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꼬마 Jan 23. 2021

라면의 비극

다들 라면 잘 끓이세요?

  나는 라면을 정말 좋아한다. 모든 라면을 사랑하지만 국물을 워낙 좋아하는 터라 주로 국물 라면을 끓여 먹기 때문에 물을 따라 버리는 라면은 잘 안 먹는다.


  그때가 아마 17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른한 주말 낮으로 기억한다. 아빠께서 비빔면 하나 끓여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고 열심히 비빔면을 끓여내 아빠에게 가져다드렸다. 아빠는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한 젓가락을 뜨셨고, 그다음 두 입은 없었다. 한 입을 드시고 당황스러워하시는 아빠의 반응에 더 당황스러운 것은 나였다.


  "아빠, 왜?"

  "혹시... 이거 찬물에 안 씻었니?"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저것이 비빔면을 먹지 않는 이유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비빔면이 뜨거운 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이다. 비빔면이 원래 차갑게 먹는 음식이었던가? 하며 어리둥절한 동안 옆에서 듣던 동생도 경악했다.


  "언니! 설마 저거 따뜻한 비빔면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고, 동생도 그 비빔면 먹기를 포기했다. 결국 내가 다 먹기는 했지만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비빔면은 차가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20살이 되었다. 나는 이제 비빔면은 끓이고 난 후 찬물로 팍팍 씻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날도 평소 매운 것을 좋아하는 나의 식성에 따라 점심으로 불닭볶음면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닭볶음면은 내가 자주 해 먹는 라면이었기 때문에 문제없이 순조롭게 완성하고 한 입을 무는 순간 나도 3년 전의 아빠처럼 젓가락을 멈칫했다. 왜냐하면... 면이 차가웠다.


  불닭볶음면은 면이 따뜻해야 한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면이 차가운 이유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별로 길지 않은 과거 회상 끝에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면을 찬물에 열심히 팍팍 씻은 것이다.


  그제야 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무의식적으로 비빔면을 만들 듯이 면을 체에 받쳐 물기를 뺀 후 찬물에 씻어버린 그 행동으로 인해 내 앞에 있는 이 끔찍하게 차가운 불닭볶음면이 탄생했다는 것을 말이다.


  차마 음식을 버린다는 행위를 상상하지 못하는 나는 그 끔찍한 불닭볶음면을 다 먹었고, 나는 앞으로 물을 따라버리는 라면을 끓일 때는 설명서를 잘 보고 끓이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에 또 실패하게 된 라면은 없으나 이 두 가지 일로 인해 나는 '라면도 못 끓이는 요리 똥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생활하게 되었음을 알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 인스타병 없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