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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온도 Jun 01. 2021

돈도, 여권도 없이 휴가만 낸 사람이 있다고요?

태국 - 네, 저예요. 첫 번째 여행지, 태국 예약에서 출발까지

바야흐로 나의 첫 여행은 2011년도였다. 나는 기억의 오류와 함께 살고 있다. 갑자기 처음부터 왜 년도와 내 건망증에 대해 털어놓냐면, 이것은 정보용의 여행기라기보다 소설이 섞인 여행기와 다름없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내가 기억하는 한 최대한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할 테지만, 내 기억이 여느 자취방의 구멍 난 방충망보다도 뻥뻥 뚫려 있음을 먼저 고백하고 시작한다. (첫 직장의 별명이 알츠였다. 맞다, 그 알츠하이머.)


무튼, 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랑 그 당시 PC카톡이 없을 때라 네이트 톡으로 신나게 눈치 없이 타자를 갈기며 일하기 싫으니 뛰쳐나가고 싶다. 디자인 전시회 갈래?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두 번째 직장에서 받은 첫여름휴가였다.


첫 직장이 휴가를 내 맘대로 낼 수 없었던 곳이라 (공장이 있어 공장 휴가에 맞춰야 했음.) 조심스레 대표님한테 가서 토일 껴서 5일 쉬고 와도 되나요..? 하고 물으니 대표님이 잠깐 머뭇하다 그래요! 대답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평일 5일, 주말 껴서 9일의 휴가도 쓸 수 있는 곳이었다. 다녀와서 물으니 그냥 그렇게만 쓰고 싶은 줄 알았단다. 참내.




8월 초로 휴가를 내고 나니 내가 여권이 없더라. 당연했다. 첫 해외여행이었으니까!

휴가까지 한 달 좀 넘게 남은 7월 초였다. 나는 아직 여권이.. 없는데?! 긴급한 상황이었지만 긴급한 줄도 몰랐으므로 실실 웃다가 결국 출근길에 안경 끼고 국어 선생님 같은 모양새를 하고 여권사진 촬영을 하게 된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안경을 쓰면 여권사진을 받아주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사장님이 안경 낀 여권사진 안 받아줄 텐데? 하고 말했지만 급하니까 빨리 찍어주세요 ㅠㅠ 저 1시간 내로 회사 들어가야 해요ㅠㅠ 엉엉웅앵웅 거리니 최대한 안경이 눈썹에 걸치지 않고 눈에 걸치지 않게 찍어서 인화를 해주셨다.


다급하게 바로 맞은편에 있던 시청으로 달려들어가 번호표를 받고 다리를 달달 떨며 순번을 기다렸다. 당연히 창구에 있던 직원분이 안된다며 내 사진을 반납했다. 여권발급엔 적어도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으니 튕겨서 다시 찍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선생님.. 제가요.. 안경이 문신 같은 사람이거든요.. 물론 이렇게 입을 털진 않았고 아앗,, 어쩌죠 저 다신 못 올 것 같은데.. 근데 다음 달이 출국이에요..... 하며 나라 잃은 표정으로 바라보니 갑자기 나에게 각서를 쓰게 했다. 안경 쓰면 여권 거부당할 텐데 그때 자기의 과실임을 인정하는 각서였다. 냉큼 사인하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당연당연하죠 제가 우긴 건데요. 한 번이라도 여권을 튕겼으면 그 당시 나의 멱살을 움켜쥐었을 테지만 하늘의 도움인지 조상님의 도움인지 단 한 번도 튕기지 않았다.


그렇게 7월 중순, 드디어 여권을 손에 쥐게 되었다. 통과됐음에 감사하며 사진 스타일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아직도 내 여권사진은 민증사진 다음으로 웃음 버튼이다. 정말 공부 잘할 것 같은 뿔테 안경과 가지런한 6/4 앞머리, 귀를 보이게 하기 위한 반 묶음은 완벽한 단정함과 아직 겪지 않은 세월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다급히 여권을 발급받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8월 초 여행인데 7월 중순, 아직도 여행 표를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


당시 소중했던 여름휴가를 어떻게!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친구와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다 나온 결과는 태국이었다.


태국! 비행시간도 적당하고, 영어를 못해도 괜찮고 구경거리, 먹을거리도 많으면서 마사지의 나라인 태국!


땡처리로 유명하던 곳에서 약 70만 원을 지불하고 호텔+비행기까지 한방에 해결했다. 패키지여행을 할까도 했지만 아마도 강제 여행은 수학여행으로 충분했던 나이였기에 자유여행을 골랐던 것 같다. 그리고 패키지보다 싼 줄 알았다. (....)



그렇게 여행 예매까지 순조로운(?) 줄 알았지만 세 번째 산이 있었다. 아직 월급이 100만 원 대인 내가 갑자기 100만 원(70+여행 사비 30)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100만 원이 모야? 일찍이 나의 씀씀이를 신뢰하지 않던 나는 신용카드 발급도 받지 않았으니 더더욱 100만 원이 생길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20대 초반에 학자금 대출 다음으로 두 번째 대출을 엄마에게 100만 원하게 된다. 마미 대출이라니, 신용도도 상관없고 쉬워 보이지만 그 결정을 하게 된 요일이 금요일이었다. 그리고 결제일은 금요일까지였다. 마미 대출에게 전화했지만 바쁜 엄마는 여섯 시까지 통화가 되지 않았고 다섯 시쯤 여행플래너분에게 전화하여 또 제발여.. 제가 꼭.. 월요일에.. 꼬오오옥 입금할게요!!! 하며 결제일을 미뤄달라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쓰다 보니 약간 매달림의 연속이었네.


그래서 7월 31일 결제하고 8월 11일에 출발하게 된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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