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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온도 Jan 13. 2020

팀내 모지리들에 대하여

내가 문젠가 의심하게 만드는 모지리 보고서

굉장히 오랜만에 브런치를 들어왔다. 최근에 프로젝트가 바쁘기도 하고, 요즘 나에 대해 긴히 할 생각이 많아서 브런치에 글을 쓸 생각을 못했다. 작가 신청할 땐 구구절절 인생의 시리즈를 쓸 것처럼 굴어놓고 글 하나 쓰고 하나는 우울감에 대해서 쓰다니 반성할게요...


아무튼, 내가 요즘 프로젝트가 바쁜 이유는 지금 글 쓰는 이유와 일치한다.


팀내 모지리 때문이다.


이 모지리는 팀이 구성되면 필수구성요소로 거론될 만큼 자주 발견된다. 팀장, 팀원, 모지리가 이루어야 팀의 완성. 그리고 모지리에겐 꼭 멱살을 잡고 이끌어 가는 호구가 있다. 어, 그게 바로 나다.

나 호구는 모지리가 못쳐내는 0.5m 를 매꾸기 위해 동분서주 해야한다. 

그래도 모지리가 나보다 후임이면 나은상황이고 선임이면? 0.5m가 아니라 나 혼자 2m 해야 프로젝트를 무난히 이끌어 갈 수 있다.


사실 나는 이 모지리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 아주 긴 시간을 흘려보내야했다. 천성이 나보다 남들을 더 믿고 내 기억력보단 니가 낫것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 내가 모지리면 어떡하지 불안감에 휩쌓여 살아본 적은 있어도 확실하게 모지리에게 화를 내본적은 없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 모지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내가 화를 내게 만들었단 말이다.


모지리의 패턴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1. 기억이 안나요.

2. 제가 안그랬는데요.

3. 모르겠는데요.

4. 쟤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 니가 그랬잖아요.



자, 먼저 1. 기억이 안나요. 신입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직급에서 자주 발견되는 말이다. 대리연차쯤 지나면 기억이 안나도 아, 제가 한 번 더 살펴볼게요 라는 말을 하게되는데 사원쯤에선 어..? 아뇨 기억이 안나는데요.. 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모지리들은 직급불문 반사적으로 모른다고 함.) 내가 기억하고 회의 참석한 모두가 기억하는데 니가 기억이 안나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그래도 괜찮다. 레벨 1 답게 이 질문은 기억을 상기시켜주면 된다. 왜, 땡땡씨 제가 이렇게 말하니 저렇다고 말씀도 하셨잖아요 ^^ 보통 모지리레벨이 아닌 사원들은 아! 네! 맞아요! 하고 대답하지만 모지리들이 그렇게 대답하면 모지리로 분류될 필요도 없다. 이런 모지리들을 자주 상대하다보면 모든 질의는 문서화 하게 된다. 모질이가 꼭 팀내에 있으란 법이 없고 클라이언트로 나타나기도 하므로 이 때 요구사항 정의서, 회의록이 용이하게 사용된다. (나는 이번 모지리를 만나고 구두로 나눈 이슈를 개인 이슈대장으로 작성&업데이트 했다)

문서화가 되어있으나 반박불가! 깔끔하게 모지리에게 업무지시를 할 수 있다. (이번 모지리는 무려 선임이었으나 자꾸 일을 여러번하게해서 내가 업무지시했다)



2. 제가 안그랬는데요. 

여기서부턴 약간의 멘탈도 함께 붙잡아줘야한다. 기억이 안나요와 같은 대분류를 가질 수도 있지만 따지자면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모지리다. '자기가 안 한 기억'을 진실로 믿고 세상 당당히 말하니 약간 내가 잘못 알았나? 의심하게 한다. 이 문장을 들으면 먼저 내 기억이 확실해도 뒷받침 해줘야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 때 명칭하는 무언가는 사람이 될 수도, 앞서 이야기한 개인 이슈대장이 될 수도 있다. 

난 이번 모지리는 무조건 지가 안 그랬다 그래서 아뇨, 그러셨는데요. 라는 말을 오조억번하다 나중엔 "이거 이렇게 하셨던데 또 ㅇㅇ님이 안하셨죠? 알겠으니 반영 부탁드려요." 하고 처리요청했다. 로그도 니 아이디, 이력에도 니 이름이 있지만 안 하고 싶은 걸 믿고 싶으면 그렇게 해 ^^ 일은 당연히 니가 하궁.



3. 모르겠는데요.

