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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살롱 Mar 28. 2022

사람은 옆으로도 거꾸로도 자란다

리버스 멘토링, 사이드 멘토링 잘 하는 사람

경력이 10년 넘어가면서부터는 업계 친구, 후배들끼리 간혹 “학부서 배운 건 이제 다 쓴 거 같애. 일을 할수록 소모적이고 뭔가 고갈된 느낌이야.”라는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았다.

확실히 콘텐츠업이라는 건 바뀌는 미디어 플랫폼 형태에 맞춰서 변화,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전이긴 하다. 그때그때 트렌드도 너무 빠르게 바뀌고 뭐 하나 기존의 것을 가져다 쓸 수 있는 게 없다. 늘 신선함으로 사로잡아야 하니까.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 등 15 초 길이의 숏폼 플랫폼이 부상하자 인스타그램 영상 광고 기획자로 일하는 후배는 “레스토랑 하려고 생각했던 거 좀 더 앞당겨야겠어요. 진짜 너무 지쳤어요. 이제 몇 초 단위까지 쪼개고, 게다가 그럴수록 콘텐츠의 수명은 더 짧아졌어요. 뉴욕을 좀 갔다오고 싶은데 상황은 이렇고… 어쨌든 좀 지속 가능한 일이 하고 싶어요. 3년 안에 레스토랑 오픈하려고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후배 나이 이제 서른 다섯, 사장이 된 지 고작 6년째다.

후배는 만날 때마다 항상 내게 온라인 마케팅 노하우와 MZ세대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브리핑해주는, 말하자면 ‘요즘 것들의 대세 알려주는  선생님인데!  젊은 멘토조차 이제 새로운 수혈이 필요하다는 거다.




MZ에게 배우는 리버스 멘토링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은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기존 멘토링의 반대 개념으로 일반 사원이 선배나 고위 경영진의 멘토가 되는 것을 말한다. 1999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던 잭 웰치가 최고경영자(CEO) 시절 리버스 멘토링을 통해 젊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감각을 구비할 수 있다는 취지로 실시했다는데, 요즘은 MZ세대와 소통하고자 하는 기업 사이에서 활발하다.

할머니 옷장 안에나 가득한 브랜드 이미지였던 구찌를 구원해낸 것도 이 리버스 멘토링이다. 2015년 성장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젊은 소비자 타겟을 겨냥한 구찌는 회사 내에서 밀레니얼 세대로만 구성된 그림자 위원회(Shadow Committee)를 구성해 MZ세대 소비성향을 분석했다. 그리하여 일찌감치 동물복지와 생명윤리를 중시하는 이들의 가치관에 부합한 에코퍼 제품을 선보였고 이후 파격적인 브랜드의 변신에 성공, 3년 만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배, 3배 성장했다.

국내 기업도 2018년 무렵부터 대기업부터 도입하여 현재는 공기업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밀레니얼 커미티를 운영 중이고 LG유플러스, 현대오일뱅크, LIG넥스원도 정기적으로 리버스 멘토링 모임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전통 있는 기업일수록 필요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기업의 회춘, 안티에이징 프로그램이니까. 기업도 생물이다.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기업은 경영자의 나이와 함께 늙어간다. 시작엔 개혁과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기업도 어느 시점이 되면 경영자가 안정을 추구하게 되면서 성장동력은 희박해진다.


리버스 멘토링을 받는 나이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내 나이가 딱 2022년 대한민국의 중위연령이다. 45세. 만으로는 45세가 안 되니 바로 그 선 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도낀개낀. 나는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리적 나이에 비해 라이프스타일은 2030에 가까운 편이다.(라고 생각했다.) 어디 갈 때면 꼭 리뷰 보고 결정하고, 여행 정보 검색을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해외 유저 계정으로 하는 타입이니까. 하지만 한번씩 ‘내가 결코 더 이상 빠릿빠릿하지 않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이미 배운 아이패드 드로잉 앱의 메뉴 사용법을 싹 잊었을 때, 딴에는 호텔 가격비교사이트 뒤지고 온갖 쿠폰 적용해서 최저가로 예약했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았을 때. 별 수 없는 것이다.

어느새 편집부 중에 가장 막내, 갓 졸업하고 들어온 새내기 패션 기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귀가 쏠리던 옛 편집장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자잘한 생활 정보와 기술을 알려주는 MZ세대 후배나 동생들의 말이 왠지 크게 들린다. 왜? 내가 모르는 이야기니까. 결국 거꾸로 배울 수밖에 없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지. 다만 준비할 것은 그들이 말하고 싶지 않은 상대가 되지 않는 것. 늘 배울 마음의 자세와 열린 귀를 갖고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수현이에게 배울 게 참 많아.”라고 했던 예전의 상사와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난 덕분에 흉내를 꽤 낼 수 있다.


최고의 직장은 보고 배울 동료가 많은 직장이었다

몸담았던 회사가 계열사 전배와 짧게 있었던 회사까지 다 치면 7개니까 업계는 크게 바꾸지 않았지만 이직을 꽤 한 축이다. 그때마다 회사 전망, 연봉, 업계 평판 등 그때마다 여러가지를 고려하면서 옮겼지만 지나고보니 좋은 직장의 정답은 간단하다.


좋은 사람이 많았던 회사.


회사 내부에 배울 동료들이 가장 많았던 회사가 내게 있어선 베스트 직장이었다. 누구랑 이야기해도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 서로의 성과를 가로채지 않고 누가 곤란에 빠졌으면 조용히 가서 도와주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팀 동료가 가득한 직장이 있었다. 지금도 그때 멤버들끼리 오랜만에 모임을 갖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동기부여와 행복감을 넉넉히 충전한 기분이 든다. 그런 동료들을 만난 직장이라면 지나고 나서도 좋은 추억이 더 깊게 남고, 가끔 당시에 만들었던 업무 파일은 지금도 유용하고 ‘참 다들 1인기업처럼 잘했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옆으로도 배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앨 고어는 명문가 출신에 전형적인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하버드에 입학한 금수저였다. 그런 그의 룸메이트는 2년 선배이자 미식축구 선수에 영문과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배우 타미 리 존스였다. 이 둘의 3년간의 같은 방 생활은 어땠을까? 투닥거림도 있었겠지만 서로 다름이 주는 시너지로 인해 각자의 세계를 넓히며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를 더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환경운동가가 된 앨 고어도 대배우가 된 타미 리 존스도 그때의 자양분으로 20대 이후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며 배우던 그 시기는 지났지만 계속 위로도 거꾸로도 옆으로도 자라고 싶다.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답하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결국 사람이 스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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