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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Oct 15. 2018

서로의 로또로 산다는 것

육아로 만나는 남편


갓 결혼했을 때에 시어머님께서 내게 가끔 하시던 말씀이 있다. 지현이는 남편 잘 만나 로또 맞았지! 그때는 왠지 그 말씀이 불편했더랬다. 아니 나는 남편의 로또가 아니란 말인가. 그래서 괜히 섭섭한 마음에 나도 대꾸하곤 했다. 에이 어머님, 서로 로또 맞은 거죠!


덩그마니 아이가 처음인 나와 달리 남편은 날 만나며 시조카를 둘 보았다. 바쁘신 시누이와 시어머님을 대신하여, 하루 종일 혼자. 20대 학생에게, 청년에게 흔하지 않은 경험이고 경력이었을 터다. 그렇게 키운 조카들을 참 많이 예뻐하던 삼촌으로 산 남편은 의성이가 태어남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내 자식이 제일 예쁜 아빠로.


모든 게 처음이라 의성이가 으앙 울 때 어쩔 줄 모르고 이리저리 헤매던 나와 달리 그간 쌓아온 경험으로 남편은 척척 엉덩이를 확인해 기저귀를 갈았다. 우는 의성이를 끈기 있게 달래고 덩달아 우는 나도 달래며 새벽에 침대 옆에서 어깨에 의성이를 얹고 졸던 남편. 학업에 바빠하면서도 틈만 나면 의성이를 보러 와 아직 갓 뒤집기를 하는 아가를 목마 태우던 남편은 의성이가 조금 커서는 우리 애 먹일 거 잘 골라야 한다며 마트를 직접 누비며 유기농 이유식 재료를 고르고 갈고 쟁여 얼려놓았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결혼 3년 차에 새삼 깨달은 것이다. 내가 대박 맞았구나.


육아를 하며 알게 된 것 중에 하나는 육아란 사랑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잠 못 자고 쉬지 못하는 나날을 몇 주 몇 달 겪다 보면 이게 사랑해서 할 수 있는 선을 넘을 때가 있다. 지쳐 짜증을 내고 싶어 지는 그 순간, 성실함, 다정함 온유함 오래 참음 같은 성품이 그때 빛을 발한다. 성질 급한 나와 달리 남편이 빛나는 순간이다.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저 난 남편 뒤만 쫒아가는 수밖에 없다.


비 구경도 할 줄 아는 12개월 아들과 아빠.


육아하며 새롭게 보는 남편의 모습들이 있다. 연애할 때의 풋풋함, 신혼 때 만난 달콤함을 지나 육아를 하니 남편이 더 깊이 보인다. 연애나 신혼 때와는 다르게 얘기하지 않고는, 나누지 않고는, 헌신하지 않고는 때로 싸우지 않고는 육아할 수 없는 터다.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는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고 알게 될까. 어떤 시즌엔 내가, 또 어떤 시즌엔 네가 더 의지가 되는 순간들이 올 것이다. 내가 네 로또면 어떻고 네가 내 로또면 어떤가 이렇든 저렇든 이제 우린 한 몸인 것을. 지금 내가 너로 행복하니 나도 지금, 또 언젠가 올 순간에 네 로또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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