이건 좀, 나도 아직까지 저 문장을 들으면 속에서 활화산이 터진다. 물론 우리는 많은 업무적인 상황에서 모르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처음 투입된 프로젝트에서 갑자기 업무적인 질문을 받는다던가 회의 참석하라 해서 했는데 질의를 받는다던가 하는 상황말이다. 그런 경우 우리는 보편적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아, 전달받은 게 없는데 실무자와 회의 후 답변드리겠습니다. 혹은 제가 오늘 처음이라 그런데 좀 더 상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모지리들에게 질문하면 이 페이지요~ 라는 말만 해도 모르는데요? 라는 답변이 나온다. 나는 가끔 모지리들의 당당함을 배워야한다 생각은 하고 있다. 실천은 안해봤지만. 아무튼 처음엔 그런 모지리들을 만나면 앗., 어.. 아니 그게아니라... 라고 우물쭈물 했었는데 요즘은 모르겠는데요! 라는 질문에 아뇨! ㅇㅇ씨는 알고있어요 들어보세요! 하고 내 할말을 하고 지시하고 사라진다. 기억은 니가 혼자 해봐. 답변은 이력남는 메일로 주고.


4. ~라고 안 하셨잖아요?

나는 아직 이 대응에 쿨해지지 못하고 있다. 그게 요즘 홧병의 근원지인 것 같다. 나는 이런 대응을 받으면 아, 내가 문장을 어렵게 말해서 이해를 못하는 구나. 하고 자책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간단한 예는 다음과 같다.


"ㅇㅇ씨, 회의일정 잡아오세요. 저는 셋째 주가 괜찮습니다."

-잠시 후-

"담당자가 셋째 주 월요일 연차라는데요."

"아, 그럼 화요일은요?"

"물어봐야 합니다."

-잠시 후-

"화요일 오전은 안되신대요."

"화요일 오후로 잡아오신 건가요?"

"그건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그래서 그냥 내가 뛰어가서 일정잡아오며 물었다.


"ㅇㅇ씨, 안된다고 한다고 그냥 돌아오면 어떡해요. 되는 날짜라도 물어보고 와야죠."

"그런 말 안 하셨잖아요."

"제가 셋째 주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셋째 주 월화수목금 괜찮다고 하셨어요? 안 하셨잖아요."


 그리고 이런일도 있었다.


"이 설계서 맞게 설계된거에요? 담당자한테 물으니 아니라던데 왜 저번에 맞다고 하셨어요?"

"ㅁㅁ씨도 발견 못하셨잖아요."

"아니 이거 ㅇㅇ씨 담당이잖아요. 제가 저번에 물어도 봤잖아요."

"같이 봤는데 모르셨잖아요."


쓰다보니 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본인 담당 페이지에 본인이 모르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알며 나보다 기획도 오래한 사람이 왜 자꾸 나한테 케어를 받으려 하는 건지 진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일을 하며 늘 듣던 소리가 명확해서 좋다는 이야기였는데 그건 다 감언이설이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대체 어디까지가 명확의 기준인가.


나는 그래서 다음부터는 이렇게 업무지시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지리가 내 선임이고 내가 후임이다)


"1월 20일 월요일 오후 2시 회의 잡아 오시고 안되면 화,목,금 오전 오후, 수요일 빼고 다 괜찮으니 최대한 빠른 날짜로 잡아와주세요."

"설계서가 이상한데 혹시 보셨나요? 이게 맞다고만 말씀마시고 설계자에게 A부분에 A-1과 A-2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 듣고 확인 받아오세요."


이렇게 지시했음에도 수요일 오전으로 회의를 잡아온다거나 설계자에게 B부분에 대해서 듣고 온다거나 버라이어티했지만 최대한 이슈는 줄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번 모지리를 만나 멘탈이 두부 으깨지 듯 으깨졌었다. 자꾸만 남탓을 하는 어투에 진짜 내 탓인 줄알고 내가 더 확실하게 말을 못하는 줄 알고 혼자 자책도 많이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개뿔? 나 빼고 프로젝트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모지리의 존재감을.


그리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잘 마무리하고 수고하셨다고 인사까지 했더니 산출물을 날리고 튀었다. 백업본도 없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분노의 글을 써본다. (날리고 튀었다고 했지만 누가 날린진 모른다. 그냥 딱 기획파트만 산출물 하나가 백지일뿐....)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는거니 좀 부드러운 명칭으로 모지리라고 이야기 했는데, 사실 이런 수준의 사람은 보통 모지리가 아니라 빡대가리라고 부르고 있다. 근데 빡대가리에 대해서 쓰기엔 브런치와 맞지않는 것 같고, 부족한 사람들이라 쓰기엔 그간 털린 내 멘탈에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모지리라 작성했다. 

(혹시나 작고 소중한 연차의 사람들이 셀프 쿠크 깰까봐 덧붙인다. 그 사람은 무려 20년이 다 되어가는 기획자였다. )


아무튼, 다음에 만날 모지리를 위해 멘탈을 붙잡으며 작성해봤다. 다음에 눈치채면 꼬옥.. 일 야무지게 시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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