다. 이제 또 회사 가서 쉴 때마다 보고 보고 또 볼 거야. 우리 아가 좋은 꿈 꾸길. 내일 아침에 또 만나.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