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림 Oct 24. 2024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되나요

구체적인 설명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

내가 몸담고 있는 마케팅 부서는, 소통 없이는 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소통은 모든 부서에서 필요하겠지만, 특히나 마케팅에서는 소통의 중요성이 높고 빈도도 잦다. 예를 들어 하나의 마케팅 프로그램을 론칭하기 위해서, 여러 번의 내부 회의를 하고, 수십 번의 전화통화를 하며, 수백 통의 이메일을 써야 한다. 이번 마케팅 기획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윗사람을 설득하는 작업은 첫 단계이다. 이 단계를 무사히 통과하더라도, 실무를 같이할 동료들에게 다시 취지, 목적과 목표를 납득시켜야 한다. 그들이 우리 부서와 같은 방향성을 보며 일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설명하고 확인하는 것은 그다음 과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사항은 무엇인지, 그래서 당신네 부서에서는 이런 걸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표현을 계속하는 것이다. 설령 마케팅팀이 세상을 흔들만한 기발한 기획을 하더라도, 결국 실행이란 여러 부서의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협조가 없다면, 기획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하고, 딱 '상상' 그 단계에 멈춰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면 구체적인 설명이 필수다. 

우선 ‘왜’ 이걸 하는지 설명해야 하고,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덧붙인 후, ‘어떻게’ 할지 세부 영역까지 전달해야 한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화살을 피할 방법이 별로 없다. 한참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시동 걸고 있으면, 부장님은 갑자기 처음 듣는 얘기라며 이걸 왜 하냐고 물을 때도 있다. 실무부서에서는 이미 합의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자기네 부서의 계획과 다르다며 퇴짜를 놓기도 한다. 그러므로 조금 힘들더라도 처음부터 상세하게 서술해, 메일로, 서류로 남겨놓는 것이 필요하다. 

때론 잘 쓰인 기획서 하나만으로는 부족해, 여기에 열 마디 말을 덧붙일 때도 있다. 활자와 언어가 주는 전달력은 다르기에, 그 둘을 적절히 활용하면 나의 의도가 상대방에게 훨씬 더 쉽게 와닿는다. 이 글자가 의미한 바는 이것이다라는 설명을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


가끔 팀원들은 왜 우리 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글을 쓰고 말을 전달해야 하는지 반문한다.

아마도 억울한 마음에서 그러겠지. 우리가 업무 협조를 요청하는 영업 팀은, 기술 팀은, 자신들의 언어로 대충 말해도 우리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마케팅 기획에 녹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말할 때는 그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상대방을 배려한 문장을 사용한다. 결국 일을 하는 목적은, 내가 생각한 것들을 다양한 수단을 사용해 실현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을 조금 더 들이더라도, 그래서 억울한 마음이 마구 올라오더라도,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구체적인 말과 글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사실 이런 나의 생각에 모든 팀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생각하는 '구체적인' 것의 정도가 다르기에, 자신의 선에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전혀 구체적이지 않은 메일을 보내는 적도 많다. 한 팀원은, 다음 달부터 진행할 프로모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해당 제품, 시기, 할인율, 메시지)를 잘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영업부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고 했다. 팀장인 내가 보기에는, 앞의 '왜'에 대한 설명이 빠져서 그런 것 같았다. 그들에게 이 프로모션이 얼마나 중요하고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단계가 빠지니, 뒷부분의 실행 계획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팀원 자신의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을, 밖으로 미처 꺼내놓지 못해, 아무도 그것을 읽거나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대신, 이러한 자세한 설명을 할 때도 주의할 점은 있다. 

바로 구체적인 것과 과도한 것을 구별하기다. 구체적이라고 착각해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주면, 아예 외면하게 되는 역효과를 나을 수 있다. 17년 차 마케터인 나도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것이 깔끔하면서도 구체적인 정보인지, 아니면 지저분하게 나열된 구구절절한 문장인지 매번 헷갈린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적는 게 맞는지 반문하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상대방을 위한 배려의 언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의 생각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같은 곳을 보게끔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한다. 이 분야에서는 그들보다 내가 전문가라,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기도 하기에. 

역시 삶은 균형 잡기가 맞다. 

구체적이되 구구절절하지 않고, 세부 내용을 포함하되 지나치지 않는 간결함을 가진 그런 설명을 언제나 꿈꾼다. 

아! 이런 절묘한 균형의 기술은 도대체 언제나 터득할 수 있는 걸까.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매거진의 이전글 자신만의 속도로 꽃을 피우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