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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Feb 22. 2019

구석구석에 웃음 하나씩

17개월, 순한 아가라니 누구 말씀이신지.

청소를 하다 보니 집안 구석구석에서 의성이 물건이 보인다. 옷장에 가면 옷장 구석에 잃어버린 머리빗이 하나. 침대 밑에서 작은 공이 여러 개. 신발장 아래가 이상하게 청소기에 걸린다 싶어 아래를 들여다보면 의성이의 장난감 자동차가 세 개. 하나하나 집어 제 자리에 두고 갠 빨래를 넣으려 옷 서랍을 열었더니 의성이 간식 통이 접힌 옷 사이에 곱게 놓여 있었다. 웃음이 픽 나왔다.


의성아 너 대체 뭘 했니!


17개월 의성이. 웃긴다고 얼굴 짚을줄도 안다!

의성이가 이제 많이 자라 행동반경도,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났다. 아침에는 맘에 드는 장난감을 들고 엄마 아빠 방으로 오고, 식기세척기에서 수저를 꺼내 건네주며 그릇을 정리하며 논다. 고작해야 방과 거실을 오가던 아가는 이제 사다리도 타고 올라가고 손 씻을 때 쓰라고 화장실 싱크 옆에 둔 작은 스텝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개척하기도 한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자랐는지. 요 즈음은 청소를 하다 보면 보물 찾기를 하는 것 같다. 청소하며 의성이의 길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내가 출근한 뒤의 상황을 그릴 수 있는 작은 조각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부엌 구석에 있는 장난감 기타를 보니 아빠가 설거지할 때  함께 의성이가 여기에 있었구나, 소파 구석에 과자가 끼어있는 걸 보아하니 간식은 여기서 먹었겠구나. 퍼즐 조각이 거실에 있는데 저 방 끝 구석에도 있으니 분명 이건 조막만 한 손에 들고 돌아다니다 숨겨놓은 흔적이겠구나. 아, 화장실 변기 앞에 장난감이 쌓여있는 걸 보니 남편이 화장실에 있을 때 의성이가 울어 들여놓았나 보다. 우리 남편 오늘 고생했네! 탐정이 된 기분이다.


요 즈음 의성이 생떼가 시작되었다. 곧 tantrum 시작할 나이라더니 정확하게 17개월 찍자 마자... 예전엔 뜻대로 해 주지 않으면 허리를 뒤로 휘고 소리 지르며 우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시도 때도, 모양도 없다. 얼마 전엔 아침에 의성이가 온 것을 모르고 자고 있었더니 엄마가 눈을 안 뜬다고 바닥에서 뒹굴고 울고 있었다. 달래도 소용이 없어 보고만 있는데 하늘을 보고 누워 소리 지르고 울던 의성이가 갑자기 수산시장 활어처럼 펄떡! 뛰더니 엎어져서 다시 울었다. 펄떡! 하고 뒹굴. 그리고 곧이어 다시 펄떡! 하고 몸을 되치는데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의성아 너 그거 어디서 배웠어! 대체 어디서 봤어. 그걸 어떻게 했어! 우는 의성이를 안는데 그 순간이 너무 웃기던지. 아니 언제 이렇게 컸니. 언제 이렇게 커서 화도 내고 짜증도 낼 줄 알게 됐니. 너 뱃속에 있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사람 됐구나 의성아! 의성이가 안겨서 울다가는 다시 어! 어! 하면서 나가자고 방 문을 가리킨다. 엄마 같이 거실로 나가자는 뜻이다. 이야 애기가 이렇게 사람이 되는구나. 순하다 순하다 하고 지냈는데 그저 덜 큰 아기였던 거였다. 기저귀 가는 것을 배우고  이유식 만드는 것을 배우고. 돌보고 노는 것에 이제 익숙해진다 싶었더니 이제는 훈육을 고민해야 하니 엄마도 쉴 새 없는 일이다. 아기가 자라는 만큼 정말 엄마도 자라야 한다.



아가와 함께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지루할 새가 없이 신기한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매일이 새로운 아가 옆에서, 하루하루 쑥쑥 크는 아가 옆에서 도구를 알고, 사람을 알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싫어하는 것을 알아가는 순간들을 보고 있다는 게 얼마나 재미난지. 울다가도 빵긋 웃고, 이젠 제법 머리가 커 엄마 아빠에게 장난도 치고 도망도 가는 의성이. 아가가 있으면 집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더니, 옛 말 틀린 거 하나 없이 하루 종일 웃음이 난다. 의성이가 클수록,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웃음 하나씩 찾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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