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렷한 연애계획이 그려지지 않던 나에게 갑자기 남자친구가 생겼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는 소개팅시장에서 결혼상대로 많이 찾는 나이대는 아니었고 그럼에도 누군가가 소개해준다고 하면,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가는 노력은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는 봄날의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날 만나, 사귀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그렇게 확신을 주는 남자친구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스쳐간 인연들은 새벽까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할 만큼 불안하게만 했었다.
내 인생에 없을 것 같았던 웨딩촬영, 청첩장모임, 브라이덜샤워를 경험하고.. 사귄 지 400일째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6개월이 지난 지금 결혼 전의 나와 결혼한 후의 나를 떠올려본다.
결혼 전의 나는 사람 많은 곳에 절대 가지 않고, 특히 1년에 한 번 열리는 서울세계불꽃축제에 고생고생 해서 가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불꽃놀이 그게 뭐라고.
그런데, 한 번도 불꽃축제에 가본 적 없다는 남편을 위해 이벤트 마지막날 지원해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어 불꽃축제까지 다녀왔다.
남편 아니었으면 이벤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주변에 얘기했더니 진짜 당첨되는 사람이 있냐며 신기해했다.
결혼 전의 나는 주말 중 하루는 쉬고, 하루는 약속이 있거나 필라테스하러 밖으로 나가곤 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주말 내내 남편과 항상 같이 꼭 붙어있다.
월화수목금 둘 다 회사에 각자의 일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가, 금요일 저녁은 항상 퇴근하면서 우리는 마트에 간다.
대부분은 메모장에 적어놓은 구매리스트를 보고 필요물품을 사러 가지만, 어떤 날에는 살 게 딱히 없어도 그냥 가기도 한다.
특히 내가 결혼했구나 실감하는 순간은 한 달에 한번 마법이 찾아올 때이다.
자취생활 15년 동안 새벽에 단잠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알싸한 생리통이 급습해 올 때 나는 무방비상태로 당해야만 했다.
통증에 잠에서 깨어 반쯤 눈 뜬 상태에서 약을 먹을까? 그냥 참고 잘까? 수없이 고민하는 날들을 보냈다.
이제는 잠결에 아프다는 나의 말 한마디에 남편은 벌떡 일어나 약과 함께 물을 가져온다.
15년 자취하는 동안 집은 내 취향을 반영하는 곳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잠만 자는 방'이었다.
그래서 15년 동안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와도 트리를 꾸며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다시 떠올려보니 가뜩이나 추운데 나의 겨울은 삭막했었네.
현재 내 신혼집을 장식하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지금도 반짝거리며 한층 더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해주고 있다.
오늘 같은 날도 그렇다.
일하느라 바쁘면 둘 다 점심메뉴로 뭘 먹었는지 물어보기는 건너뛰고 오후 늦게 생사를 확인한다.
오늘은 회사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남편에게 T다운 조언을 듣고 싶어서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나는 먹기 싫은데 불편한 상황이 펼쳐졌어ㅠㅠ'
'분위기 싸해졌어? 그런 거 아니면 음식은 먹는 척만 하고 먹지 마'
남편은 같이 욕해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내 편을 들지 않는 언어들을 구사하지만
나는 안다. 남편은 온전히 내 편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