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꼬마 Jan 02. 2021

가파른 흙길과 거대한 나무가 사라지는 동안

옛 모습을 안다는 것 자체가 '옛날 사람'이 될까.

  나는 꽤 시골에 산다. 그 때문에 집 주변에는 중고등학교가 없어서 중고등학교를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나온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동네에 붙어있어서 집이 있는 동네보다 더 홈타운처럼 그 지역을 6년 동안 활보했다. 우리 집 근처에 뭐가 생기고 없어졌는지는 몰라도, 학교 근처에 뭐가 생길 것인지는 과정까지 다 알았다. 특히 고등학교 근처에는 여러 아파트 단지와 한 초등학교가 교묘하게 얽힌 길이 있는 탓에 길이 여기저기로 거미줄처럼 뻗어있었는데, 그 길을 6년이나 돌아다닌 덕분에 나는 어떤 길이 어떤 곳으로 가는지 정도는 눈 감고도 다닐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던 길은 고등학교 뒷문으로 나와 조금 걸으면 곧장 나오던 정말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는데 내려가면서 발이 쭉 미끄러져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 거의 45도 각도의 길이었다. 내려가는 것은 위험하고, 올라오는 것은 정말 고역이던 그 길은 내가 등하교 시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길은 아니었지만 전혀 포장되어 있지 않은 生흙길에, 도로 정도의 꽤 넓은 너비를 가진, 마치 도로 공사를 하다 만듯한 모양새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져 좋아했다. (물론 그 가파름 자체의 스릴을 좋아하기도 했고, 그 길이 학교가 끝나고 버스 정류장을 곧장 갈 수 있는 지름길인 데다 그 길을 지나면 학생들의 핫플레이스인 ‘빽다방’과 노래방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가기 위해 지나가야 할 때도 많았다.)

  그 길이 그렇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길 자체의 분위기도 있었지만 내리막길 기준으로 왼쪽은 아파트 담장, 오른쪽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이루는 수풀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있는 나무들은 내가 지금까지 봤던 나무들 중에 가장 키가 컸을 정도로 굉장히 큰 나무들이 모여있었는데 또 그 앞에는 밭이 있었고, 그 앞에는 초등학교와 우리 고등학교가 있었다. 수풀 때문에 시골인 기분이지만 일단 시골은 아닌 주변 환경. 오히려 수풀과 흙길, 그리고 밭이 주변의 분위기에 맞추지 못하고 뜬금없이 존재하는 모양새다. 마치 그곳만 다른 세계인 것처럼.


  졸업하고 나서는 그곳에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우선 그 동네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야 했으며, 그 동네에 사는 친구를 만나려 해도 조금 더 핫플레이스인 곳에서 만났지, 그 근처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어느 곳을 가기 위해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는 중이었고, 그 버스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학교가 있는 그 동네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내 눈을 의심했다. 가파름이 포인트였던 그 흙길이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주변 건물과 도로와 어우러져 적당한 각도를 가진 아스팔트 도로가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애초에 저 길은 구불구불하게 꺾여있어서 가파른 경사길은 나무와 건물에 가려지기 때문에 버스가 지나가는 그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다. 근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내가 지금 있는 도로와 삼거리로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는 깔끔한 일자 도로였으며, 그 가파른 곡선을 가리던 그 수풀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나는 버스가 지나가는 동안 멍하니 그 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기분이 묘했다. 내 기분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슬픈 건지, 화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감정이 다 섞여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후에 근처에 갈 일이 생겨 일부러 그 길을 오르막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봤는데 길도 넓고 깔끔해진 데다 경사도 완만해진 것만 같은 기분에 잠시 멍했다. 사실 개발된 지역 한가운데 있는 가파른 흙길이 개발되지 않을 리 없었지만 그래도 내 6년의 추억을 담은 그 스릴 넘치는 흙길은 이제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이렇게 깔끔할 리 없는 곳인데 새로 깐 아스팔트 도로의 색깔은 아름다울 만치 명확했고, 이제는 그 길을 걸어 내려갈 때 양손으로 중심을 잡으며 땅만 보고 걷지 않아도 됐다. 앞을 보며, 친구의 얼굴을 보며 그냥 걸어 내려가도 안전한 길이 되었다. 좋은 걸까?



  위에서 길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슬퍼졌다. 길의 오른쪽을 꽉 매웠던 수풀이 없었다. 학교 건물보다 컸던 그 큰 나무들은 모두 없어졌다. 내가 눈앞에서 본 가장 큰 나무였는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치워지지 않은 나무들의 잔해가 흩어져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제 큰 나무를 보고 싶으면 어디를 가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그 학교와 아파트 사이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비탈진 흙길마저도 ‘안전한’ 아스팔트 도로로 만들어야 했던, 그 근처를 방해하는 큰 나무 같은 것은 베야 했던 환경 속에서 이제 난 어디서 학교 건물보다도 큰 나무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알던 익숙한 것들이 변화해가고 있다는 것은 참 무섭다. 학교 근처 식당가는 불과 5년 전쯤만 해도 아무것도 없이 갈대 같은 풀만 잔뜩 자라던 벌판이었는데 그곳에 거대한 빌딩들이 빈틈없이 세워지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점점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왔는데 알아보지 못한 만큼 변해있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아버린 나는 이제 5년 전 그곳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곳이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난 잊는다. 나보다 학교생활을 단 3년 정도만 늦게 시작한 후배들은 그곳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나는 가끔 “허허, 그곳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었단다. 상상이 가니?” 같이 ‘옛날 사람’이 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우리 지역에만 있던 영화관이 어느 날 ‘CGV’로 바뀌던 그 날 나와 내 친구들이 했던 말처럼.


  “좀 있으면 ‘OOO(예전 영화관 이름)’ 알면 옛날 사람 되는 날이 오겠네.”


  그 영화관이 있는 곳은 우리 지역의 핫한 모임 장소였기 때문에 그 영화관 이름이 그 동네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 되기도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은 그 영화관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없어져 버린 곳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지역을 부르는 대표적인 이름 같은 것이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치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는 옛날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그런 생각이 있는 것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