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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Nov 17. 2018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엄마입니다. 디자이너입니다.

익숙해지면 보이지 않는 것들

한참을 서랍 속에 토막글만 쌓았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며 자기소개를 할 때 이렇게 썼던 것 같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10년 차 디자이너, 3년 차 아내 1년 차 워킹맘입니다. 정리하고 나니 내 삶이 제법 심플했다. 그렇게 걸고 시작은 했는데 프로필에도 떡하니 워킹맘, 하고 걸어놓고 정작 일에 대해 쓴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라고 해놓고 또 보니 그것도 쓴 적이 없다. 유학으로 시작한 미국 생활이 이제는 17년 차, 한국에서 산 날보다 미국에서 산 날이 더 길고 디자이너 생활을 보자니 졸업 후 인턴십에 에이전시에서 2년, 리드 디자이너로 3년,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곧 5년 차... 1년 차 육아는 쓰고 싶은 것이 많아도 17년 미국 생활은, 10년 회사생활은 무엇을 꺼내야 할지 그저 막막했더랬다. 오래되니 익숙하고, 익숙하니 참 평범해 보여서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동생이 말했다. 언니, 학교에 내 메이저에 한국어랑 영어를 둘 다 잘하는 사람이 없대. 학교에서 뭣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하더라고. 듣자 하니 맞는 얘긴데 신기하다. 동생은 특별한 사람이고 드문 경험에 나이 치고는 흔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걸 본인만 몰랐다. 동생과 대화하다 보니 당연하게 해와서 몰랐던 것들. 내가 하니 남들도 할 줄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눈에 보였다. 되돌아보니 나 역시 그랬었다. 모두가 이 정도는 알 것 같았고 이 정도는 말할 줄 알았고 이 정도의 일은 배우지 않아도 할 줄 알았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살아놓고 왜 그리 다 똑같다고 생각했을까. 모두가 밟아온 길이 다르고 배워온 삶들이 다를 텐데 내 무엇이 그렇게 평범해 보였을까.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들 자기의 모습은 잘 모른다. 저 사람은 이런 면이 대단해. 저 친구는 이런 부분이 참 좋아. 너는 이래서 참 특별해. 말하면 다들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안 그래. 내가 뭘... 나도 그렇지 않았을까.


글을 쓰다 보면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서랍 속에서 몇 번이고 고치고 지우고 없애다 보면 보이는 것이다 왜 나는 이 글을 꺼내고 싶지 않을까. 왜 계속 지우게 될까 무엇이 더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하고 그러다가도 다시 그 주제를 잡게 되는 걸까. 익숙해서 평범해 보이는 것들이 있다. 평범해서 거창하게 내놓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는 것들도. 내  평범한 하루는 아마 누군가에겐 특별할 것이다. 내 삶도, 내 경력도, 내가 하는 육아도, 내 생각도. 내가 살아오고 살아갈 길은 그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쓰는 것은, 표현하는 것은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익숙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하나하나 캐내어 다시 비추어 보는 것. 글로 정리하고 다시 한번 되새겨보면 알게 되는 내 삶의 찬란함이 거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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