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오도 Jun 10. 2023

여름을 담은 비빔밥

6월의 밤공기가 기분을 좋게 한다. 글쓰기 책상에 앉는 것조차(!) 기분이 좋다. 유튜브 플레이리스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우리의 여름날‘이란 제목으로 선곡된 음악을 오디오와 연결시켰다. 노래 제목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몇 번은 들은 것 같은 감성 가득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초 여름밤의 시원한 바람이 열어둔 창으로 불어온다.  이런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새벽에 일어나해야 할 일을 다 해치웠는데, 아직도 일요일 아침 9시밖에 안되었을 때의 느긋함? 긴 망설임을 끝내고 만족한 선택을 했을 때의 홀가분함? 가벼워진 마음에서 걱정 풍선이 빠져나간다. 우리들이 걱정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달빛을 받으며 폭죽처럼 터진다. 야호다. 밤공기만 달라졌을 뿐인데 내 마음이 이렇게 느긋하고 홀가분하다니.


 여름 얘기를 시작했으니 밥상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먹는 것이 진심은 아니지만 여름 밥상 앞에서는 진심이 된다. 동네 친구가 하는 텃밭에서 유기농법으로 키우는 상추, 로메인, 쑥갓, 치커리, 고수와 심지도 않았는데 매년 다시 자라나는 취나물과 미나리, 질소 비료 없이 기른 쌈 채소는 다른 밭 채소들의 반 정도 크기밖에 안 자라지만, 아삭하고 고소하기가 비교할 수 없다. 삼겹살 집 테이블에 오르는 상추가 텃밭 채소를 맛본 후부터 풀 맛 나는 물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겨울난 양파가 어느새 내 주먹보다 커져서 한 개를 뽑아다 먹었다. 달고 아삭한 맛이 좋아 된장에 찍어 계속 먹다가 매운맛이 눈물이 쑥 나왔다.


유기농법으로 기른 채소는 농약은 없지만 벌레가 붙어 있을 수 있어 잘 씻어야 한다. 큰 양푼에 물을 받아 30분 정도 담가 두었다가 하나씩 흐르는 물에 앞뒷면을 꼼꼼히 씻어 물기 뺀 다음 냉장고에 넣어두면 적어도 2주 이상 싱싱한 상태가 유지된다. 시장에서 산 채소처럼 냉장고에서 쉽게 무르지 않는데, 섬유질이 단단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잘 씻은 쌈채소를 큰 플라스틱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면 아직 먹지 않았는데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채소를 손으로 대강 잘라서 우묵한 접시에 담고 그 위에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을 듬뿍 올리면 여름 샐러드가 된다. 그동안 먹던 발사믹 식초보다 조금 고가의 것을 구입해 보았는데, 값의 차이가 맛의 차이로 나타났다. 올리브 오일은 마셨을 때 목에서 매운맛이 나는 것이 좋은 오일이라고 하는데, 윤혜자 작가의 지인이 수입해서 파는 베제카 올리브 오일에서 그런 매운맛이 느껴졌다. 맛 좋은 발사믹과 올리브를 곁들여 먹는 유기농 쌈채소 샐러드, 여름 샐러드는 며칠을 계속 먹어도 절대 질리지 않는다. 어제도 그제도 만들어 몇 접시를 먹었는지 모른다. 이러다가 나의 위와 장이 채소밭처럼 초록이 되는 건 아니겠지.  


샐러드는 간식이라면 본식은 비빔밥이다. 흰쌀밥에 채 썬 쌈 채소를 가능한 많이, 그러려면 가능한 큰 그릇에 담아야 한다. 달걀 프라이 2개를 올리고 참기름을 아끼지 않고 듬뿍 뿌린다. 취향에 맞게 고추장이나 간장을 넣어 비벼 먹는 야채 비빔밥. 된장을 풀고 호박, 양파, 감자를 넣어 설렁하게 끓여낸 ‘고기 집 된장찌개’를 곁들이거나, (위장이든 시간이든, 에너지이든) 여유가 좀 있다면 감자 몇 알을 강판에 갈아 들기름을 두르고 감자전을 부쳐 함께 먹는다.


여름에는 끓여 먹는 음식보다는 신선한 채소에 계란이나 고기 산적을 조금 곁들여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 여름 기운과 맞는 것 같다. 채소 비빔밥은 많이 먹어도 금세 소화가 되니 마음 놓고 과식(?) 해도 된다. 단백질이 부족할까 걱정이 된다면 콩 국물을 후식으로 한 컵 더 먹는 것도 좋다. 채소만큼 질 좋은 단백질을 잘 챙겨 먹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채소를 통한, 채소에 의한 밥상을 앞에 놓고 스스로를 육식주의자라고 칭하는 아들은 긴 한숨을 쉬겠지만 나는 나의 여름 밥상이 참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