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남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도, 갑자기 상대방이 내뱉은 단어 하나로 라임을 넣고 개그를 치는 사람. 밥을 먹다가도 재미난 생각이 떠오르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몸으로 웃기는 사람 말이다. 지난 주말 저녁식사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떤 대화 주제이건 상관없이, 마치 웃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계속 농담을 던졌다. 딸과 나는 남편의 개그에 배꼽 빠지게 웃다가도, 생뚱맞거나 재미없는 드립(?)을 칠 때면 싸늘하게 식은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웃긴 말을 마구 한다. 마치 화살을 100발쯤 쏘았는데 그중 10발은 과녁에 맞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지, 더 나아가 화살을 얼마나 맞혔는지는 상관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웃기든 말든 상관없이, 나의 길을 계속 간다라는 태도? 상대방이 자신의 농담에 웃으면 신나게 그 주제를 이어가고, 반대의 상황이면 다른 주제로 자연스레 넘긴다. 나 같으면 당황하고 민망해 다음 말이 안 나올 것 같은데, 그는 태연하기만 하다.
남편은 원래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하며 유심히 들여다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웃긴 사람이 아니라, 웃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웃게 만드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것은 순수한 '재미' 그 자체지, 꼭 상대의 반응이 아니긴 하다. 만약 상대방의 큰 웃음이 그의 개그 감각에 대한 인정이라면, 그는 그것보다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더 웃기려고 노력한다. 혼자서 벽에다 대고 말하며 낄낄대고 웃을 수는 없으니, 상대방이 필요한 정도랄까? 이렇게 말하면 비약은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그가 던지는 개그는 어떨 때는 어이없을 정도로 재미없고 실없기도 하다. 매번 웃음이 빵빵 터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웃음의 결과에 크게 개의치 않고 계속 개그를 친다. 결과로만 따지자면 재미없음과 재미있음의 비율은 반반이다. 때론 웃기지만, 때론 썰렁하다. 그가 추구하는 상대방의 웃음은, 결국 수없는 시도로부터 나온 달콤한 보상이지 않을까 싶다.
평범한 사람인 남편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문득 개그맨들은 평소 얼마나 많은 농담을 건네고 연습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카메라 앞에서 하는 개그의 압박감을, 무수한 시도로 경험을 쌓아가며 조금씩 줄여가겠지. 생활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방송을 앞두고 밤새워가며 대본을 쓰며, 리허설을 계속하리라 상상해 본다. 그렇게 고군분투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개그는 웃기지 않다며 까인 적도 많았을 것 같다. 청중들로부터 개그에 대한 혹평을 받으면 좌절하게 마련이고, 가끔은 주저앉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그맨들은 남을 웃기면서 행복을 전파하고, 그 웃음으로 본인도 행복한 사람이지 않을까. 재미있음과 재미없음이라는 청중들의 피드백도, 시도를 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기에 그들은 다시 일어나 개그를 할 것이다. 그저 이번 실험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궁리하고 실행해 볼 것 같다.
남편과 개그맨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재치 있고 재밌어 보이는 사람들은, 이미 재미없는 것을 거친 사람들일 것이라고. 매번 재밌기만 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재미없다고 욕먹더라도, 그 평가와 시선을 조금씩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건강해지려면 신체 근육과 마음 근육을 모두 길러야 한다는 뜻의 문장이었다. 마음 근육이란 삶의 방향성이고, 신체 근육이란 방향성으로 향하게 하는 방법이다. 신체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그냥 해봐야 한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근육이 탄탄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남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살면, 삶의 방향성도 흐려지고 근육을 더 기를 힘도 없어진다. 남의 평가란 개그맨의 경우 관중의 웃음일 것이고, 직장인의 경우 상사나 고객의 칭찬일 것이다. 만약 웃음과 칭찬을 못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인정받지 못할 바에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을 움직이는 진정한 원동력은, 외부가 아닌 그 사람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은,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그것을 위해 사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아도 마음만은 늘 여유 있는 사람들. 남의 시선보다 나만의 가치를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그리고 인생을 즐기며 산다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주 해보고 누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남편처럼 자신이 하는 개그가 재미있던 재미없든 간에, 그냥 해보는 거다. 해보다가 남들이 빵빵 터져주면 더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혼자 웃으면 되니 말이다. 잘하려는 욕심을 살짝 내려놓고, 오늘은 무엇을 즐기며 살지 고민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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