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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Oct 11. 2018

꼭 달라붙어 있는다는 것

1년 완모, 모유수유를 마치고


1년에 걸친 모유수유를 딱 한 달 전에 마쳤다.

즐거운 여정이었다.

가능하면 할 수 있는 데까지 더 해보고 싶었는데, 딱 의성이 돌 며칠 전 심하게 유선염이 걸렸다. 세 번째 유선염이었다. 회사에 도저히 빠지면 안 될 일이 있어 나갔다가 회사 동료분의 차를 얻어 타고 한 시간 만에 귀가했다. 열이 심하게 올라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고 끙끙 앓았다. 달궈진 돌처럼 딱딱해진 가슴을 주물러주던 남편이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냐고 운을 뗐다. 이제 모유수유 끊자, 할 만큼 했어 잘 했어 이제 의성이도 그만 먹어도 돼.




의성이를 낳고, 시부모님과 몇 분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2개월 반 만에 복직을 결정했다. 아침에 젖 먹이고 돌돌 포대기에 싸서 아버님 어머님께 의성이를 넘겨드리고, 일 끝나고 와서 보는 몇 시간 안 되는 그 아쉬움. 의성이가 나를 기억이나 할까 엄마보다 다른 사람 보는 시간이 많은데 나를 엄마라고 생각해주긴 할까 그냥 밥 먹이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오만 걱정이 다 에워싸는 가운데 모유수유가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고 즐거움이었는지.


눈 감고 쪽쪽 빨아먹기만 하던 아가는 좀 크니 눈 뜨고 엄마를 보며 쪽쪽 빨다 배시시 웃는다. 기기 시작하니 아침이 되면 내 품에 기어와 가슴께에 얼굴을 비비면서 젖을 찾기 시작했다. 의성이랑 피부를 맞대고 찰싹 달라붙어 눈을 마주치는 그 시간이 너무 귀했다. 가슴이 떨어져 나갈 거 같았던 모유수유가, 회사에서 하는 유축이, 여행 갈 때 출장 갈 때 펌프를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길에서도 세 시간마다 차를 세우고 주차장 구석에서 유축을 해야 했던 부끄러움이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의성이와 함께할 수 있는 그 본딩을 놓치는 것을 상상하는 게 내게 더 어렵게 다가왔다.


의성이 백일즈음. 아침에 먹이고 출근하고 점심에 돌아와서 먹이고 또 나가고. 곤히 잠든 의성이 얼굴 보면 나가는 발걸음이 쉽진 않았다.


남편 말도 틀린 게 아니니까 그래 이제 그만하자, 했지만 의성이가 울 때에, 특히 젖 물고 자는 버릇이 들었던 의성이가 울 때에 젖 주고 싶은 욕망을 뿌리치기란 정말 너무 어려운 일이었던 거 같다. 몇 번이고 그냥 셔츠를 걷어올리고 물리고 싶은 마음이 들고, 한 살이 된 의성이가 이젠 알 거 다 안다고 옷 목 께를 잡아당기며 재워달라고, 먹여달라고 울 때 대체 내가 이 걸 왜 하고 있는지, 그냥 먹이면 안 되냐고 몇 번이고 남편을 쳐다봤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게 있는데 주면 안 되는 그 마음을 남편은 정말 알았을까.

며칠 만에 도저히 마음이 안돼서 의성이에게 젖을 물렸다. 안타깝게 바라보는 남편을 모르는 척하고 고개를 숙여 의성이만 봤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나 대체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정말 이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날 좀 납득시켜달라고. 남편이 해준 얘길 들으니 나도 이해가 갔다. 내가 맘 약해지면 꼭 다시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의 조언은 다음과 같다.

