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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Oct 12. 2018

혼자가 무서웠던 그때

엄마도 서툴다



의성이를 낳고, 한 주간의 짧은 엄마 찬스가 끝나니 오롯이  남편과 둘이 남았다. 남편의 학업은 늘 바쁘고 치열했고, 언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남편은 수업 한 번 빠지는 것도 늘 마음에 힘겨워했다. 의성이를 낳는 그 날까지 수업을 가네 마네 했는데 출산 후라고 예외일 수가. 친정 부모님이 가시니 남편이 학교 간 시간 동안 나는 의성이와 단 둘이 집에 있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잘 갔다 와, 공부 수고해, 그래도 빨리 와, 빨리 와 여보야.




내 산후조리는 남편이 해주겠노라고 했었다. 홀로 일하다 출산휴가에 들어선 나와 학교를 다니던 남편. 다른 주에 계신 친정 부모님이 필요하면 도와주실 분을 지원해주시겠다 했지만 받아들이기가 남편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괜찮아 엄마, 남편이 다 해주겠다고 했어. 잘 하는 거 알잖아.  실제로 남편은 많은 걸 했지만 산후조리는 학교를 다니며, 아가를 보며, 집안일을 하며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학교를 다녀오면 숙제를 해야 하고, 프로젝트가 있고 시험이 있으며 동시에 쌓인 젖병도, 챙겨 먹어야 할 밥도, 잠을 자지 못해 지친 아내도 있었을 것이다. 묵묵히 남편은 나를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젖병을 닦고 아이가 깰 때마다 일어나 손목이 아픈 내 대신 아이를 옮겨다 줬다.  나는 고마웠고, 동시에 미안했으며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할게,라고 말하는 남편을 두고 설거지를 하고, 냉동실에 손을 넣어 모유 팩을 만들었고 웃으며 음식 그릇들을 날랐다.  


둘 다 서로를 위해 열심히 했고, 우습게도 그래서 둘 다 몸이 부서져라 아팠다. 그렇게 할 일이 아니었는데!


제왕절개를 한 배는 약 기운이 떨어질 때마다 열이 오르며 욱신욱신했고, 임신 때부터 나갔던 손목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바늘로 찌르는 통증에 크립에서 아이를 들어 올리기조차 어려운데 내가 혼자 할 수 있을까. 의성이가 울까 봐, 기저귀를 갈아야 할까 봐, 안 잘 까 봐, 젖을 먹이고 나서 다시 크립에 넣어야 할까 봐 모든 게 다 겁이 났다. 남편이 없을 때는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의성이를 안고 덩그마니 있는데, 내 팔 안에 안긴 아기가 마냥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얇은 유리로 만들어진 구슬을 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너무 예쁜데 금세라도 바스삭 소리를 내며 깨질 것 같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그런 구슬. 크립에 누운 의성이를 바라보면 너무 행복했다. 우리 아가 자는 모습도 예쁘지! 그런데 안고 움직이려니 세 걸음만 걸어도 힘이 쭉 빠졌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온 남편을 잡고 울었다. 나 산후우울증 온 거 같아.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겠어 여보야.


의성이 한 달. 자는 사진만 있다. 사진은 찍고싶으되 여유가 없었던 흔적.


혼자가 무서웠다. 혼자 다 하겠다고 살았는데 아가 하나 낳으니 알게 되었다. 아니다 난 그렇게 잘나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와주기만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와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아가를 안아주고 먹여주고 때론 설거지도 해주는 그 친절이 너무 감사했다. 뭘 먹을지도 생각나지 않으니 주는 것만 받아먹었다. 혼자서는 못 지나왔을 길이다.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라고 한다. 아기를 키우는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지만, 내 경우엔 행복한 엄마를 만드는데도 한 마을이 필요했다.


내가 의성이랑 둘이만 지내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때는 의성이가 8개월 즈음이었다. 그전까진 어딜 가든 남편을 붙잡았다. 같이 나가자. 같이 집에 있자. 나도 데리고 나가 아님 의성이를 데리고 나가줘... 이젠 의성이랑 놀러 갈 생각 하는 게 즐겁고, 둘만 같이 있는 시간은 오붓하다. 한 팔에 의성이를 끼고 산책도 나가고 냉큼 업다 굴러 떨어져도 웃을 수 있다. 의성이랑 뒹굴고 놀다 보면 문득 그때 생각이 난다. 꼬물거리는 의성이를 행복하고 또 두렵게 바라보던 혼자가 무서웠던 날들. 그때는 끝날 거 같지 않았는데, 일 년 만에 이렇게 웃고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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