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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Oct 13. 2018

엄마도 이제 자유야!

한 달, 천천히 젖 말리기

나는 소위 축복받은 몸이었다. 의성이를 낳자마자 젖이 나오기 시작했다. 안 나오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오는걸 안 줄 수도 없으니 모유수유는 내게 옵션이 아니었다. 의성이는 열심히 젖을 찾아 무는 아가였고, 나는 아프다고 이거 안 하면 안 되냐고 울면서도 결국 젖은 물리는 엄마였기에 처음 1oz로 시작했던 젖량은 쭉쭉쭉 늘기 시작했다. 쭉쭉 젖량이 느니 의성이가 먹는 걸론 감당이 안 돼서 냉동실에 얼리고, 냉동실이 꽉 차 감당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땐 병원에 갔다. (미숙아들을 위한 모유 도네이션 프로그램이 있다. 아이스박스 한 가득 가져가 간호사에게 전달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냉동실이 차는 일이 반복되자 남편이 말했다. 우리 냉동고를 사자. 김치냉장고보다 먼저 모유 냉동고가 집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복직할 때를 대비해 열심히 쌓았건만 모든 게 내 생각대로는 안 되는 법. 의성이는 엄마 젖이 너무 좋은 아가였고, 열심히 모유는 쌓아놓았는데 젖병으로는 평소의 반도 먹질 않아 결국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집으로 달려 오가며 의성이를 직접 먹여야 했다. 한 시간 남짓한 점심시간, 15분 차를 몰아 집에, 또는 돌봐주시는 분 댁에 가 의성이를 수유하고 점심을 대충 먹고 의성이랑 인사하고 다시 차를 달려 회사로... 엄마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정신이 없었는데, 의성이는 신이 나서 점심시간 즈음되면 낮잠도 안 자고 내가 오기만 기다렸다. 잘 먹으니 모유는 더 늘고 얼려놓은 모유의 소비는 없으니 마냥 쌓이기만 했다. 언젠가 잘 먹일 때가 있을 거라고 남편이 나를 위로했고 그래 정 안 되면 그냥 다 기부하자, 그러면 되지... 그리고 의성이 돌 즈음, 그때는 왔다. 세 번째 유선염이 온 것이다.


https://brunch.co.kr/@jihnhkim/2


젖을 말리기로 결정하고, 젖 말리는 약은 쓰지 않기로 했으므로 남편과 상의하여 식혜+유축 텀 늘리는 걸로 시도하기로 했다. 시어머님께 말씀드리니 유선염으로 고생하던 날 보신 어머님께서 그날로 시판 식혜를 두 통 사다 주셨다. (설탕물을 당당하게 하루 종일 마실수 있는 짜릿함! 기분일지 나한테 맞았던 건지 나는 식혜 먹고 나서 젖량이 확 줄었다)  시판 식혜가 끝나자 남편이 식혜를 집에서 만들어줘서 또 마시기 시작했다. 젖을 말리기 전, 자고 아침 유축을 했을 때 피크가 18-21oz가 나왔는데, 식혜를 마시기 시작하고 젖을 안 물리기 시작하니 양은 8-10oz로 줄었다.


첫 주, 9월 초 경 단유 시작할 때 유축 텀은 4-5시간.  양은 약 10oz

둘째 주, 양이 8oz대로 줄었다. 7-8시간에 한번 유축을 목표로 했다. 회사에서 한 번도 유축 안 하고 오고, 유축 시간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회사 퇴근하자마자, 그리고 자기 직전 세 번으로 줄였다.

셋째 주, 유축해서 나오는 양이 6oz를 찍었다. 12시간에 한번 유축을 목표로 했다. 12시간이 되고 나니 유축 안 해서 편한 게 몸으로 느껴졌다. 한번 버텨보자, 하고 하루를 통째로 버텼는데 4oz가 나왔다. 훅훅 줄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째, 이틀을 버티고 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남편이 괜찮겠냐, 젖몸살 조심하자 해서 그냥 혹시나 싶어서 한번 더 유축을 했다. 이틀 버텼는데 4oz. 그리고 사흘 유축 없이 버티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축을 하니 3oz가 나왔다. 이게 마지막이 아닐까. 정말 말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딱 한 달만에 끝이 났다.




의성이 돌 즈음 걱정되던 것이 있어 피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의성이가 cow milk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의성이를 걱정하며 돌이 되면 우유라도 먹어야 하는데 어쩌나, 이제 엄마 젖 많이 안 나오죠...? 하시는데 아 이때구나 싶었다. 이렇게 쓰게 되는구나! 괜찮아요. 저희 많이 있어요. 저 잔뜩 쌓아놨어요 선생님.


페이스북을 보다가 goodbye pumping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goodbye pumping, goodbye nursing room.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집에서 쓰던 메델라를 정리하고, 회사에 두었던 작은 스펙트라 펌프를 들고 집에 들어오니 이야 이것도 한 짐이다.  유축할 때 쓰던 작은 오피스 테이블도 한 번 깨끗하게 닦았다. 매번 방을 내주고 때론 유축하는 날 위해 밖에서 기다려주던 사람들에 새삼 고마웠다. (아직 널싱 룸이 없던 우리 회사라 때에 따라 몇 명의 방을 돌아가며 빌려 썼었다) 한 번은 일하다 시간을 놓쳐 가슴이 굳어 평소보다 시간을 오래 끌었는데 하필 그 날이 그 오피스 주인, 린다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와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내게 괜찮다고 넌 잘 하고 있다고 날 꼭 안아준 그녀.  일하면서 모유 수유한다고 수고한다며 등을 두들겨주며 격려해주던 사람들.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는 도저히 못 왔을 길이다. 감사하게 잘 마쳤다. 고마웠던 날들도 힘들었던 날들도 안녕! 이제 자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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