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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시간 Jan 25. 2022

후회하는 나를 후회하지 말 것!

'자기착취'에서 벗어나기

“넌 뭘 그렇게 후회가 많아! 후회해 봤자 다 소용없어!”

“후회를 뭐 하려 해? 미련스럽게~”

“후회할 시간 있으면 더 생산적인 일을 해!”



주변에서 하나같이 이런저런 일들로 후회하는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진다. 멀쩡했던 나는 금세 인생의 루저가 되어버린 기분이 든다. 꼭꼭 감춰두고 싶었던 오래된 흉터를 공개적으로 들켜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후회는 한심한 일이고, 쓸데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후회를 하는 것 자체가 실패한 인생인 것처럼 치부된다. 나 역시 늘 후회의 숲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 자책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후회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게 다짐하고 다짐했다. 가슴속에는 늘 후회의 덩어리들이 쌓여서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쓰렸다.

그런데 며칠 전 나의 이런 생각들이 한순간 뒤집어졌다.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노예 감독관이 밖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착취했다면, 지금은 노예 감독관을 내 안에 심어놓고 스스로 알아서 착취하게 합니다. 그것이 자기착취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자기착취가 가장 심한 나라입니다. 자기착취가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자행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
타인이 착취를 하는 경우에는 착취당하는 자의 내면에 착취하는 자에 대한 저항의식이 생깁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는 경우에는 내면에 죄의식이 생깁니다. //
‘내가 잘못해서 안되는구나.’ ‘내가 게을러서 실패하는 거지.’ ‘내가 공부 안 해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더 노력해야 해.’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를 비난하고 착취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착취를 당하면서도 착취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 김누리,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해냄), P126~127

 



작년에 읽으려고 샀다가 미뤄두었던 책을 최근 여유가 생겨 제대로 읽어 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야말로 뒤통수 정도가 아니라, 정면으로 뺨을 제대로 얻어 맞고 뒤로 자빠진 것처럼 아팠다. 책을 읽을수록 심장이 뛰고, 책장을 넘기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프지만 후련했고 짜릿했다.

복싱 경기에서 실컷 얻어터지고도 시합이 끝나면 후련한 성취감을 느낄 때와 비슷한 감정이랄까? (어설프게 복싱장을 두 달 정도 다녀본 적이 있다. 물론 얻어터질 정도의 경기를 한 건 아니지만. ^^)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권투 글러브를 냅다 집어던지고 운동장을 힘껏 달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뭔지 모를 해방감 비슷한 감정이 몰려왔다. 그동안 나를 향해 휘둘렀던 채찍을 슬쩍 내려놓게 되었다. 나를 비난하고 착취했던 나도 풀썩 주저앉았다.



김누리 교수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수많은 죄의식과 착취가 사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권력자들이 계속 기만적으로 개인의 문제로 전가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자, 헬조선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불안과 불행의 감정을 부추겨 자기착취를 합리화하면서 우리는 점점 행복한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들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해 준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고 꼬집는다. 우리의 불행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쉽게 이해시키고 있다. (물론 여전히 나에게는 물음표로 남는 이야기들도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단단하게 굳어버린 생각과 감정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생각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 혹은 사회적으로 휩쓸려 다니는 생각들을 너무 쉽게 따라다녔다. 어쩌면 나의 불안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또다시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는 후회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후회(後悔)의 사전적 정의는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이다.

그러니 후회하는 것이 왜 나쁜가? 후회가 자책으로만 끝나지 않으면 된다.

후회의 끝에 반성이 있고, 반성의 실타래를 따라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그 실을 부여잡고 한발 더 나아가면 된다. 후회는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일 뿐이다. 나를 더 사랑하고 지키는 또 다른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난 앞으로 마음껏 후회하기로 했다!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후회의 감정을 더 이상 막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더 깊이, 제대로 후회와 마주할 것이다!



# 짧은 독서 후기

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춘기의 반항심과 삐딱한 시선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자기착취에서 모든 사람들이 해방되길 바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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