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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꼬마 Jan 11. 2021

저 인스타병 없는데

인스타용 자아 같은 것은 내게 없다고 믿는 프로 인스타러의 불안함

  나는 인스타그램을 많이 한다. 이 브런치와 연결되어 있는 계정은 부계정이라서 게시물이 없지만 내 본계에는 몇백 개의 게시물이 있을 만큼 인스타그램을 자주 한다. 올릴 게 많다기보다는 원래 일기의 개념으로 하는 인스타그램이라서 어딘가를 나갔다 온 날에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조리 적는다. 워낙 밖순이인 데다가 하는 활동이 많아서 나간 날이 많아 게시물도 더불어 많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예쁜 사진을 올리려고 노력은 하지만 예쁜 사진만 올리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음식 사진을 찍는데 재능이 없어서 친구들이 제발 자신이 찍어준 사진을 올리라고 할 정도인 데다가 셀카를 못 찍기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사진에 해탈한 지 오래라서 내가 봐도 이상한 사진도 일단은 올린다. 필터가 누리끼리하든, 내 얼굴이 찌그러졌든 딱히 부끄럽지 않고, 그런 사진을 올려도 어차피 볼 사람만 본다는 걸 안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인스타용 자아’ 같은 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떤 대외활동이 끝나던 날, 나는 어설픈 주최 측의 운영을 비롯한 여러 부분으로 인해 많이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라고 느껴졌던 같은 단체의 사람들을 태그하여 게시물을 올렸다. ‘자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게시물을 올렸는데 곧 태그된 그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ㅋㅋㅋㅋㅋㅋ자주 만나고 싶어?’


  그냥 묻는 말이었다. 자주 만나고 싶냐고. 그런데 무언가 불편했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그것을 알아챈 그 친구가 놀리듯이 한 번 더 묻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당당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대화를 할 때마다 멋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과 사적으로 좀 더 친해지면 좋을 것이라고 매번 생각했다. 그저 단지 묻는 것일 뿐인 그 말에 뭔가 불편함과 찔림을 느꼈다. 설마 내가 나의 ‘인스타용 자아’를 위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아끼는 척을 한 걸까? 순간 지금까지 믿어왔던 나의 SNS관에 균열이 생기며 덜컥 겁이 났다.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인스타그램에 중독되어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 아닌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한 일생을 살고 있던 것은 아닌지 무서워졌다.



  예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뭔가 눈치를 보며 입을 앙다물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가 당당하다고 느꼈던 것이 나의 SNS관을 지키기 위한 자기합리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들과 자주 만나며 친해지고 싶었던 마음은 진실인걸…' 하며 변명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 댓글만 생각하면 뭔가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혹시 그 댓글을 단 친구가 나를 인스타용 인간으로 생각할까 봐 불안하기도 하다. 그 친구가 어떤 의도로 그 댓글을 달았는지 알 수 없지만-그냥 의도 없이 물어봤을 확률 98%- 그 친구 덕분에 지금까지도 나는 내 SNS와 일상의 갭을 크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곤 한다. 나도 모르는 내가 내 SNS에 존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그냥 단순한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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