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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Oct 25. 2018

치약 짜 주는 여자

오늘 우리는 이렇게 사랑한다

아침, 아직 의성이는 일어나지 않았고 남편은 공부하다 새벽에 잠들어 일어날 기미가 없다.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샤워도 화장도 아직. 의성이가 일어나면 먹일 수 있도록 얼려놓은 모유도 얼른 꺼내놔야 하고 옷도 골라야 한다. 고요하지만 바쁜 아침이다. 반쯤 졸며 양치를 하다 남편 칫솔을 쥐어 남편 취향대로 치약을 쭈욱, 가득 짜서 칫솔 위에 얹어놓고 나중에 잡기 편하도록 한쪽 구석에 둔다. 잠든 남편을 향한 내 아침 인사다.


의성이와 함께 하게 되고나서부터, 우리 부부의 사랑 표현은 변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던 연애 시절, 아침 뽀뽀를 하고 같이 뒹굴며 영화를 보고 예쁘게 플레이팅 한 식사를 대접하던 신혼.  의성이를 낳고 지금 내 사랑 표현은 그때와는 사뭇 다르단 생각이 든다.


아침에 출근할 때 뽀뽀는 빼먹을 수 있지만, 저녁 안마는 눈을 빛내며 기다리는 남편에게 해 주는 것. 예쁘게 플레이팅은 안 하더라도 서툴게라도 저녁을 만들어두는 것. 나가기 전 잠깐 방을 한번 더 보고 의성이 이불을 정리하고, 기왕이면 나갈 옷까지 입혀놓고 남편에게 넘기는 것. 학교에서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남편이 걸어놓고 간 빨래를 개는 것. 같이 나가 데이트는 하지 못하더라도, 주말 아침에 남편이 더 잘 수 있도록 의성이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가는 것.


예전 같으면 그게 왜 사랑이야, 당연한 거지. 그게 사랑이야, 생활이지! 했을 텐데 이제는 알겠다. 너도 피곤하고 나도 피곤할 때, 네가 조금이라도 덜 피곤하길 바라는 마음이 지금 내 사랑이고 네 사랑이라는 것을. 삶 속에서 네 배려를 느끼고 또 내가 널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연애 때보다 신혼 때보다 더 가슴이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을. 신혼 때 읽었던 한 책에 쓰여 있던 글귀가 있다. 결혼은, 나보다 상대의 필요를 우선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내가 내 필요보다 널 돌아보고, 너는 네 필요보다 날 돌아봐 준다. 신혼 때는 그 말이 그냥 예쁘게만 다가왔는데 일하고 공부하며 시간에 쫓기는 육아가 다가오니 아, 이 얘기였구나 하게 된다.


오늘 아침도 남편 칫솔에 치약을 짰다. 출근 시간이 빠듯해질 때까지 의성이와 놀고, 나가기 직전 남편을 깨운다. 여보야, 나 이제 나갈게. 오늘도 수고해요! 사랑한다 단어 한 마디 없어도 그렇게 오늘 우리는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을 받는다. 육아하며 알게 된 새 사랑법이 나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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