1. 의성이랑 다른 경험들을 할 수 있다
의성이가 젖 의존이 높긴 했다. 울 때, 잘 때, 안정하고 싶을 때. 나도 좋으니까 틈만 나면 의성이를 물렸다. 자동적으로 의성이는 나만 보면 가슴만 찾았다. 하루는 농담으로 내가 의성이 밥통인 거 같다고 한 적도 있었는데, 남편 말은 이제 의성이가 젖을 안 찾으면 너랑 더 놀 수 있지 않겠냐, 엄마를 놀아주는 사람 돌봐주는 사람으로 인식하면 더 좋을 거다란 얘기였다. 귀가 혹했다 (그리고 실제로 젖 떼고 나니 진짜 의성이랑 신나게 놀게 됐다! 그전에는 둘이 누워서 의성이는 젖 먹고 나는 사랑하는 눈빛 뿜어내는 오붓함이었다면 이제는 둘이 떼굴떼굴 뒹굴면서 논다)

2. 치아우식증
의성이가 젖 물고 자는 날이 많아지니 치아에 까뭇한 점 같은 게 생겨서 걱정하던 때였다. 걱정은 되는데 끊을 수는 없는 이 상황... 양치를 아무리 해도 자기 직전에 먹으면 소용이 없으니 이건 어차피 떼야하는 문제긴 했다.

3. 의성이는 이제 오래 놀 줄 아는 아간데.
젖 양이 많으니 어디 갈 때마다 의성이랑 놀다가도 멈추고 유축을 했어야 했다. 유축을 해야 하니 짐도 늘고 멈춰야 할 곳도 늘 생각하게 되고 놀다 말고 그만해야 하고 젖이 꽉 차면 몸상태가 안 좋아지니 또 시름시름하고. 이제 하루 세 번만 먹고도 하루 종일도 뛰어놀 날이 올 텐데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

4. 이젠 나도 좀!
여기에 크게 웃었다. 내가 젖 양이 많으니 남편에게 가슴에 손도 못 대게 했다. 잘못 가슴을 누르면 새는 일이 잦으니 근처에만 와도 안돼! 하지 마!. 꼬박 1년 동안 오래 참은 셈이다. 이제! 의성이 말고 아빠도 좀! 하는데 그래, 우리 남편도 고생했단 생각이 들었다.

의성이가 착한 아가였다! 마음을 다잡고 나서, 의성이가 가슴을 잡아당길 때 옷을 벗기려 할 때 나도 엄마 아야 해요~ 방법을 썼다. (실제로 그땐 유선염 때문에 건들기만 해도 죽을 것 같아서...). 누가 알아냈는지 몰라도 어머님 복 많이 받으세요... 의성아, 엄마 가슴이 아야 해서 안돼요. 미안해 엄마가 아야~해서 의성이를 줄 수가 없어. 의성이 옆에 엄마 누워있을 테니까 코 자자. 사흘 울고 악을 쓰던 의성이가 넷째 날이 되니 옷을 잡아당기다 엄마가 미안, 아야 해서 안돼요~ 의성이는 큰 아가니까 이제 먹지 말고 자자, 하니 데굴, 등을 보이고 돌아눕더니 훌쩍훌쩍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 놀라움... 다섯째 날, 또 가슴께로 오면서 눈치를 보더니 엄마 아야 해, 미안해~ 하니까 내 팔로 데굴 둘러 들어와서 팔을 베고 놀다 잠들었다. 여섯째 날, 일곱째 날... 한 주가 되니 나도 놀라고 남편도 놀랐다. 진짜 한주만에 젖을 뗀 거야?

단유 할 때 정말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그 얼마 안 되는 본딩 타임. 나만 바라보는 우리 아가, 내가 줄 수 있는 게 내게 있다는 그 충실함. 지금도 아쉽지 않냐고 하면 아쉽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1년, 의성이랑 행복하게 붙어있었다. 이제는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도 괜찮을 때였다. 다른 무엇보다 의성이랑 이제 다른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내 맘을 잡았다. 회사 퇴근 뒤 얼마 안 되는 시간, 우리 이제 더 재밌게 놀 수 있을까? 의성이랑 달라붙어서 온화한 시간을 보내는 이거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있었다! 예전도 좋았지만 지금은 더 좋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얼마 전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의성이 또래의 아기 엄마와 마주쳐 이야기를 나눴다. 아기 몇 개월이에요? 아가들 나와있긴 시간이 늦죠 맞아요 우리 애는 젖 물고 자서.. 아 저도 그랬어요. 딴데선 먹일 건데 여긴 테이블이 너무 작아서 수유하기가 어렵네요, 얘기하다 보니 동지애가 끈끈하다. 이렇게 세상이 또 조금 넓어진다. 감사한 1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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