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는 전형적 포퓰리즘
데일리 임팩트 <세상 돌아보기> 칼럼(2023.12.6)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 이익 과다를 비판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포함 야당은 은행에 대한 ‘횡재세’ 도입 재추진을 공언하고 있다. 작년에도 정유사들과 은행들에 대한 횡재세 도입이 야당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과 기본소득당 용혜원 의원이 각각 법안을 발의했었다.
최근 논의는 은행들의 지난 몇 년 호실적이 빌미가 됐다. 작년 18개 은행은 순이자 마진 대폭 증가로 18조 원의 당기순익을 냈다. 시중은행 4곳은 11조 원, 특수은행 3곳은 4조5000여억 원의 순익을 내서 그 순익만 15조 원을 넘었다. 18개 은행이 이자로만 번 수익은 무려 53조 원이었다. 4대 시중은행의 이자이익은 국민 8조5592억 원, 신한 7조1611억 원, 하나 7조471억 원, 우리 6조6141억 원이고, 특수은행인 농협도 7조여 원이었다. 여기에다 금년 3분기 동안의 은행권 이자이익도 30조에 달했다.
이런 실적 호조는 금융당국의 규제와 은행들의 담합적 행태로 수신 금리 경쟁 없이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과 차입 스프레드 유지·인상으로 여신 금리를 대폭 높인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예금자나 차입자인 국민 또는 금융 소비자가 은행들의 횡재에 기여만 하고 손해를 본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은행 산업은 정부의 엄격한 규제 산업이므로 이런 횡재에 대한 반감은 당연하다. 이런 일을 방지하여 공익을 보호하려고 정부가 은행 산업을 규제하는데 다른 결과가 났으니, 국민이나 언론이 들끓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횡재세에 의한 초과이윤 환수 방식은 은행의 영업활동과 가격에 정부가 개입해서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하면 은행이 효율성을 높이고 원활한 자금 유통을 하게 만들지 못한다. 은행의 높은 수익에 대한 횡재세 부과는 통신·전기·가스 등 공익산업에 적용하는 ‘투자보수율 규제(rate-of-return regulation)’를 시도하는 것과 유사하다.
독점구조가 경제적 효율성 보장에 최적인 자연독점 산업에서 진입·가격·영업활동 등을 시장에 맡기면 독점가격이 매겨진다. 이를 방지하려고 정부가 적정 이윤율을 정해서 가격을 책정하는 게 투자보수율 규제다. 자연독점 산업은 규모의 경제로, 많이 생산할수록 기업의 생산비가 떨어진다. 그러므로 시장처럼 한계비용에 가격이 결정되면 적자가 난다. 그런데 정부가 ‘원가+적정이윤’에 해당하는 수입을 확보할 수 있게 가격을 규제하면, 경제적 효율성은 보전하면서 기업의 적자는 막아 더 많은 소비자가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투자보수율 규제에 대한 설명은 그럴듯하나 사실이 아니다. 시카고대학 교수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와 그 연구조교 클레어 프리들랜드(Claire Friedland)는 일찍이 1962년 공동 저술한 논문 ‘규제자들은 무엇을 규제할 수 있는가? 전력산업 사례(What Can Regulators Regulate? The Case of Electricity)’에서 이를 입증했다.
이 연구는 미국 각 주(State)의 전력산업 운용 실태조사를 통해 전력산업이 자연독점 산업이며 대부분 독점기업으로 운영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각 주의 전력산업 구조가 공기업, 규제된 독점기업, 독점 사기업 형태임도 파악했다. 전통적 투자보수율 규제 이론에 따르면 공기업과 규제된 독점기업의 요금은 독점 사기업보다 낮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공기업과 규제된 독점기업의 가격은 규제된 투자보수율에 따라 결정되어 독점가격보다 낮고, 독점 사기업에서는 독점가격이 책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주의 전기요금을 비교했을 때 운영 양태와 관계없이 요금이 거의 비슷했다.
이 결과는 경제학에서 경제적 규제가 ‘공익 보호’를 명분으로 하나 실제는 기업이나 이해 당사자가 정부의 담당 공무원들을 ‘포획하는(capture)’ 지대추구 행위의 결과임을 확실히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경제학자 대부분이 정부의 이런 그럴듯한 명분의 산업 규제가 결국 그 산업과 기업의 효율성과 최적 배분을 저해한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 가급적 규제를 배제하도록 권하고 있다.
은행들은 여러 개이므로 독점이 아니다. 그러나 은행 산업의 특수성을 명분으로 한 건전성 규제 등 다양한 규제로 ‘사실상 담합(de-facto collusion)’ 상태여서 독점과 유사하다. 은행 산업이 한 은행의 여러 사업부 구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위험은 정부가 흡수해주면서 여·수신 가격(이자율) 차이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행정지도 등 규제를 해서, 만들어지는 독점지대를 횡재세로 흡수하겠다는 발상은 “정부가 횡재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나쁜 것은 횡재세로 은행들의 횡재를 줄여도 국민의 삶에 어떤 이익이 될지는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일부 사람들이 후련해할지 모르나, 그 재정수입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불확실하다. 아마 그 재분배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자의 지대추구 행위와 공무원의 부패·유착 가능성으로 또 다른 부작용을 낼 게 뻔하다. 그러므로 국민들을 위해서는 횡재세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은행 간 경쟁 확대로 예대마진을 축소해야 한다.
횡재세 같은 전형적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은 국민 분노를 부채질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정치에 반영하려는 교활한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정치의 장에서 퇴출해야 우리 삶이 나아질 수 있다. 그래야 국민을 위한 정책경쟁에 정치인들이 나설 것이다.
정치가 나아지는 길, 우리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