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는 과학 시험 기준 점수를 넘지 못한 경우 반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바닥을 맞았고, 고등학교 때는 주요 교과목이 두 개의 반으로 나뉘었다. A반, B반. 난 B반 단골이었다. 자주 간다고 반겨주는 이도 없었고 적응되는 곳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이 늘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청소년기 학교 문화 같았다. 반전은 없었다. 하위권 성적의 학생이라 달리 선택권이 없었던 나는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때 기억나는 전화 한 통이 있다. 해당 학교에 지원하고 며칠 후, "저희 학교에 입학할 생각이 있으세요?"라며 의아하다는 듯 혹은 당신만 괜찮다면 환영한다는 듯 학교 관계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어떻게 물어도 내 대답은 "yes"였으니까. 조금 착잡해도 나를 받아준다면 고마운 곳이니까.
그 고마운 마음도 잠시, 거의 입학하자마자 1학년 초쯤 내면 깊은 곳에서 욕망이 솟구쳐 올라왔다. 적어도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이밀었다. 괜스레 심통 나고 답답했던 마음을 풀어낼 데를 찾고 싶었던 건지, 욕심을 부리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행동을 계획했다. 반수와 편입 시험으로. 물론 이 또한 기적은 없었다.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고, 결과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때 나는 캔디가 아니라 확신했다. 캔디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무료하게 대학 생활을 하던 어느 날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비행 승무원. 이름만 들어도 멋들어진 일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승무원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가고 싶은 항공사를 알아보고, 그곳의 서비스를 살펴봤다. 시간을 나누어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부지런히 벌어 관련 학원을 등록했다. 수업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밝게 웃는 연습과 동시에 면접 답변을 만들었다. 채용 설명회 내용에 귀를 쫑긋했고 스터디 모임에서의 의견을 나에게 맞게 흡수하려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아니었나 보다. 어울리지 않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