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다 보니, 잘 못하고 있었다.

완벽한 순간은 결코 없다. 시작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by 웅스님

잘하려다 보니, 오히려 잘 안 되는, 잘 못하고 있는 순간이 있다.



하루에 주어진 24개의 장면이 있고, 각 장면에 60개의 순간이 지나간다.

1440개의 순간으로 이루어진 온전한 나만의 하루를 너무 잘 만들고 싶은 욕망이 커질수록, 준비해야 할 게 많고, 다음을 계속 생각해야 하는 무게에 짓눌리게 되었다.


차라리, 1개의 장면만 있고, 365개의 순간을 온전히 거기에 집중했다면, 차근차근 그리고 차곡차곡 원하는 장면을 하나씩 쌓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100개의 장면이 모여, 이 길었던 여정이 끝날 때쯤에는 우여곡절도 많고, 일희일비의 감동과 후회로 버라이어티 한 단 한 가지만 남게 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남들보다 독창적인, 인정받는, 인기 많은 그런 단 하나의 스토리에 집중하다 보니, 나는 매 순간을 잘근잘근 쪼개서 살아왔지만, 제대로 시작을 못하고 있다. 기획, 재료만 준비하기에도 할 일이 너무 많아져 몸이 무겁다. 마음도 무겁다. 시작은 언제 할 수 있을까?


굳이, '남들보다'라는 카테고리 안에 분류하지 않아도, 언젠가 끝나게 될 이 스토리의 결말은 각자가 다르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나 보다. 각자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쩌면 나는 틀렸다는 이야기를 화제를 잘 못 잡고 있었던 듯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죽도록 뛰고 움직여야 꼭 다이어트인가, 문득 떠오르는 이런 일상의 작은 '앎'이 그동안 곪아왔던 나의 암적인 불순물을 배출해 주는 시원한 수도꼭지 같은 역할을 한다.


나이, 성별, 사회적 위치, 인간관계의 터울, 재정상황, 따지고 따지고 따지다가 정말 잘해보고 싶은 목표의 시작을 '정작 못하는 상황'에 목줄이 죄이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불안한 상황을 예견하고, 계속 떠올리며 마치 나는 그곳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버튼을 빨리 눌러보고 다시 눌러보고 하면 되는 간단한 일들, 그 한 번의 버튼을 누르는 것에 손가락이 몹시 무겁다.


395일째 버튼을 계속 닦다가 쳐다만 보고 있자니, 이제 버튼을 닦는 일이 더 무서워졌다. 어떤 잘못된 일이 발생할지 두려워서 버튼을 닦는 일조차 미루게 되는 시점도 있었다. 도망치고 미루고, 외면하고, 잊어버리고 다시 닦다가 돌아와도 결국 이 버튼을 누른다는 결심이 서질 못했다.


오늘 기록하는 이 글도 결국은 내일 버튼을 꼭 누르기 위한 하나의 작은 용기이자, 버팀목이다.



완벽한 라면은 없다. 고로 완벽한 순간은 없다. 완성만이 있을 뿐.


단순하게 풀어놓자면 이런 심각함이죠. 배가 고파서 라면을 얼른 끓여야 하는 상황이다.

1. 어떤 재료가 들어가 있는지 분석하는데 3개월이 걸렸다.

2. 어떻게 끓여야 '제일 가장 맛있게 잘' 이런 수식어가 붙을까 알아보고 배우는데 3개월이 또 걸렸다.

3. 이제 라면을 끓일 수 있겠다 싶었더니, 라면의 종류가 너무 다양했다.

4. 시장에서 잘 먹히는 라면이 무엇인지 조사하는데 2개월이 소요됐다.

5. 그 사이에 라면의 트렌드는 계속 바뀌고 있어서 2개월을 더 사용했다.

6. 라면 끓이는 방법과 재료를 깜빡해서 1개월을 다시 최종 복습을 했다.

7. 오늘은 꼭, 내일은 꼭, 다짐하며 물이라도 끓여야지 다짐하며 결국에 물을 끓여냈다.

8. 맛없으면 어떡하지? 망하면 큰일인데! 싶은 걱정이 앞서 불을 줄인다. 끈다. 다시 라면을 찾아본다.

9.......


라면을 이렇게 395일 끓이다 보니, 정작 라면이 왜 필요했는지 잊어버리고 쓸데없는 만들어낸 걱정거리들을 늘리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 '살기 위해서'라는 큰 목표는 온데간데로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주변에서는 왜 안 끓여? 빨리 끓여야지? 하는 피드백이 많았지만, 이미 '삶'이 아닌 '완벽한 라면'에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그 소리를 결국 귀담아듣지 못했었다.


삶의 큰 장면들이 많은데, 잘하려다 보니, 잘 못하는 상황이 왔다. 크게 보지 못하는 상황도 접했다.

1. 물이 끓으면 라면과 재료를 넣고 조금 더 끓인 후, 맛있게 먹고 생존한다. (30분)

2. 살아났으니 이제 다른 것을 먹어본다. 혹은 라면을 끓이는 시간과 속도, 맛을 개선한다.


이쯤에서 혹 누군가는 궁금해할 것 같다. 나조차도 궁금하다.


결국 오늘, 2월 4일.


'그는 결국 라면을 끓였을까?'


'살아남았을까?'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

.


"잘하려다 보니, 잘 못하고 있을 때가 있다. 있을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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