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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27. 2024

명분에 붙은 핑계

세 번째 왜곡점

약 2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대기업 혹은 중소기업에 취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돌아보면 지방대학교 졸업에, 경험이라곤 아르바이트밖에 없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까짓 거 시도라도 해보자 싶었다. 매일매일 회사가 정해준 질문에 "돈 벌려고 지원한다 이놈들아" 소심하게 혼잣말로 반항하다가도 금세 마음보를 고쳐 먹고 기업 홈페이지를 예쁜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한동안 노트북 화면을 뚫어지게 보며 자기소개서 쓰는 기계로 살았다. 취업 강의를 통해 도움과 자극을 받으며 하루에 3~5개씩, 나가떨어지지 않을 만큼 수차례 키보드를 두드려댔다. '100개 정도 쓰고 1~2개 붙으면 잘한 거다'라는 말에 위로를 받으며.


취업 준비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아 아무 데나 들어가기로 했다. 또래보다 늦어진 나이에 조급하고 초조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 군데 직장을 거쳐왔지만 공통적인 물음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매달리듯이 사는 게 맞는 걸까'하는. 처음에는 직장인이 되었다는 감사함이 날 지탱했지만, 서서히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갔다. 구멍 난 풍선처럼 계속 빠져나가는 숨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점점 초라해지는 정체성이 나를 짓눌렀다. 무언가 내 안을 채우는 것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단 1g도. 내가 이상해진 걸까. 조급하고 초조해지니 참을성이 없어진 걸까.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지만 결국 이렇게 된 건 내 탓일 테다. 제때 내 마음을 도닥여주지 못한 탓. 다른 이들처럼 치열하게 달리지 못한 탓.


이쯤 되니 결론을 내고 싶어졌다. 서울에서의 생활과 삶이 단 한 번도 만족스럽거나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고. 그냥 살고 있으니까, 딱히 어디로 벗어날지, 내 몸을 어디에 누일지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으니까. 대부분 다 이렇게 살고 있을 테니 이렇게 사는 게 맞겠지 싶었던 것. 여기서 말한 '이렇게'는 무엇을 말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아마 모르는 채로, 나이 먹는 대로,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는 대로 맞춰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겠지. 그래서 무엇 하나 떳떳하게 큰 덩어리를 던지며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번 생은 틀렸다면서도 뭐가 틀렸는지 모르겠는 채로 흘러왔다. 어차피 틀렸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터덜터덜 배에 앉았다. 노를 젓지 않고 놓아버린 채로. 이제 와서 바로잡기에는 너무 겁쟁이가 되어버린 사람. 이미 길을 잃었는데 노를 잡는다고 길이 찾아지겠나 하는 생각만 많은 사람. 발디디고 있는 동그라미를 벗어나기 힘든 사람. 설명하자면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하기 짝이 없는 보통... 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다. 충분한 한 줄로 소개조차 되지 않는 아름답지 못한 사람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나를 잃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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